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 멜로! 10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2017)

- 사랑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찾아온 신비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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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일디코 엔예디

출연 : 알렉상드라 보르벨리, 게자 모르산이


<오, 멜로!>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영화는 헝가리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2017년 작품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영화라서 리뷰도 제대로 쓰고 꼭 소개하고 싶었다. 세 번을 봐도 여전히 참 좋다. 3대 국제 영화제 수상작들을 모으면서 알게 된 영화인데 헝가리 영화로 제대로 본 것은 이 영화가 유일하다. 생소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을 듣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고, 두 사람이 꾸는 같은 꿈인 '숲 속의 사슴 두 마리'와 두 사람의 직장 '도축장', 그리고 각자 자신의 집과 도시 이미지가 중첩되어 만들어내는 영상미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한국사람이라 그런가, 꼰대 소리를 들을 나이라 그런가, 아니면 둘 다여서 그런가 남녀관계에 있어서 나는 여전히 보수적인 편이다. 서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도 싫고, 헤어졌다가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다 별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이 꼭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랑에 빠지는 두 주인공이 나이 차가 꽤 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 부분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여주인공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가 꽤 독특한 성격이라 그녀가 이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간다.


우리는같은꿈을꾼다11.jpeg 두 사람이 꾸는 같은 꿈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엔드레(게자 모르산이)가 일하고 있는 도축장이다. 엔드레는 이곳의 재무이사로 있고, 마리어는 고기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파견된 품질 검사원으로 젊고 아름답고 똑똑하다. 그런데 마리어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잘 못한다. 잘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전혀 몰라서 아직까지 휴대폰도 없고,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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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 인사하고, 편하게 대하기 위해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사람에게 마리어는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엔드레도 그런 마리어를 이해하고 받아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마리어의 말처럼 태어나서부터는 아니지만 정확한 이유는 뭔지 모르지만 한쪽 팔이 불구가 된 이후로 심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영화의 중간중간에 숲 속을 거니는 사슴 두 마리가 삽입된다. 제목만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이 꿈은 두 사람이 꾸는 '같은 꿈'이다. 남자는 그 꿈에 등장하는 수사슴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여자도 그와 동행하는 암사슴이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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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도축장에서 약물 분실 사고가 생기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은 직원들의 심리 검사를 제안한다. (도축장이다 보니, 매일 살아 있는 소를 도축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실시) 심리 검사를 하러 온 정신과 의사는 (분실된 약물이 '교미 가루'였음) 분석에 필요하다며 '어떤 꿈'을 꾸느냐고 묻고 두 사람이 같은 대답을 하자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행동으로 판단, 두 사람을 불러놓고 서로 대답한 녹음 내용을 들려준다. 그리고 마리어와 엔드레는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를 특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자기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여자에게 다가가지만 누군가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마리어는 그의 평범한 터치에도 움츠리게 된다. 마리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는 엔드레는 휴대폰이 없다는 마리어의 말을 곧이듣지 못하고, 슬쩍 손이 닿았을 뿐인데도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는 마리어가 자신을 거절한다고 생각한다. 마리어는 그런 자신 때문에 그가 오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그와 평범한 연애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고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곳에는 가지를 못함),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집에서 블록을 꺼내다가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스킨십에 과잉 반응하지 않기 위해 인형을 사서 몸에 부벼보고, 공원에서 평범하게 스킨십 하는 연인들을 관찰한다.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레코드샵에서 수십 장의 음반을 들어보고 그래도 뭐가 사랑인지 잘 모르겠어서 점원이 추천해준 음반을 집에 와서 듣는다. 그러면서 마리어는 뭔가 찡하게 오는 것을 느끼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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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노력을 한 후에 엔드레에게 '오늘 당신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다. 파자마도 챙겨 왔다.' 고 용기 내어 말하지만, 마리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지 못하는 엔드레는 그녀에게 차갑게 선을 긋는다. 그러나 이미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서 마음이 복잡하고, 아무 여자나 불러 섹스를 하지만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처음으로 해보는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자 마리어는 손목을 긋는다. 그런데 그때 엔드레에게서 전화가 오고, 그는 평범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참을 수 없어 봇물 터지듯 사랑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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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목을 응급 처치한 후 병원에서 며칠간 입원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그 길로 안드레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와 사랑을 나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잠이 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잠이 오는 마리어. 누구에게도 이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안드레는 '그럼 자요' 하고 나긋하게 말해준다.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그의 한 쪽 팔을 마리어는 부드럽게 감아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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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아침을 같이 먹으며, 엔드레는 편하게 토마토를 잘라달라고 하고, 자르다가 과즙이 튀자 서로 깔깔 웃는다. 그러나 아직 그가 흘린 빵부스러기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마리어. (마리어는 손목 때문에 급히 병원에 가면서도 자기가 흘린 피를 깨끗이 닦았다), 그러나 그런 행동 하나에 엔드레는 이제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그들의 꿈은, 이제 끝났다. 숲 속에서 방황하던 사슴 두 마리는 사라졌다.




누군가를 만나서 알게 되고,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남부터가 우연에 기대어 있다. '자만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나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너는 거기에, 나는 여기에 있다가 그 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너에게 있는 것도,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될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도 모두 우연이다. 반드시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없다. 그렇게 만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너는 나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가 된다. 사랑에 대해 생각할수록 사랑만큼 비논리적이고 운명적인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정해져 있어서' 운명인 것이 아니라, 점처럼 흩어져 있던 너와 내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어떤 필연적 이유도 없다는 것이 운명적이다.

이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두 주인공은 보통의 멜로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큰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사랑이 필요했다. 사랑이 필요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여자와 사랑이 필요하지만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에 두려운 남자의 만남이니 '마법 같은 계기'가 없다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그들에게 '같은 꿈'을 선물한다.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일이다.

내가 만약 누군가와 같은 꿈을 계속 꾼다면, 꿈이 같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너와 나 둘만 있으면서 서로 함께 하는 꿈을 꾼다면 어떨까? 나도 생각해보았다. 나 역시 그 일이 매우 특별하게 여겨질 것 같다. 상대방에게 관심이 생기고, 우리의 만남도 운명처럼 느껴질 것 같다.

마리어도 엔드레도 감정적인 사람들이 아니고 느껴야 할 감정도 오랫동안 막아두고 살았던 사람들이라서 본인들에게 일어난 이 일이 어쩌면 더 특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게 하는 것. 그걸 가지고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고 이어갈지는 전적으로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다행인 것은 마리어가 무척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원했지만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마리어가 이처럼 특별하게 찾아온 사랑을 어떻게든 갖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그것은 엔드레라는 한 사람에게 맞춘다기보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일반적인 노력'인데 그것이 마리어에게는 자신의 삶을 거의 180도 바꾸는 수준의 노력이라 나는 그녀를 보면서 '고군분투'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엔드레도 상처를 받기 싫어 뒤로 물러서고 선을 그으면서도 이미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기에 자신의 이성은 상처받기 싫으면 그녀를 멀리하라고 경고하지만 마음을 이미 그녀에게 빼앗긴 그는 결국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고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 처음 맞이하는 아침, 두 사람은 어젯밤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영화는 사슴 두 마리가 보이지 않는 숲을 보여줌으로 꿈 자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이 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같은 꿈'이라는 신비한 마법은 이제 끝났고 앞으로는 현실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가꾸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랑은 마법 같아서 우리의 만남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에도 인과관계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그래야 하는 당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네가 왔고, 네가 있는 곳에 내가 간 것이 어찌 보면 사랑의 전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조건이 아니면 아예 사랑이란 것이 시작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사랑이란 것을 할 줄 몰라도, 사랑이란 것에 실망했어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고, 아닌 척 해도 사랑을 할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애쓰고, 그래서 나는 고백한다.


사랑을 시작하기에 너무 좋은 이 계절 봄. 사랑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마법 같은 선물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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