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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un 10. 2022

디아워스 (2002)

- <댈러웨이 부인> 으로 꿰어진 다른 시간 속 여인들의 삶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스티븐 딜레인, 존 C 라일리, 에드 해리스, 앨리슨 제니


이 영화는 ost로 먼저 만나게 된 영화다.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라는 책은 작곡가 푸디토리움(김정범)이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음반들을 소개하는 책인데 그 책에서 이 영화 <디아워스>의 OST앨범을 극찬해서 듣게 되었는데 그렇게 작곡가 필립 글래스도 알게 되고, (박찬욱이 영화 <스토커>에서 이 필립 글래스와 함께 작업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영화를 모르는데도 음악이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했던, 그런 영화다. 또 몇 년 전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라는 책을 어렵게 어렵게 완독하고 나서 울프에 대한 관심도 생겨서 울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이 영화에 관심이 생겼었다. 그리고 BBC리스트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이번에야 말로 한 번 봐야겠다고 하고 보게 되었다. 마이클 커닝햄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디아워스>를 각색해 영화로 만들어서인지 영화의 짜임이 독특하지만 엉성하지 않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세 주인공의 삶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1923년을 사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니콜 키드먼이, 1951년에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평범한 가정 주부 로라 브라운은 줄리안 무어가, 2001년을 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클라리사는 메릴 스트립이 맡아 열연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 시도 이력이 있는 정신질환자이다. 남편 레너드 울프(스티븐 딜레인)는 아내의 죽음만은 막기 위해 런던 중심부에서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집을 구하고 같은 건물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며 헌신적으로 아내 버지니아 울프를 보살핀다. 그러나 울프는 잘 먹지도 않고, 잘 자지도 않고, 잘 쉬지도 않아 늘 레너드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런던에 사는 언니가 조카들을 데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러 오지만 너무나 불안하고 우울한 그녀의 정신 상태를 보고는 자신의 아이들을 그녀와 함께 있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울프는 남편의 눈을 피해 런던으로 도망가려고 기차역에 오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레너드가 기차역으로 와 그녀를 만나면서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집을 나간 울프는 그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로라 브라운은 돈 잘 벌어오고, 자기만 지극히 사랑해주는(자기 생일에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는) 남편과 예쁜 아들과 뱃 속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예쁘게 꾸민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은 행복하지가 않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남편의 생일 케익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이웃 키티가 찾아와 자신의 몸에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얘기를 하며 울먹이자 충동적으로 키티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들 리치가 보게 되고, 당황한 키티도 자리를 떠나자 로라는 이 상황을 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며 난리를 치는 아들 리치는 다른 이웃에게 맡기고 로라는 호텔 방을 잡아 혼자가 된 후 챙겨온 약병들을 꺼낸다. 그러나 뱃 속 아이를 생각하니 이렇게 목숨을 끊는 것은 도저히 못할 것 같다. 로라는 리치를 데리러 와 집에서 남편 생일 케익을 멋지게 만들어 그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만 화장실에서 남편 몰래 운다. 



클라리사는 (영화를 보고 <댈러웨이 부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 댈러웨이 부인의 이름이 클라리사임. 그리고 지금 클라리사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인 샐리도 울프의 소설 속에서 클라리사가 사랑한 여인의 이름임) 옛 연인(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리처드(애드 해리스)가 시인으로서 큰 상을 받게 되어 기념 파티를 열 계획이다. 그런데 클라리사와 리처드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알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지금 클라리사는 연인으로 보이는 여자 샐리(앨리슨 제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없다.' '널 정말 사랑한다' 라고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클라리사와 리처드) 말하고 있지만 그럼 과거에는 남자와 사귀었다가 지금은 여자를 사귀는 것인가? 헷갈리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다 리처드는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데 역시 동성 연인이었던 루이스가 그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클라리사네 집에 찾아오기 때문에 둘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정확히는 모르겠더라는. (둘 다 양성애자인가) 어쨌든 클라리사와 리처드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클라리사는 리처드가 자신의 병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를 잘 돌봐주고 있다. 

그런데 리처드는 너(클라리사) 때문에 죽지 못하고 억지로 살고 있다고, 더 이상은 이렇게 하루 하루 생명을 연장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울분을 토한다. 그리고 그를 데리러 온 그녀 앞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얼만큼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느냐로 따진다면 비교적 잘 만들어진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에 이입되는 지점이 없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썩 재밌지는 않았다.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면서 친언니에게 입맞추는 정신분열환자, 상대의 의향은 어떤지 묻지 않고, 이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도 무시한 채 자신의 감정에 취해 충동적으로 키스하는 두 아이의 엄마인 동성애자, 과거에는 이성과 사랑을 했고, 정자 기증을 받아 딸을 낳고 현재는 동성 연인과 함께 살면서 과거의 연인을 돌보는 중년 여성. 

이들의 삶이 잘못되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게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입되는 지점이 없었고, 이입이 안되니 이해도 잘 안되고, 이해가 안되니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한 세 명의 여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에는 버지니아의 남편 레너드, 로라의 남편 댄과 아들 리치, 클라리사의 딸 줄리아도 내 눈에는 가여워 보이는 것이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의 삶이 얼마나 기구했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녀가 그렇게 정신 질환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도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성폭력, 일찍 부모를 여읜 충격 등이 크게 작용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또 동성애라는 것이 용인되지 않던 시대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이성과 결혼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했던 로라의 고통도 예상치 못하는 바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 자신이 한 선택이나 혼자서 딸을 키우면서 겪었을 어려움들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예술 작품은 설정의 독특성과는 무관하게 결국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성으로 합류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잘 보기 힘든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도 그 인물에게서 한 두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인간과 인생에 대해, 나와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 영화가 좀 아쉽다. 주인공들과 내가 단절된 느낌이 드는 것, (원작 소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감독이 이 인물들을 보편성으로 끌고 가 살짝 닿게만 해주었으면 훨씬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 


 



영화의 끝에 클라리사의 집으로 늦은 밤 누군가 찾아온다. 그 사람은 자살한 리처드의 엄마 로라 브라운이다. 에이즈에 걸린 시인이자 소설가, 오늘 낮 자기 집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 리처드가 바로 로라의 어린 아들 리치였던 것이다.

클라리사와의 대화를 통해 로라는 둘째 아이를 낳고 바로 남편과 두 아이를 버려두고 캐나다로 건너와 따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로라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가족들이 상처받았던 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남편도, 둘째 아이도, 리치도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것. 상처받은 이들보다 자신이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로라는 죄책감을 동반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리처드의 전 연인 루이스와, 딸과의 대화를 통해 클라리사는 리처드가 죽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곱씹어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작중 인물인 클라리사를 죽여야하나마나 고민하지만 결국 죽이지 않는다. 남편 레너드는 꼭 누구 하나는 죽여야겠다는 아내를 보며 왜 그래야하냐고 묻지만 버지니아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 자신을 인물의 죽음과 맞바꾼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반영된 인생을 볼 때 가장 동질감을 느끼고 이입하게 된다. 기쁜 일이 있다면 화나는 일도, 슬픈 일도 있는 것이고 언젠가는 즐거운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구하기만 한 인생, 아니 기구한 면만 조명된 인생을 보는 것은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그래도 원작 소설의 설정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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