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렘을 사랑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
감독 : 사라 폴리
출연 : 미셸 윌리엄스, 세스 로건, 루크 커비, 사라 실버맨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너무 잘 봤어서 감독의 다른 영화도 보고 싶었고 때마침 <오, 멜로!>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어서 이 영화도 좋으면 넣어봐야지 하고 보게 되었다. 결론은 <오, 멜로!> 시리즈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 이 시리즈에 선택한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사랑'인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고, 영화의 메세지도 진부한 편이라 따로 <씹어먹는 영화> 매거진에 넣으려고 한다.
마고(미셸 윌리엄스)와 루(세스 로건)은 결혼 5년차에 든 부부다. 격 없는 장난을 치며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고의 얼굴에는 권태가 보인다. 이 문제를 중심화제로 던지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아직 자녀가 없는 것은 완전한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루가 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강아지를 키워볼까?' 하고 루가 던진 말에 마고가 반색하면서 '애완견을 키우면 얼마 안 있어 아이를 낳게 된다는데.' 그러나 마고의 이 말에 루는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려버린다. 시조카를 예뻐하는 것도 자신의 아이가 없기 때문에 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찌됐는지간에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사이가 좋고,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한다. 그런데 출장 갔던 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실은 자신의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마고와 루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삐걱대기 시작한다. 마고가 대니얼(루크 커비)과 루를 비교하고 다퉈서가 아니라,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괴로움 때문에 그렇다. 마고가 유부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니얼은 그녀에게 대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마고가 흔들리는 것이고 괴로운 것이다. 말로는 이러면 안된다, 그 사람에게 상처줄 수 없다고 하면서도 대니얼을 완전히 밀어내지도 못한다.
그런데 영화는 먼저 결혼 생활을 한 인생의 선배의 입을 통해, 그리고 놀이기구에 탔을 때 그 때는 너무 즐겁고 재밌지만 기구는 잠시 후에 멈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지금 마고가 느끼고 있는 '설렘'이라는 감정의 지속성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요샌 내가 다리털을 왜 미나 싶어. 어차피 우리 남편은 모를텐데. 누구 좋으라고 귀찮게 이 짓을 하고 있지?"
"결혼이 그렇지."
"그러게. 서글퍼. 10년쯤 지나면 내가 다리를 밀건 말건 더이상 누가 상관하겠어? 물론 난 아직도 남편이 좋아. 반짝 좋다가 10년 뒤엔 별로인 것보단 나은 건가? 잘 모르겠어."
"가끔 새로운 거에 혹해. 새것들은 반짝이니까. "
"새것도 헌것이 되죠."
"맞아요. 새것도 바래요. 헌것도 원래 새것이었으니까."
마고가 가정을 깰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대니얼은 그녀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누군가의 사이에 끼어있는 어정쩡한 존재로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그 다음 날로 이사를 해버린 다니엘. 그렇게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질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던 마고는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지금까지 잘 참아왔던 말을 급기에 남편 루에게 해버리고 만다. 이미 낌새를 느꼈던 루는 마고를 붙잡지 않고 오히려 떠나라고 한다. 루에게 상처준 것이 마음 아파 엉엉 울지만 결국 마고는 그의 곁은 떠나 새 사람, 바로 지금 설렘을 느끼게 하는 사람 대니얼에게 간다.
신나게 사랑을 나누고, 서로 안은 채 산책을 하고, 집안 살림이 하나 둘 늘어나지만 이 모습은 그녀가 남편 루와 함께할 때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낯선 여자를, 또 낯선 남자를 끼고 섹스를 해보지만 안경을 끼고 비스킷을 먹으며 그의 옆에 앉아 말 없이 TV를 보는 모습은 옆에 있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복사한 것마냥 똑같은 것이다.
"맘 가는대로 살면 다 잘될 거 같지? 재밌긴 하겠지, 신나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지금 그 표정 뭐야? 내가 챙피해? 자기나 나나 별다를 바 없다고. 알아?"
"무슨 말씀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자기가 나보다 더 머저리인 것 같아. 망친 건 너야. 마고. 길게 보면 말이야.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알콜릭인 누나 제럴딘이 사라져 경찰에 신고하고, 조카가 마고를 너무 보고 싶어해서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연락한 루. 루의 연락을 받고 마고는 지체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 잘 참다가 다시 술에 입을 대고 취한 채 운전을 해 자기 집으로 돌아온 제럴딘은 마고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영화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같은 장면으로 배치한다. 루와 함께할 때 마고의 얼굴의 비쳤던 권태가 대니얼과 함께 하고 있는 지금도 똑같이 비치는 것이다.
설렘 없이 시작되는 사랑은 없다. 자꾸만 그 사람이 생각나고,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대는 그런 것. 서로를 바라보는 아련한 눈빛과 손을 맞잡았을 때 찌릿하며 뭔가 관통하는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런 감정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내 앞에 있는 네 얼굴이, 몸과 몸이 맞닿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겨지는 날이 머지 않아 온다.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할지도 모르겠다. 유혹을 이기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익숙함이 편안함을 지나서 권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인생에는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우리의 사랑에도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구멍이 참을 수 없을만큼 크게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가 들면 우리의 몸이 늙듯이,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지고 고장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고가 '설렘' VS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할 때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선택하기를 바라며 응원했다. 그 쪽이 '사랑'과 더 닿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대니얼과의 시작이 아마도 루와의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그렇다면 과정과 결과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대니얼이 갑자기 떠난 것'이 변수가 되어서 마고는 복받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상당히 충동적으로 루의 곁을 떠나 대니얼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30년 후가 아니라(마고는 30년 후에 등대 앞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지금 너와 함께 해서 좋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을 그와 함께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과 권태는 똑같이 찾아온다. 그 때 마고는 '설렘'과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까. 끊임 없이 설렘을 주는 상대로 갈아타는 것이 인생에서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영화의 원제는 Take this waltz 이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도사랑일까'로 제목을 바꿨다. 좀 직설적이긴 하지만 영화의 주제를 잘 전달하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설렘이 과연 사랑일까?'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 확신할 수는 없다.
나는 '상처주고 싶지 않은 마음' '약속을 지키는 것'에 부등호를 열고 싶다. 그것을 선택해야 덜 후회할 것 같다. 인생의 빈틈을 모두 메우려는 건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