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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사이드 (2009)

- 사랑의 기술, 혹은 사랑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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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존 리 행콕

출연 : 산드라 블록, 퀸튼 아론, 팀 맥그로, 제이 헤드, 릴리 콜린스, 레이 맥키넌, 케시 베이츠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본 것 같은데 2010년 개봉이었네, 그렇게나 시간이 흘렀나. 세월은 참 야속하기만 하다. 이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고 얘기 나누고 싶은 영화 중에 하나라서 다시 보게 되었다. 작품성 뭐 이런 거 상관없이 나 개인적으로는 다시 보아도 참 좋았다. 이 영화와 <비포 선셋>을 보면서 나는 내가 눈물을 흘리는 포인트도 찾게 되었는데, (나 스스로 신파 감별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조금의 신파끼만 있어도 나는 경끼를 한다) '나를 알아준다'라고 느껴질 때 나는 금방 울컥하는 것이다. 외로운 나를 누군가 진득하게 보아주고,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눈치채서 부담 느끼지 않을 만큼 채워 주고, 나의 재능을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 나는 그런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제 가족들의 사진이 나오는 걸 보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영화는 마이클 오어가 미국의 유명한 럭비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는데, 그가 럭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누군가가 그를 봐주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앉아 있는 그를, 추운 날 반팔을 입고 혼자 걷고 있는 그를 어떤 사람이 관심을 갖고 보아 준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몇 번 그렇게 혼자 있는 아이를 발견한 어른은 더 이상 그 아이를 보는 것으로 멈출 수 없다. 차를 돌려세운다. 이름을 부른다.


"빅 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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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마이크(퀸튼 아론)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하게 받지 않는다. '괜찮아요.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어른은 안다. 괜찮지 않고, 없다는 것을. 그래서 걱정을 하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덩치만 커다란 아이는 하룻밤의 호의에 감사하며 이부자리를 깨끗이 정돈하고 그 집을 떠난다. 리 앤(산드라 블록)은 그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고, 그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먼저는 아이에게 계절에 맞는 옷을 사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묻는다.


"여기에서 계속 지내고 싶니?"

"... 다른 곳은 가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신분을 보증할 길이 없어 마이클(자신이 빅 마이크라고 불리는 것이 싫다고 해서)은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고 하고, 리 앤과 션 부부는 정식으로 마이클의 법적 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친모를 찾아가 허락을 구하는데, 왜 그렇게밖에 못 사느냐고 비난하거나, 너는 이제 관여하지 말라고 선을 긋거나, 이렇게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우월감에 빠져 가르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당신은 여전히 마이클의 엄마예요. 함께 잘 지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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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상류층의 백인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행을 베푸는 위선자들이 아니라서 (션과 리 앤이) 아이들도 마이클을 편견 없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막내아들 SJ는 형이 생겼다며 너무 좋아하고, 딸 콜린스도 남의 시선보다 마이클이 상처받는 것을 더 신경 쓴다. 이제 정식으로 마이클의 보호자가 된 션과 리 앤은 마이클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럭비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우며 키운다.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운동을 할 수 있는데, 크리스천 학교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마이클의 입학을 반대했지만 교사 한 명이 그에게 관심을 갖고, 문제를 읽어주고 시간을 내어 지도하자 마이클의 학습에도 진보가 생긴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그 영향을 받아서 마이클을 돕게 된다. 드디어 운동을 시작하게 된 마이클. 그러나 마음이 너무 여려서 몸을 부딪히며 싸우며 해야 하는 럭비와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클에게는 남다른 보호본능이 있었다. 어려서 위탁 가정에 보내져도 몰래 빠져나와 마약중독자 엄마를 돌봤고, 리 앤과 처음 자신이 사는 동네에 방문했을 때도 리 앤은 차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서 일 처리를 했다. 그리고 SJ와 쇼핑을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에도 자신보다 SJ를 지키기 위해 에어백을 막은 덕에 SJ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리 앤은 마이클에게 '네 팀이 네 가족이야.' '쿼터백이 나라고 생각해.' 이 한 마디를 건넨다. 그러자 마이클은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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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자신을 조롱하며 반칙을 쓰는 상대 선수에게 마이클이 한 마디로 못하자, 코치가 나서서 싸운다.


"내 선수라고!"


그 한 마디에 마이클은 성난 황소가 되어서 상대팀 선수들의 방어막을 무참하게 뚫어버린다. 그 경기는 크게 이슈가 되어 각 대학 미식축구팀에서 마이클을 눈여겨보고,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게 되고.


미시시피 대학을 나온 리 앤, 션 부부는 마이클도 미시시피에 가길 원한다. 운동 특기생으로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점이 2.5가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붙인 가정교사 수 선생님(케시 베이츠)도 미시시피 출신이다. 그런데 체육협회에서는 마이클을 불러다가 묻는다. '누군가가 미시시피에 가라고 강요하진 않았니?'


"리 앤, 션 부부는 미시시피 대학의 큰 후원자인데, 너를 모교로 보내기 위해 자신의 집에 데려와서 널 먹이고 입힌 건 아니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이클은 리 앤에게 화를 내고, 그날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리 앤과 션은 마이클이 없는 밤을 보내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좋은 사람일까?"


럭비를 하고 싶냐고, 미시시피 대학에 가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부부는 상의를 한다.

정말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지.


다음 날 리 앤은 마이클이 살던 동네에서 아이를 찾고, 아이에게 묻는다. '럭비를 하고 싶기는 하니?'

네가 럭비를 하고 싶다면 테네시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이 풀린 마이클은 체육협회를 찾아가 말한다.


"왜 내가 미시시피에 가고 싶어 하는지는 묻지 않아요?"

"가족이 나온 학교니까 가고 싶어요."




나는 이 영화 속 리 앤을 보면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의 출발은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그를 보게 된다. 몇 번을 보아도 그 사람이 마음에 쓰인다. 혼자 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부른다.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지켜보면서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던 것을 생색내지 않고 제공한다. 내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이니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본다. 남다르게 타고난 재능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살려줄 수 있을지, 그걸 잘 살려서 그가 결국에서 멋지게 홀로 설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돌아서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좋은 일인가?

나는 좋은 사람일까?'


스스로 깨우친 것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미쳐 묻지 않았던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를 바란다고 격려하는 것이다.


영화 속 부부의 삶은 내가 꿈꾸는 삶과 매우 흡사하다. 비록 감정을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사람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내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그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마이클과 함께 살게 되면서 '행복하다' 말하는 리 앤이 참 예쁘다. 그리고 무척 공감이 된다. 사람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보듬고, 그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보람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느끼는 행복보다, 무언가가 필요한 한 사람을 사랑하며 나도 함께 성장하는 삶, 그런 삶이 내게는 정말로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다.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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