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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Feb 25. 2022

캐롤 (2015)

- 지극히 평범한 멜로가 관객을 사로잡는 법

감독 : 토드 헤인즈

출연 :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69위에 랭크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을 보았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영상을 참 아름답게 찍는 것 같다. 전에 리뷰한 <파 프롬 헤븐>도 그렇고 이 영화도 탁월한 영상미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캐롤 에어드 역의 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 역의 루니 마라 두 배우의 각각 색깔이 다른 완벽한 미모가 그 영상미의 화룡점정이다. 감독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관객을 꼬신 후, 이미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들에게 잔뜩 가산점을 받아놓고 영화를 끌고 간다. 


배경은 50년대 미국, 캐롤은 결혼해서 어린 딸이 있는 상류층 유부녀이고, 테레즈는 사진작가의 꿈이 있으나 현재는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둘은 과거에 어떤 연관성도 없는 생판 남이나 딸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캐롤이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테레즈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시선은 캐롤을 테레즈에게로 이끈다. 첫 만남부터 묘한 기운이 흐르는 두 사람,  어려서도 인형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며 '기차' 선물을 추천하는 그녀에게서 캐롤은 동질감을 느낀다. 물건을 사고 캐롤은 떠났지만, 그녀의 장갑은 테레즈의 눈앞에 있다. 테레즈는 캐롤의 집으로 보낼 선물을 포장하며 그 안에 장갑을 넣는다. 상자를 열어본 캐롤은 백화점에 전화를 걸어 테레즈와 통화를 하고 만나서 식사를 한다. 이미 그때부터 두 사람의 눈빛은 아주 아주 끈적하다. 

누군가에게 반했다는 증거는, 그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도 계속 그 사람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캐롤도, 테레즈도 너무 많이 서로를 떠올리며 생각하게 된다. 캐롤은 식사를 하면서 주말에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초대를 하고 테레즈는 고민 없이 수락한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갈등 상황이 그대로 연출된다. 남편은 여자와 지나치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내에 대한 의심과 불만이 쌓여있으나 아내와 이혼하고 싶지는 않은 상태. 그러나 그 둘은 이미 이혼 협의를 진행 중이다. 그리고 여자(캐롤)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 정말 그래도 될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대상은 '아이'이다. 가정의 갈등은 막 사랑의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두 사람 앞에 그대로 노출되고, 두 사람 모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당황스럽고, 화가 난 캐롤은 테레즈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캐롤의 남편 하지는 초강수를 두어 캐롤이 딸을 만나지 못하도록 접근금지명령 신청을 하고, 캐롤은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테레즈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테레즈는 만나는 남자(리처드)가 유럽 여행을 가자고 졸랐을 때는 한사코 거절했는데 다른 여자와 며칠이나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리처드는 그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테레즈는 그와의 이별이 힘들지 않다. 오직 캐롤과의 여행에 마음이 부풀뿐이다. 


자동차로 이동해가며 날이 저물면 숙소를 잡아 묵고, 다음 날 아침이 밝으면 이동하는 식의 별다른 목적 없는 여행일 뿐이지만 그녀들은 행복하다. 사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둘이 함께 있는 것이기에 다른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말로 차마 표현하지 않았던 것을 어느 날 밤, 말로 또 몸으로 표현하며 둘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캐롤의 남편 하지는 사람을 붙여 그녀가 하는 은밀한 행위를 카메라에 담고 소리로 담아 증거물을 남긴다. 그녀를 압박하며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있었고 또 그녀에게 딸을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이다.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캐롤은 테레즈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남기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딸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어서 심리치료를 받고, 남편의 가족과 만나 자신이 문제없다는 것을 어필한다. 테레즈는 캐롤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며 사랑을 고백한다. 테레즈가 너무 그리우면서도 지금은 딸을 데려오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캐롤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이혼 심리기일에 양측 변호사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다가 캐롤은 '이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건 잘못된 거다.'라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그리고 내 욕심이 아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캐롤의 대사 역시 우리가 예상하는 딱 그것이다.


"나를 속이면서 살고 싶지 않아."


캐롤은 남편에게 양육권을 넘기고 정기적으로는 꼭 만나야겠다고 못을 박는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타임즈의 사진기자가 된 테레즈를 보기 위해, 자신의 맘을 담아 편지를 써 다른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캐롤에게 큰 상처를 받은 테레즈는 고민하지만 결국 그녀를 만나러 나가고, 캐롤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테레즈는 그녀의 마음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는다.

원래 자신의 일정대로 친구의 파티에 가서 시간을 보내던 테레즈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이 캐롤을 향해 있음을, 같이 살자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녀 캐롤이 있는 곳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엔딩 장면에서 테레즈가 캐롤이 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면서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는 모습, 캐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먼저 테레즈가 그녀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자기 앞에 선 테레즈를 발견한 캐롤의 얼굴을 카메라는 느리게 보여준다. 앵글 안에 그녀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참 잘 만든 엔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설마 이게 다야?' 했다. 흘러가는 과정이 너무나 진부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이로 나오는 두 주인공이 동성인 두 여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런 판에 박힌 멜로 진행방식의 전형을 따르기 때문이다. 갈등으로 예상되는 상황, 그것을 표현하는 대사들도 너무나 틀에 박혀서 설마 싶은 거다. 그런데 감독이 일부러 그런 방식을 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사랑도 남녀의 사랑같이 진부해. 특이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어.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상처받고, 화해해. 이런 걸 표현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면 더할 나위 없이 그 표현 방식이 주제와 잘 드러 맞는다.


그러나 나는 이성간이든 동성 간이든, 사랑에는 시간과, 노력과 의지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첫눈에 반하는 사랑 얘기에는 공감이 잘 안 된다. 천천히 내 안의 것을 보아주고, 알아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그런 사랑,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그런 사랑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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