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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2022)

- 배트맨은 경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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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맷 리브스

출연 : 로버트 패틴슨, 폴 다노, 조 크라비츠, 제프리 라이츠, 존 터투로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하고, 로버트 패틴슨이 배트맨으로 분한 2022년의 <더 배트맨>을 보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역시 놀란 감독의 <테넷>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로버트 패틴슨이어서 우연히 영화 예고편을 보고, 이건 무조건 봐야지 했다.

소문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꽤 기대를 하고 극장을 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아, 영화는 정말 감독 놀음이구나.'라고 절감. 배트맨과 썩 잘 어울리는 매력 쩌는 배우 '로버트 패틴슨'을 데리고 이렇게밖에 못하다니. 집에 가서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다시 보면서 쓰린 속을 달래야지, 극장을 나오면서는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로버트 패틴슨, 악역 리들러 역을 맡은 폴 다노 외에는 눈에 익은 배우가 없었다. 검색하다가 콜린 파렐의 이름이 나와서 콜린 파렐? 했는데 펭귄이 콜린 파렐이었다니;;; 그렇다고 알고 다시 사진을 봐도 어디가 콜린 파렐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럴 거면 굳이 콜린 파렐을 쓸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나는 영화 제작비에 배우 출연료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나 게리 올드만, 마이클 케인, 모건 프리먼 등의 배우들이 배트맨 하면 떠올라서 그런가. 연기력을 논외로 하더라도 네임드 배우가 갖는 아우라, 영화 내 영향력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고담시 시장 선거의 막바지. 4선 시장(어제 봤는데도 이름이;;)이 살해된다. 그리고 범인은 '거짓말은 이제 그만'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얼마 안 있어 총력을 다해 범인을 잡겠다던 경찰청장도 살해되고, 검사 한 명도 시장의 장례식장에서 몸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죽는다. 범인은' ? '라는 시그니처를 남기고 단서를 하나씩 남겨가며 배트맨이 자신을 추적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밝히고 싶은 비밀이 무엇인지 세상에 공개되도록 그를 이끌어간다. 놀란의 배트맨과 맷 리브스의 배트맨이 어떻게 다른가. 놀란의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너무 잘하기도 했다)은 자신이 할 일 - 그러니까 히어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면 맷 리브스의 배트맨은 경찰이 할 일을 한다. 복면을 쓰고 자신의 신분을 감췄다 뿐이지 밤이 되면 도시 곳곳을 배회하며 나쁜 짓 하는 놈들을 손봐준다. (물론 놀란의 배트맨도 그러기는 했으나) 배트맨 하면 첨단 장비 아니던가.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 하늘을 붕 나는 배트카, 헬리콥터, 바이크, 이런 거 진짜 안 나온다. 그냥 배트맨 복장을 하고 경찰들에 섞여서 범죄 현장에 가고, 대화하고 참 많이 걸어 다닌다. 배트맨 옷 덕에 총에 맞아도 안 죽는 거, 몸싸움에 강한 거. 두 개 빼고는 보통 경찰이랑 다른 게 없다. 영화 막판에 날지 못해서 떨어져 죽을 뻔한 거 캣우먼이 구해주는 거 실화? 낙하산 타고 날다가 우당탕탕 부딪히는 배트맨.. 히어로의 카리스마는 어디 갔냐고요..


암튼 고담시는 악의 무리를 처단해야 할 정치인, 법조인, 경찰들이 되려 악과 깊이 결탁하고 그의 하수가 되어 개선하기 힘든 지경의 총체적 부패 상태였다는 것. 그 시작은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이 살아 있을 때에 도시 재개발을 위해 기부한 거액이었다는 것. (돈은 내놓았으나 웨인의 부모가 살해되고, 고담의 고위직들이 승냥이 떼처럼 그 돈을 찢어 먹은 것을 시작으로 고담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됨)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를 밀고한 또 다른 악 팔코네(존 터투로)에게 코가 꿰어 고담시 시장도, 경찰청장도, 검사들도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며 살아왔다는 것. 그 사이에서 방치된 보육원에서 살던 고아 리들러(폴 다노)가 이 부정부패를 폭로하기 위해 웹상에서 동조자들을 모으고, 일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고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배트맨을 끌여들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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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굉장히 재밌으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인데 관객을 그 질문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매우 흡인력 있으면서도 납득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들은 정말 고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22년의 <더 배트맨>에는 고뇌가 없다. 어떤 주제를 던질 것인가의 고뇌. 그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드러낼까 하는가의 고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어떻게 최대치로 끌어낼 것인가의 고뇌. 감독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이런 고뇌가 부재하니 영상이 그럭저럭 빠지고, 시놉 상 큰 구멍은 없어도 굉장히 맥 빠지고 지루한 히어로물이 되어버렸다. 아니 이 로버트 패틴슨을 정말 이렇게밖에 못 써먹다니!! 폴 다노도 이 리들리라는 역할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배우인가. 그런데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다니. 물론 폴 다노의 출연작으로 PTA의 <데어 윌 비 블러드>, 드니 빌뇌브의 <프리즈너스>, 파올로 소렌티노의 <유스>를 봤기 때문에 더 비교되는 점이 있겠으나 (그래서 역시 영화는 감독빨이라는) 이런 대단한 배우들을 데리고 그들의 매력을 이 정도밖에 끌어내지 못한 점은 정말 욕을 먹어도 싸다! 내가 다 억울함.

세 단계로 나눠서 브루스 웨인이 진짜 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인간적인 고뇌와 시련을 통해 표현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그저 부모님의 유산이기 때문에 고담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사춘기 소년처럼 떼쓰는, 세상에 얼굴도 잘 드러내지 않는 우울한 도련님으로 표현한 맷 리브스. 미적 감각도 없어서 배트카가 그게 뭡니까!! 판타지 히어로물이 최소한 눈호강은 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좋은 소재와 좋은 배우와 자본이 있어도 결국 그걸 만들어내는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영화라고 본다.


지루한 영화라면 나도 본다면 보는 편인데 '지루함'이 주제를 드러내는 수단이 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을 때야 인정을 받는 것이지, 이유 없이 지루하게 만들면 그냥 지루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평점을 보고 너무 높아서 놀랐다는. 나는 기껏해야 5점이나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배트맨 돌려주시오. 로버트 패틴슨도, 그리고 폴 다노도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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