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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Feb 28. 202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2003)

- 흐르다가 다시 도는 삶

감독 : 김기덕

출연 : 김종호, 서재경, 김영민, 김기덕, 오영수, 하여진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66위에 랭크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았다. 이 리스트에는 이 영화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선정되었다. 홍상수, 봉준호, 이창동, 김지운 등 세계에도 통하는 영화들을 만드는 우리나라 감독들이 있는데 김기덕의 영화가 선정된데에는 서양인의 눈으로 봤을 때 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관객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기로 유명하다. 나도 그의 영화를 몇 편은 보았고, 항상 플롯 자체만으로 이슈화되는 영화를 만들어서 보지는 않았어도 어떤 내용인지는 아는 영화도 많다. 그러나 왜 이 사람의 영화가 영화제에서는 인정을 받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이해되지가 않아서,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다시 제대로 한 번 보자 싶어 <비몽>은 예술영화 전용관까지 찾아가서 봤었더랬다. 

이건 내가 보고 내 생각을 쓰는 리뷰이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은 참 무식하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작품 안에 고뇌가 없다. 그리고 풀어가는 방식도 너무 일차원적이고, 그의 사유(라고 부를 것도 없지만)도 유치하고 얕다. 이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의 인생을 유년기 - 소년기 - 청년기 - 장년기로 나누어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매칭하고 '그리고 봄' 이라는 말로 불교의 윤회 사상을 아주 일차원적으로 표현했다.

환경이 성품이나 배경지식, 삶의 목표에는 영향을 끼칠 수 있으나 인간의 본성 즉 '본능'까지는 건드릴 수가 없다. 약한 것을 정복하고 싶은 본성(동자승) - 성적 본능(소년 승) - 소유욕과 분노(청년 승)는 세속과 동떨어져 호수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 채의 암자에서 산다고 해도 소멸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영화속 주인공은 오히려 세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보다도 악한 본성을 다스리지를 못한다. 병을 고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소녀의 몸을 탐하고(여기에서 소녀의 엄마가 노승과, 젊은 소년 승 둘이 거처하는 이 암자, 달려서 도망칠 수도 없는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이 암자에 젊은 딸을 덩그러니 놓고 사라진다는 설정 자체가 무식 그 자체, 노승은 단 번에 이 소녀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해 버리고, 정말로 소녀의 건강이 회복된다....)소년의 타락을 목격한 노승이 소녀를 내쫓자, 소년은 절을 떠나 세상으로 간다. 그리고 청년이 되어 다시 찾았을 때는 그는 아내의 외도를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쳐 온 것이다. 도망쳐와서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원망하며 분노를 터뜨린다. 노승은 고양이 발을 붓 삼아 암자 앞 마루에 불경을 쓰고, 청년에게 칼로 그 글씨를 파내라고 한다. (이런 행위가 사람을 반성하게 하고 변화시킨다는 설정도..) 그 다음 날인지, 며칠 후인지 범인을 찾으러 형사 둘이 암자에 오는데, 노승이 '이 글씨를 파낼 때까지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주고, 그를 기다리면서 하는 행동이란 다 먹은 사이다 캔을 호수에 던져 버리고 그 캔을 맞추려고 권총을 난사한다. (세상에... 정말 세상 무식) 그리고 노승은 단번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 캔을 명중시키고... 

시간이 흘러 김기덕이 된 장년 승은 옥살이를 하면서 해탈한 듯이 보인다. (그 사이 노승은 자기 얼굴의 모든 구멍에 닫을 폐(閉)자를 써 붙이고 분신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그에게서는 노승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만의 속죄 행위가 계속된다. 정해진 기간 수감생활을 마쳤지만, 자신 스스로는 아직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잡혀 들어가기 전 불경을 파내며 땀을 흘렸던 것처럼, 한 겨울 웃통을 벗고 냉수마찰을 하고 불상을 들고 산을 오른다. 이 사이 얼굴을 머플러로 꽁꽁 싸매고 아기를 안고 암자를 찾은 어떤 엄마는 아이만 놓고 도망치려다가 장년 승이 언 호수 한 가운데 파 둔 구멍에 빠져 죽는다. 남겨진 아이는 영화 처음에 등장했던 동자승과 같은 얼굴을 하고 처음의 동자승이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에 돌을 묶어 놓았던 것과는 살짝 다르게 걔들의 입에 돌을 물려 죽게 한다. 



속세와 단절됐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호수 한 가운데에 암자 한 채를 짓는다. (설정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어서 수준이 떨어진다) 그리고 세상과 이 암자를 연결하는 통로로 문 하나가 등장하는데 이것도 너무 상징적이다. 그 문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이 암자로 들어올 수 있다. 호수가 뻥 뚫렸기 때문에. 그런데도 굳이 노승과 젊은 승은 나룻배를 타고 이 문을 열고 산을 오르고, 이 곳을 찾는 사람들도 문을 열고 배를 타고 들어온다. 

소년 승이 성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얘가 커서 살인자가 되다니.. 왜 그렇게까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는 것은 그 동안 이 암자에서 수행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아닌가. 오히려 오랜 옥살이 후에 그는 해탈을 하니, 그를 해탈하게 하는 것은 속세에서 동떨어진 곳에서의 수행인가, 아니면 세속, 세상의 법인가. 그러면 다시 돌아와 그가 행하는 모든 반성의 수행들이 과연 그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윤회는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상이다. 김기덕은 이 윤회를 표현하기 위해 계절의 순환을 가져다 썼는데 도식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맞는데,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중간 중간 영화의 진행 중에 고개를 도리질하게 만드는 무식한 장면들.. 불쾌감을 주지는 않아서 끝까지 보는데 무리는 없으나 나는 이 번에도 그의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한 명의 영화인으로서 사는 동안 꽤 유명세를 얻었고 인정도 받았다. 또 세상이 들썩일만한 추문이 터졌고, 도망치듯 떠난 타국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자신을 번뇌케하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영화를 만든 사람이 그 자신의 삶은 지독히도 욕정에 휘둘렸다는 것이 참..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서양에서 인정을 받는 것과 결이 비슷해 보인다. 이 영화가 이 리스트에 선정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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