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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는 죽어야 한다 (2012)

- 다른 사람의 인생에 몰입한 후 달라진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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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타비아니 형제 (파올로 타비아니, 비토리오 타비아니)

출연 : 살바토레 스트리아노, 지오반니 아르쿠리, 코시모 레가, 안토니오 프라스카


62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보았다.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영화로는 처음 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3대 영화제 수상작들을 찾아 모으다가 오래전에 다운로드 받아놨던 영화인데, 이번에 보게 되었다. 러닝타임이 77분으로 드라마 한 편 길이라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황금곰상 수상작이라고는 해도 BBC리스트나 가디언 리스트에 오르지 않아서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딴짓하지 않고 몰입해서 재밌게 잘 보았다. 삶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형식미, 표현미도 말끔하게 정돈된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 재소자들을 배우로 캐스팅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교도소 내 극장에서 공연한다. 영화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부터 연습하는 과정,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까지를 담는다. 다른 내용은 일체 첨가된 것이 없다.

나는 영화를 보고서는 직업 배우들이 재소자 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런데 이 영화에 출연하고, 연극에 참여한 배우들이 실제 교도소 재소자들이라고 해서 정말 놀랐다는.

감독은 흑백을 선택했고, 교도소 내부의 공간만 스크린에 담았다. 배우로 캐스팅된 인물 외의 출연도 극도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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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영화의 엔딩컷이다. 연극에서 카시우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인데, 모든 공연이 끝나고 독방으로 돌아와 내뱉는 독백이 압권이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나는, 예술을 정말 좋아하고 예술가를 동경하는 사람 중에 하나로,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예술이 무엇인지는 더 생각해보고 싶다. 이 사람이 느낀 예술의 힘은 무엇이었을지, 예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이 작은 방을 감옥으로 느끼게 하는지는 더 깊고 섬세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연극을 할 것이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공고가 나가고 20명 남짓의 수감자들이 오디션에 참여한다. 영화는 맨 앞에 교도소 내부에서 재소자가 두 부류로 나뉘어서 다른 문으로 입장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나타내는 바는 형량의 경중 차이이다. 그리고 이 오디션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10년 이상의 선고를 받은, (카시우스를 맡은 코시모 레가는 종신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중범죄자들이다. 오디션에서 요구하는 연기는 이렇다. 자신의 신분을 고백하는 장면인데, (이름, 나이 출생지 등) 한 번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가족과 떨어져, 슬픔을 담아 표현할 것, 그다음에는 자신을 믿지 않는 관리자(경찰 같은)에게 분노의 감정을 담아 표현할 것. 그리고 출신지 언어(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할 것.

지원자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오디션에 임한다. 그리고 감독은 오디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캐스팅되었음을 밝히고, 그럼에도 주요 역할을 맡을 사람에 대한 결과는 발표하겠다고 한다. 오직 연기력만 본 것인지, 이들의 삶(예를 들어 어떤 죄를 지어 감옥에 오게 되었는지)도 고려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경험의 유무가 연기에 영향을 끼칠 것임은 자명하므로) 그리고 대여섯 명의 배우의 이름이 역할과 함께 호명된다.

오랜 감옥 생활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만한 것을 해본지가 언제였을까. 이들은 연극에 완전히 몰입하는데, 각자가 거의 자신의 역할에 빙의라고 된 듯 몰두하고 몰두한다. 혼자 있을 때에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도 오직 연극과 자신이 맡은 역할만 생각하고 연습을 하고 또 한다. 그렇게 캐릭터와 극에 몰입할수록 그들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고, 어떤 것이 떠오르게 되고, 그래서 어떤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대사를 연습하면서 무언가를 떠올린다. 자신의 삶의 어떤 사건과 경험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감정과 생각도 떠오른다. 상대역의 얼굴을 보면서 과거 자신의 삶에 함께 했던 어떤 이를 떠올린다. 역할에 몰입하고, 그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질수록, 삶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대사를 맞춰보면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다. 그리고 과거는 근미래에 있을 공연 날짜를 싣고 가면서, 더 먼 미래 속의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살고 싶은지도 담아 짊어진다.


영화 오프닝에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할 때,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서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오프닝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그 장면이 엔딩에 다시 나올 때는 나도 같이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몰입하는 모습, 그런 몰입 후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참 훌륭해서 일종의 경외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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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자체가 인생의 고뇌와 갈등, 그 끝을 설득력 있게 담고 있기 때문에 배우들의 몰입도가 높아졌으리라. 또 재소자라는 독특한 신분을 가진 배우들은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그 안에서 고뇌하고, 권력이 이양되고 무너져가고 결국엔 파멸하는 인생의 쓰디쓴 단면을 연기함으로써 범죄와 심판과 고독으로 얼룩진 자신의 실제 삶에 대한 회한을 더 깊이 느꼈을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라는 글로 쓰인 하나의 예술 작품이 연극화되어 살아 움직인다. 삶에 대한 밀도 있는 통찰과 그것을 적확하게 표현해내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배우들의 폐부를 찌른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후회 없이 사용한다. 먼저는 이 연극을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겼고, 그 열망은 의무감이 되고, 의무감은 구원의 동아줄이 된다.


연극을 성황리에 끝마치고 배우들은 다시 자신이 지내야 하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창문 하나 없고, 이야기 나눌 이 하나 없는 고독한 작은 방으로. 그리고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그러나 그 말을 들을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인생에 깊이 있게 몰두해 본 이들은 나의 인생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삶도,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진지한 생각 끝에 나는 출소 후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감옥 안에서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저 그렇게 지금처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뛰어넘어 내가 하고 싶은 일, 해내고 싶은 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된다.




나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예술에는 반드시 '통찰'과 '깨달음'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통찰과 깨달음은 인생과, 인생이 속한 세상과, 나 한 사람, 개인에 관한 것이어야 함도 분명하다. 음악이나 미술작품 같은 예술은 우리의 감정 혹은 이성을 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워 마음에 감동을 느낄 수도 있고, 독창성과 기술력 등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것을 만들고, 표현해낸 아티스트의 노력과 예술혼이 작품 안에 녹아 있어야 하고, 그 아티스트만의 시그니처가 있어야 한다.


<줄리어스 시저>에는 인생이 있었다. 비록 연기이나, 그 사람의 인생에 푹 빠져보는 경험을 해 본다. 내가 연기하는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이상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 비록 그 끝이 죽음이었을지라도. 각각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그 내용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살아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투신한 자들의 삶,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권력의 정점에 올라본 이의 삶, 그 안에서 살 방도를 찾으며 결국에 자신의 손에 권력을 쥐는 자의 삶. 그들의 삶을 잠시 대신 살아봄으로 나는 나의 삶에서 터닝 포인트를 찾아내고 바뀐 방향으로 올곧이 걸어갈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작게 느껴지지 않았던, 나 혼자이지만 모카 포트에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이 방이,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진 시간을 보냈던 이 방이 감옥이 되는 것이다.


배우들은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찾았기에 이 경험이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이렇게 연극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그들을 잘 끌어간 자들의 삶도, 이런 방식의 영화를 만들어낸 이의 삶도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들의 삶이 그대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위대한 예술 작품에는 그것을 만난 사람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오늘도 예술을 향한 애정과, 예술가를 동경하는 마음이 나를 이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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