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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Feb 23. 2022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2013)

- 진실을 취사선택하지 않을 때 치유되는 마음

감독 : 사라 폴리

출연 : 사라 폴리, 마이클 폴리, 해리 걸킨, 조애너 폴리, 마크 폴리, 제프 보우스, 수지, 존, 앤, 데어드레이, 빅토리아, 톰, 픽시, 밥, 모트, 클레어, 캐시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70위에 랭크된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보았다. 이 영화는 배우이자 감독인 사라 폴리라는 유명인의 실제 가족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엄마 다이앤에 대한 얘기를, 그녀와 관계된 거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며,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본질을 찾기,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를 잃은, 그녀의 삶이 남긴 흔적을 품고 아직 세상에 남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무엇보다 사라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나 개인에게는 이 영화가 참 좋았다. 극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이앤을 자신의 삶에 깊숙이 들여보낸 사람들의 회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다시 새겨들을만한 얘기가 많다. 그래서 다시 보면서 등장인물들을 정리하고, 그들이 하는 말 중 와닿는 것들을 받아 적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보면서도 그가 하는 말을 거의 대부분 받아 적었는데,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건 이 영화가 두 번째이다) 이 리스트로 영화를 보면서 정말 잘 만든 영화, 좋은 영화들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누군가 내게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참 좋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는 또 눈물을 흘렸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포인트를 찾았달까?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 또는 그런 태도를 보면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아픔과 슬픔도 거부하지 않고(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아픔과 슬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내 삶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삶 자체를 사랑한다는 태도가 나를 울린다. 


영화를 한 번 보았을 때는 너무 빨리 나(우리)의 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사모곡이구나 했다. 그런데 두 번 천천히 대사를 적고 생각하면서 보고 나니, 본질적으로 이 영화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만든, 그리고 영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라 폴리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녀는 자신의 뿌리인 엄마를 가능한 한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엄마의 남편, 그러니까 아빠. 그리고 형제들, 자식들, 친구들이 그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들으면서 그리움의 감정을 나눈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이유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작 11살 때 떠난 엄마가 나에게 왜 이런 상처를 준 걸까, 나는 과연 사랑의 결과일까, 나라는 존재의 근원은 무엇이고, 나는 과연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그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이 영화를 만들면서 찾아간다.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를 캐스팅해 인물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게 해서 (초기 캠코더 화질처럼)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했다. 영화의 기본 틀은 아빠 마이클이 자신이 쓴 회고록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다이앤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과거 재현 영상이 삽입된다. 그래서 영상물로 봤을 때도 일반 다큐와 대조되는 지점들이 있다. 나는 이런 표현과 주제가 다 참 좋았다.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혼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포효, 맹목... 산산 조각난 유리 잔해, 쪼개진 나뭇조각,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집, 빙산에 충돌한 배 아니면 급류에 휩쓸린 배처럼 그 안의 사람들은 멈출 힘이 없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야기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때에서야."


영화는 마이클의 목소리로, 마가렛 애트우드의 <알리아스 그레이스> 중 일부를 발췌해 영화를 오픈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혼돈에서 출발하지만, 이 이야기를 타인에게 들려줌으로써,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 오픈함으로써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의 제목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 Stories we tell> 자체가 이 영화의 본질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가감하지 않고 가능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담아서 오픈하려는 것이다. 나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잘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비교적 잘하는 편이라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첫째는 부끄럽기 때문이고, 이것을 오픈했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기 때문이고, 그리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했을 때, 듣는 사람이 편견 없이 잘 들어주고 말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면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함께 아파하고 공감한다면 이야기를 한 당사자는 분명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계속 담고 살기엔 힘에 부쳐, 심리상담소나 신경정신과를 찾은 사람들에게 상담사나 의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말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고. 그리고 말하지 않으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길은 없다. 내가 이렇게 살았고,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말로 마음을 표현해야 치유가 시작된다. 


영화는 '다이앤'에 대해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그녀의 비밀을 파헤쳐간다. 자식들이 느끼는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남편에게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로 시작한다. 그러나 인터뷰이들의 이름만 나올 뿐 정확한 관계는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영화가 한참 진행되어서야 그들이 다이앤과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다.  다이앤에 대한 사실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라 폴리가 아빠라고 부르는 다이앤의 남편 마이클은 다이앤의 두 번째 남편이다. 그녀는 자신을 가두려는 첫 번째 남편 조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어린 아들(조니), 딸(수지)를 두고 집을 뛰쳐나온다. 아직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극하던 마이클에게 꽂혀 그와 연애를 한다. 그래서 양육권을 얻을 수 없어,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고통을 겪는다. 다이앤은 외향적이고, 마이클은 내향적이어서 마이클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에게서 감정적인 충족감은 느끼지 못한다. 결혼 생활 10년 후, 다이앤에게 기회가 생겨(그녀도 배우였다) 몬트리올에 가서 연극 공연을 한다. 한 달여 떨어져 있는 동안, 마이클과 다이앤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었는데, 사실 그때 다이앤은 '해리 걸킨'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다이앤이 죽은 후 주말에 마이클의 가족이 모여 식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단골 소재로 나오는 대화 주제는 '사라는 아빠를 안 닮았어.'였다. 그리고 조니는 사실, 엄마가 사라를 임신했을 때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었는데, '임신했는데, 아이 아빠가 누군지 모르겠어.'가 주제였다. 성인이 된 사라는 정말 나는 아빠가 다른 걸까? 추적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동료 배우 제프 보우스가 거론되었으나, 그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만난 해리(영화제작자)로부터 '네 아빠는 나야.'라는 말을 듣는다. 해리는 사라를 보자마자 다이앤을 사랑했던 감정이 떠오르고 사라도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라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해리가 정말 자신의 친부인지 최종 확인을 하고, 그가 정말 자신의 생물학적 아빠임이 드러난다. 형제들과 의논 끝에 아빠 마이클에게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너 친아빠 찾았다며?' 묻는 기자의 전화를 받게 되고, 고민 끝에 아빠에게 사실을 얘기한다. '아빠 사실, 나는 아빠 딸이 아니에요.'



하지만, 사라가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마이클'이다. 그리고 아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이클뿐이다. 해리는 이런 사라의 태도에 상처를 받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이클 역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이는 변함이 없는 거죠?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안아주던 사라의 손길로 인해 마음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이클은 재능이 많다. 글도 잘 써서 예전부터 다이앤이 글을 쓰라고 했었다) 그리고 사라는 '친아빠 찾기'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그녀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부단 '해리가 친아빠였다.'라는 사실만은 아니다. 


"부정하고 싶은 숨은 이유가 있겠죠. 제 입장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모두를 이렇게 드러내는 제가 솔직히 정말 당황스러워요. 이렇게 과거를 재현하고 엄마를 재조명하는 게 잘한 짓일까요? 엄마가 떠나며 남긴 쓰나미 같아요. 아직도 필사적으로 그리워하며 잔해 속에서 조립하려는데 자꾸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네요. 이제 겨우 얼굴이 보이려는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들려는지 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가족과 가족사를 이렇게 훤히 드러내는 내 자신이 당황스럽다. 엄마가 그리워서 엄마를 함께 떠올리고 싶어 시작한 작업인데, 진실을 알면 알수록 엄마의 실체는 멀어져 간다.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이 모든 의문이.. 내가 너의 친부냐 아니냐 하는 의문이.. 내게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과거의 일부가 됐단다. 네겐 중요하겠지만 내겐 평생 겪은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러니 미안해할 거 없다. 사랑하는 다이앤을 잃고 자신의 친딸인 사라의 어린 시절을 함께 못한 해리가 더 불쌍하지. 나라면 유전자 검사에 원통했을거다. 난 행운아였어. 그 행운의 순간 중 하나는 다이앤을 사랑해준 해리 덕분이었지. 세상에 유일한 존재인 사라는 다이앤과 해리의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내가 친부였다면 다른 녀석이 나왔을거다. 좋을지 나쁠지는 몰라도 지금과 같은 사라의 모습은 절대 아니겠지.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다른 가능한 결과는 무의미하단다. 이 편지를 혼자 보든 다른 이와 나누든 전적으로 네 선택에 달렸단다. 기억나니, 목요일에 내게 그 소식을 전하며 넌 어렸을 때처럼 나를 꼭 안아줬고 천 마디 말보다 많은 진실이 내게 전해졌단다."


그러나 마이클의 이 편지가 스스로도 납득시킬 수 없는 이 곤혹함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나는 나로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 나는 사랑의 결과로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나의 생물학적인 아빠도, 그리고 나를 키워준 아빠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 진실이 사라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애써 궁금함을 숨기며 괜찮은 척 하지 않고, 아플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의 삶을, 나의 근원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가 본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그것을 알게 된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




나는 이렇게 아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마음이 간다. 아픔을 숨기지 않으나 훈장처럼 여기지도 않는 사람. 아픔을 종잣돈 삼아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 이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삶이 원래 그러하다고. 내 삶만 가혹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지금의 나를 그런대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 


누군가 내게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줄래?' 라고 조심히 물어온다면,

그 이야기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라면 나는 들을 것이다. 

그리고 사라가 마이클을 안아줬던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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