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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un 15. 2022

천주정 (2013)

-나는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감독 : 지아장커

출연 : 강무, 자오 타오, 왕바오창, 나람산


2013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 <천주정>,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작품으로 나는 이 영화로 지아장커 감독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중국의 영화감독은 장예모, 첸카이거 정도만 알고, 또 그들의 영화만 보았었는데 검색 중 '지아장커'라는 이름을 보게 되어 이 감독님 영화가 궁금해 보게 되었다. 

사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꼽은 21세기 영화 30선에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가 선정된 것을 보고, 이분이 누군가 검색해 보다가 꽤 유명한 분인데 내가 아직 몰랐구나 하고서 보게 된 것이다. 보고 나서 '우와 대단해' 바로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보면서 꽤 재미있었고,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보고 나니 처음 볼 때 놓쳤던 것들이 보이면서 영화의 짜임새가 굉장히 탄탄한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지역'을 기반으로 순환고리처럼 연결해 보편성을 획득하는데(특정한 누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라는 뜻이고 하나의 공동체 안에 속해있다는 뜻이겠다. 즉 이 순환고리가 중국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속에 속한 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는 기본 명제는 주인공들의 행동에 의해 잘 뒷받침된다. - 계획적이라기보다 충동적이고, 그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영화는 아직까지도 중국에서 상영금지이다) 괜히 각본상을 받은 게 아니구나 싶다. 

그래서 영화의 형식은 옴니버스이지만 매우 유기적인 한 덩어리가 된다. 



먼저 우진산에 사는 따하이(강무)의 이야기이다.

우진산은 광산이 있는 지역으로 광산은 이 지역 사람들의 공동재산이었다. 그러나 '쟈오'라는 자본가에게 마을 이장이 광산을 팔아버린다. 물론 팔기 전에는 매년 광산에서 나는 수익의 40%를 배당금으로 준다고 약속했었고, 그 약속이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도 동의한 것인데 14년이 지나도록 쟈오와 이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따하이는 이장에게, 또 쟈오의 회사인 셩리 그룹의 회계사인 리우에게 '뇌물을 얼마나 받았느냐?'며 그들이 오랫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나는 현재 우진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뜻의 말을 분명하게 전하지만 그들에게 무시만 당할 뿐이다. 그 사이 쟈오는 전세기를 살 정도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쟈오에게 저항하는 대신 그를 부러워하고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이미 그런지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전세기에서 내려 주민들이 주는 꽃다발과 박수와 환영을 받아 기분 좋은 쟈오에게 따하이가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베이징에 갈 여비 좀 주시오, 중기위(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가서 이장하고 당신 고소하러 갈 건데, 돈이 부족하네.' 쟈오는 여유 있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맞받아치지만 그가 자리를 떠나자 겉모습은 경호원이나 비서로 보이지만 일명 쟈오의 따까리들이 삽으로 따하이를 내리친다. 따하이를 때리는 사람을 보면서 웃으며 '골프 치니?'라고 묻는 쟈오의 비서.  그렇게 따하이는 아무것도 못하고 몸만 다치고 수치만 당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쟈오의 비서가 찾아와 돈다발을 건네며 '없었던 일로 하자'라고 하는데, 따하이는 돈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 이 돈을 받고 없었던 일로 한다면 뇌물을 받고 쟈오의 따까리 노릇을 하는 놈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결심을 하기 전 따하이는 누나를 찾아가 만나고, 누나는 이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10년 넘게 쟈오와 이장을 고소하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결혼도 안 한 남동생 따하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하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따하이에게 누나는 이렇게 말한다. "쟈오보다 더 나쁜 놈 되게?"

그 말이 트리거가 된 걸까? 이장이나 쟈오보다 자신이 더 독하다며 지켜보라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따하이는 장총(사냥용)을 챙겨 들고나간다. 먼저 리우 회계사를 찾아온 따하이. 따하이는 총을 들이대며 이장이 얼마나 뇌물을 받았는지 쓰라고 협박하지만, 쓸듯 하던 회계사는 '쏴봐, 어차피 쏘지도 못할 거면서' 라며 따하이를 도발하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따하이는 당황하지만 계속된 도발에 충동적으로 총을 쏴 회계사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남편에게 총을 쏜 따하이에게 달려든 그의 아내에게도 고민 없이 총을 쏴 죽인 후 그는 이장을 찾으러 가는데 그곳에 이장은 없고, 시시덕거리며 자신을 보고 '골프 선생'이라고 놀리던 이장의 부하만 있다. 이장이 어디 갔는지 알아낸 후 따하이는 '너 지금 나 뭐라고 불렀어?'라고 묻고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한 부하는 '골프 선생'하고 깐족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따하이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이제 이장이 있다는 절에 가 이장을 만나는 따하이. 이장은 '이러지 말라'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따하이가 원하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따하이는 이장에게도 총을 쏜다. 그리고 이제 남은 사람은 바로 쟈오 사장이다. 쟈오 사장의 차에 타 그를 기다리다가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묻는 쟈오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역시 총을 쏴 죽인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이들보다 더 강하고 독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듯 섬뜩하게 웃는다.



두 번째는 충칭에 본가를 두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가족에게 돈을 부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조우산(왕바오창)의 이야기이다.(청부살인업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조우산은 따하이가 사는 우진산에 온다.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그를 우습게 본 그 지역의 건달 셋은 그를 멈춰 세우고 도끼로 위협하고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지만 무표정하게 그들을 보던 조우산은 외투 안에 천천히 손을 넣더니 총을 꺼내 세 명을 무참히 죽인다. 이 장면이 영화의 시작이고, 이렇게 세 명의 건달을 죽이고 우진산 쪽으로 가는 그가 이미 강도살해 현장에 와 있는 따하이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고(무엇인지는 모르나) 새해를 맞아 고향 충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아내와 어린 아들도 있다. 각기 고향에서 떠나 사는 삼 형제. 어머니의 생신 때 챙겨드리지 못하고 새해 명절을 쇠기 위해 고향에 온 김에 어머니 생신 잔치도 연다. 물론 엄마는 이렇게 밖에 못하는 아들들에게 불만이다. 

또 집에 붙어 있지 않고 늘 밖으로 다니며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말도 하지 않으면서 큰돈을 붙이는 남편 조우산 때문에 그의 아내는 늘 불안하고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아버지를 자주 못 보는 아들도 그에게 서먹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우 산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지만 자기 가족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챙긴다. 그러나 그는 아이에게 불꽃놀이를 위해 폭죽에 불을 붙여주겠다며 폭죽을 향해 총을 쏘는 아주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오랜만에 온 고향을 어슬렁거리다가 동네 도박판에서 시비가 붙어 치고받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의 눈에는 그런 그들이 우스워보일 뿐이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였으면서 담배 3개비에 불을 붙여 그들을 위해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원망하라"라고 말한다. 

조우산의 아내는 그의 가방 속에서 총알을 발견하고는 더욱 불안해 떠나지 말라고 하지만 그는 "여기는 지루하다. 총을 쏘면 지루하지는 않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명절 연휴가 끝나가자 그는 목적지가 다른 세 장의 버스표를 산다. 자신조차도 그중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시내 상가 한 곳에 들러 자신의 짐을 잠시 맡긴 후,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는 부부의 뒤를 쫓는다. 그의 작전은 아주 심플하다. 돈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에게 총을 쏜 후, 가방을 챙기고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편도 총으로 쏴 죽인다. 이것은 대낮,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하늘에 한 방 총을 쏜 후, 사람들을 위협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서는 총을 쏘면서 서로 추격하고 죽고 죽이는 액션 영화를 틀어준다. 버스를 탄 사람들은 재미있게 그것을 보지만 정작 같은 버스 안에 이 영화보다 더한 짓을 한 살인마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조우산은 중간에 버스를 세워 내린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유엔산 마을 사우나(안마)에서 캐셔(카운터)로 일하는 샤오위(쟈오 타오)의 이야기이다. 샤오위는 광저우에서 일하면서 거기 사는 유부남 장요우량과 연애를 한다. 꽤 오랜 기간 사귀었는데 남자가 매번 말만 그럴싸하게 할 뿐 아내와 헤어지지 않아 샤오위는 심난하다. 그리고 현재는 광저우가 아닌 이창에 살고 있다. 애인은 함께 광저우로 돌아가자고 하지만(그녀를 보기 위해 잠깐 온 듯) 샤오위는 자신과 아내 중 한 명만 택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남자를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에게 선택권을 줄 뿐 자신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를 보내고 사우나에서 근무하는데 남녀 한 쌍이 사우나에 들어온다. 여느 때처럼 사우나와 숙박 중 뭘 하겠냐고 상냥하게 묻지만 젊은 남자는 말이 없고, 함께 온 중년 여인은 자신이 장요우량의 아내라면서 그녀를 때리고 남자는 그녀를 집어던진다. '그 따위로 살라고 네 부모가 가르쳤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여자에게 샤오위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다. 다음날 고향 집에 가 엄마를 만나지만, 엄마는 광저우에서 여기로 돌아온 샤오위가 못마땅하다. 고향은 공항을 짓는다고 분주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완공된 후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완공되면 인부들도 다 떠날 것이고 자신도 이곳을 떠나겠다고 한다. 다시 일하러 마을을 나가는데(나가는 차가 없어 공사 차량을 얻어 탐) 마을 건달들은 공항 인부들에게 통행료를 내라고 협박하고 구타한다. 자신의 근무 시간이 끝나, 다른 직원과 교대 후 자신의 옷을 빠는 샤오위. 때마침 그 사우나에 아까 인부를 협박하며 구타하던 건달 둘이 오게 되고, 대야에 물을 담아 걸어가는 샤오위를 눈여겨봤던 한 남자가 빨래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와 마사지를 해달라고 한다. 자신은 마사지를 하지 않는다며 거절하지만 이 남자는 막무가내다. 같이 왔던 남자까지 대동해서 돈다발을 들이밀고 막말을 퍼부어대며 급기야 그 돈다발로 샤오위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맞기만 하던 샤오위는 가슴에 품고 있던 장요우량의 과도를 꺼내(장요우량이 광저우로 떠날 때 캐리어에 들어있던 과도를 검색대에서 통과시키지 않자 샤오위가 가져온 것) 자신을 때리는 남자의 가슴을 길게 긋는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서도 달려드는 남자의 복부를 힘껏 찌른다. 다시 한번 칼을 휘둘러 결국 남자를 죽인다. 샤오위는 광기 서린 눈을 하고서 온몸에 피범벅을 하고 여전히 손에 칼을 꽉 쥐고서 사우나를 나와 집을 향해 걷는다.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을 보고, 동물(소)을 보고도 눈을 부라리며 칼을 들어 보이며 위협한다. 한참을 걷다가 숨을 고른 샤오위는 전화를 걸어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가장 나이가 어린 청년 샤오후이(나람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청년은 광저우 세탁공장에서 일하다가 동관(지역명)으로 넘어오는데 이 세탁공장의 관리자가 바로 샤오위의 애인 장요우량이다. 옷감을 자르고, 다림질과 바느질을 하는 도구들이 위험하다 보니 일할 때 '잡담 금지'라는 조항이 있었다. 아직 휴대폰이 없는 샤오후이는 아이폰을 갖고 있는 동료 창링의 폰을 만진다. 이때 샤오후이는 일을 마친 상태인지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창링은 아직 일을 하고 있다. '동관'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GPS'를 찾는데 사실 동관에 가는 방법을 샤오후이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저 아이폰이 한 번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몇 마디 잡담을 하다가 창링이 손을 다친다. 최소한 2주 정도는 일을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 관리자 장요우량이 병원비는 회사에서 내겠지만 창링이 일하지 못하는 기간에 월급 정산은 해줄 수가 없다. 그러니, 네 월급을 창링에게 줘라. 이러는 것이다. 말이 좋아 2주지, 창링이 언제 일을 다시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은 자신이 하고 돈은 창링에게 가는 꼴을 그냥 볼 수 없는 샤오후이는 도망쳐 아예 동관으로 와버린다. 광저우에서 동관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샤오후이는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게 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급여를 물어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적다. 친구는 그럼 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해보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돈 많은 홍콩 사람, 타이완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고. 팁도 많이 준다고.

샤오후이는 그곳에서 기차에서 보았던 소녀 리앤룽은 다시 만난다. 사실 이 클럽이라는 곳이 돈도 많고 나이도 많은 변태 같은 남자들이 젊은 여자애들을 경매에 나온 물건처럼 하나하나 살피면서 콜렉팅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이 리앤룽은 굉장히 사교성이 있는 아이여서 샤오후이에게 스스럼없이 대한다. 게다가 둘 다 후베이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둘만이 알 수 있는 대화 주제가 있어 둘은 금방 친해진다. 리앤룽은 샤오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광둥에선 우리 직업은 '불법 거래'라고 불러. 그래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해."

불교도인 리앤룽은 물고기를 사서 방생해주는 착한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느끼고 있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한다. 리앤룽이 좋아진 샤오후이는 일하지 않는 낮 시간에 그녀를 데리고 강가에 가서 물고기를 같이 방생하고, 불상이 많은 곳에 데려가 함께 기도하고 작은 불상을 선물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너를 좋아한다고. 리앤룽도 샤오후이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샤오후이가 착한 사람,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현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 "화류계에 진짜 사랑은 없어. 날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 난 딸이 있어. 세 살이고 광저우에 살아. 그리고 내가 키우고 싶어."

그 밤, 다시 손님에게 호출된 리앤룽이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샤오후이는 클럽을 그만둔다. 친구가 일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기로 하고 작아도 조금씩 돈을 모아야지 하고 있는데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닦달하며 돈을 부치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부쳤잖아. 나도 먹고살아야지. 정말 없어.'라고 말해도 안 통한다. 전화를 끊지 않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샤오후이는 눈물을 흘린다. 곧 소리 내어 운다. 오락실에 엎드려 자고 있는 샤오후이를 찾아온 건 광저우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 즉 창링이다.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았냐며 샤오후이를 빙 둘러싸고 창링은 가져온 둔기로 그를 내리치려다가 그만둔다. 그가 버리고 간 둔기를 들고 기숙사에 간 샤오후이. 그는 자신의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열려 있는 창문 아래로 몸을 던진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나 머리를 단발로 자른 샤오위는 따하이가 살던 우진산에 와 셩리 그룹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본다. 셩리 그룹 건물 내부 벽에는 전세기를 타고 온 부부를 환영하려고 마중 나갔던 때 찍었던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현재는 쟈오의 부인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렇게 먼 곳으로 일하러 온 이유를 묻지만 그저 환경을 바꾸고 싶었다는 말만 한다. 전에 했던 일이 뭐였냐는 질문에도 광저우 의류공장에서 일했던 사실만 말하고 유엔산 사우나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낯익은 이름인데 고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간단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면접을 본 후 모래 바람을 맞으며 성벽 근처에 온 샤오위는 그곳에서 경극 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고, 무리들도 구경하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나를 살인자로 몰아가니 차마 변명할 수 없구나. 누명을 쓰게 되어 눈물이 흐르네."

"수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


경극의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샤오위는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곳에 같이 있는 무리들에게 이것은 한낱 경극에 불과할 뿐이다.



따하이는 우진산의 정의의 사도였다. 불의를 불의로 인식하고 14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그 불의에 타협하거나 순응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해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는 사람은 없고, 오히여 나더러 '정신 차려라, 그만해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지고 싶지 않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불의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죽인 사람 중에 광산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말을 학대하는 마부인데, 전에도 사정없이 말에게 채찍질을 하는 그를 보며 따하이는 욕을 퍼부었다. 그런데 나쁜 놈을 모조리 죽여버린 그날, 그날도 말을 학대하는 마부를 발견한 따하이는 순간의 고민도 없이 그에게 총을 쏴 죽인다. 

조우산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이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그에게서 돈을 빼앗는 것으로 돈을 번다. 그는 원한이나 분노 때문에 살인하는 것이 아니다. 총을 쏘고 사람을 죽여야지 지루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담배에 불을 붙여 1분간 애도하는 것으로 그의 행위에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죽인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늘을 원망하라고 한다. '그러게 왜 내 앞길을 막았어. 하필 왜 니들이냐. 날 이렇게 만든 하늘에 원망해라.'

샤오위는 유부남과 연애를 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마사지를 강요하는 남자를 밀쳐내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지 마세요! 난 마사지 안 한다고요. 집에 있는 부인에게나 가시라고요!"

부인 있는 남자와 만나면서 다른 남자에게는 '부인에게나 가!'라고 말하는 아이러니.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멈추기 위해 그녀는 칼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걸까.

샤오후이는 타인이 아닌 자신을 죽인다. 그저 친구의 휴대폰이 부러워서 만져본 것뿐인데 일이 커졌다. 집에서는 늘 돈을 달라고 자신의 목을 죈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는데 그녀는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매춘부의 삶을 그만둘 수가 없다. 창링에게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건만 그는 자신을 찾아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굳이 왜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지아장커 감독은 정신적 성장이 물질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중국의 현실을 이 영화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팔아넘겨 이득을 취하고 많은 사람들의 고통에는 모르쇠 하는 자본가와 그의 수하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멈춰 세워 위협하며 돈을 뜯어내려 하거나 통행료를 내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 불법 안마 시술소, 매춘을 주업으로 하는 클럽,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좀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사람들. 네 명의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가 이미 이러하고, 그들이 분노할 만한 명분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들이 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가 그들을 둘러싼 환경, 그들이 겪은 일들로 모두 설명될 수는 없다. 제공된 명분을 넘어서서 파괴하며 그것을 승리라 여기고(따하이) 무감각하여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조우산), 밀쳐내고 도망치는 대신 살인하고(샤오위), 고통을 극복하는 대신 도망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샤오후이) 이들에게서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파괴, 폭력의 본능을 본다. 외부적 조건이 아무리 몰아세워도 내부에서 그렇게 할만한 힘이 없다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본능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14년을 참으며 불의와 싸운 정의의 사도가 무차별 살인을 벌이며 섬뜩하게 웃는 것이고, 지루한 게 싫어서 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이고 돈을 빼앗는 것이고,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대신 칼을 휘두르는 것이며(그것도 죽을 때까지 몇 번을), 나를 파괴하고 살해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너'에게도 이런 본능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너는 다를 것 같아?' 하고 묻는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와 별개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떠한가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총질을 하지 않아도,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인간들은 가는 사람의 길을 막아 돈을 갈취하고, 맘에 안 든다고 손찌검을 하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가지지 못한 자를 유린한다. 

내가 정의의 사도라는 생각에, 아무리 총질을 해대도 나를 건드리지는 못한다는 오만에, 나는 매춘부가 아니라는 자의식에, 나는 세상을 극복할 수 없다는 왜곡된 믿음에 함몰되는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촘촘해서 감독이 보여주는 것들을 다 다루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목 '천주정'에 대한 의견은 덧붙이고 싶다. 나도 제목의 뜻을 잘 이해하고 싶어서 한자 사전도 뒤져보고, 중국어 사전에도 검색해 봤는데 '주'라는 단어가 '흐르다'라는 뜻이 있는 건 맞는데 '주정'이라는 단어가 한 단어로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라는 뜻이 있다. 포스터 안의 문구 '하늘에 흐르는 운명'은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선뜻 와닿지가 않는다. 조우산이 '하늘을 원망해!'라고 말한 것과 연결 지어도 '하늘이 정한 운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데, 그게 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나' 혹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숙명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나는 살인자로 몰리는 것에 대해 누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누명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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