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 멜로! 07화

제인 에어 (2011)

- 스스로 결핍을 채워가며 자존하며 사랑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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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캐리 후쿠나가

출연 : 미아 와시코브스카, 마이클 패스벤더, 제이미 벨, 주디 덴치


<오, 멜로!> 시리즈로 픽한 일곱 번째 영화는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2011년 작품 <제인 에어>이다. 이 영화는 전에 봤던 작품은 아니고, <제인 에어>를 책으로 참 재밌게 읽었어서 영화는 어떨까, 괜찮으면 이번 시리즈에 넣어봐야지 하고 실험 삼아 본 작품인데 소설의 내용을 다 담지는 못했어도 <오만과 편견>처럼 그 시대의 영국 시골 풍경을 아름답게 담았고 두 주인공의 케미가 좋아서 재밌게 잘 보았다. 이 소설이 영화화된 버전이 세 가지나 있었는데 마이클 패스벤더의 버전이 보고 싶어서 선택했고 본 후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인 에어(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숙모의 손에 키워졌으나, 외숙모는 제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촌(외숙모의 아들) 오빠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언제나 억울하게 벌을 서야 하는 것은 제인이었다. 그마저도 감당하기 싫었던 제인의 외숙모는 이름만 기숙학교이지, 버림받은 아이들을 학대하며 강압적으로 교육시키는 보육원에 제인을 보내버린다. 그리고 '이 아이는 거짓말쟁이이니 아무도 저 아이의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선생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인의 친구가 되어준 유일한 소녀 해나의 죽음을 겪으며 제인은 이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극한 고독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제인은 외숙모의 집에 살 때에도 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채워나갔었다. 사촌 오빠가 괴롭힌다고 그대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영화는 제인이 보육원에 보내져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략했지만 어른이 된 제인은 어려서부터 갖고 있었던 품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품위에 침착함이 더해져 그녀만의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제인이 처음 얻은 일자리는 페어팩스가의 양녀를 가르치는 일, 그 집에 상주하는 가정교사 일이었다. 아직 영어를 잘 못하는 아이와 불어로 대화하면서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주면서도 아이가 배워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히 가르치는 능력 있는 교사였고, 나이는 어려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될 만큼 내면의 강인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주 집을 비운다는 이 집의 주인 로체스터(마이클 패스벤더)가 갑자기 나타나고, 그는 제인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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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애들도 별로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노파도 시큰둥하니 그나마 댁이 제격이겠군."

"뭐가요?"

"날 생각의 수렁에서 건져주시오. ..... 시선이 아주 당돌하군. 내가 잘생겼소?"

"아니오."

"무슨 흠을 캐내시나? 눈코입 다 있는데."

"사과드릴게요. 외모는 상관없다고 해야 하는데."

"낯빛이 붉어졌소. 나만큼 당신도 미인은 아니나 낯 붉힌 건 어울리는 군."

"...."

"말 좀 해봐요. 솔직히 당신을 캐내 보고 싶소. 딴 세상 사람 같은 묘한 데가 있어서 아랫사람 다루듯 하긴 싫소."

"말하라고 명령하면서요?"

"명령조가 거슬리오?"

"돈 주고 부리는 사람한테 그런 거 묻는 주인도 드물죠."

"돈 받는 대가로 나와 동등한 대화 상대가 되어주겠소? 무례하다 생각 말고."

"격의 없는 것과 무례는 다르죠. 격의 없는 건 좋아도 무례한 건 누구도 용납 못해요."

"웃기는군."

"봉급을 받더라도요."

"봉급을 받으면 대부분 뭐든 하지. 마음으론 그 답을 한 당신과 악수하오. 가정교사 신분에 그런 말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희를 잘 모르시는군요. 다들 저처럼 자유로운 걸요. 슬픈 사연은 있을 망정"

"부럽군."

"뭐가요?"

"솔직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제인 오스틴도 샬롯 브론테도 여자이기 때문인 걸까? <오만과 편견>에서도 <제인 에어>에서도 당돌하다 싶을 만큼 당당하게 자기 얘기를 말하는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반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남자들이 이런 유형의 여자들에게 끌리는지 궁금하다. 남자들의 정복욕을 자극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주변에서 보면 당당하고 만만치 않은 여자들이 인기를 끄는 경우를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여주인공에게 작가가 자신을 투사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어느 정도 자신이 바라는 판타지가 가미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로체스터 역시 제인을 보고 거의 한눈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아시와는 달리 매우 저돌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도 은근하지가 않고 강렬하다. 제인도 분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밀어붙이는 로체스터에게 흔들린다. 그런데 로체스터는 이미 결혼하기로 한 여자가 있다고 미시즈 페어팩스가 한 이야기 때문에 제인은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만 두고 볼 수 없다.

이 정도면 분명하게 마음을 전했다고 로체스터는 생각하지만 요지부동인 제인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미스 애봇을 집(손필드 저택)으로 데려온다. 미스 애봇이 제인 에어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도 묵인하고, 제인 앞에서 그녀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제인에게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려고 하지만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일수록 제인은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떠나려고 하오?"

"아내 분 때문에요."

"난 아내가 없소."

"곧 결혼하시잖아요."

"제인, 내 곁에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채로요? 전 감정도 없는 기계인 줄 아세요? 제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보잘것없다고 감정도 없는 줄 아세요? 저도 당신처럼 영혼과 충만한 사랑이 있어요. 제게 미모와 재산이 주어졌더라면 제가 당신을 떠나기 힘들듯 당신도 절 못 떠나게 해 줄 텐데요. 이건 제 육신이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영혼이 영혼에 전하는 거죠. 무덤 속을 지나 주님 발 앞에 선 듯 동등하게. 지금도 동등하지만요. "

"동등하지."

"전 자유인인 만큼 제 의지로 떠나겠어요."

"그럼 그 의지로 운명을 정해. 나와 내 마음을 받아주오. 제인, 남은 생을 내 곁에서 보내주오. 우린 동등하고 닮았어. 결혼해주겠소?"

...

"날 사랑해요?"

"물론이지."

"그럼 결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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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스터와 제인의 결혼식이 있는 당일에 저택 깊이 숨겨둔 진짜 부인 버다 앙투아네타 메이슨의 가족이 찾아와 난동을 부려서 결국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버다를 보여줘야 했고, 그래서 제인은 로체스터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로체스터에게 다시 돌아온다. 손필드에서 도망쳐 머물던 목사관 가족들에게 갑자기 생긴 거액의 유산을 나누어주고 제발 자신의 가족이 되어달라고 사정했던 제인. 독립적이었으나 너무나 고독했던 제인에게 목사 세인트 존 리버스가 같이 선교지로 떠나자며 청혼하지만 그 청혼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고 애정이 없다. 우리의 가족이 되려면 나와 결혼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리버스를 겪으며 제인은 로체스터를 떠올린다. 비록 그의 곁에 아직 정신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아내 버다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가 자신에게 했던 절절한 사랑 고백과 그와 함께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가 자신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결혼까지 강행했던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런데 사랑하는 그의 곁에 있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돌아온 손필드는 불에 타 일부가 무너진 채 흉한 모습으로 서 있고, 미시즈 페어팩스는 버다가 불을 질렀고, 로체스터는 사람들을 구한 후 버다를 구하려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갔으나 이미 성의 꼭대기에 서서 뛰어내리는 버다를 구할 수 없었다고 말해준다. 다시 만난 로체스터는 화염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버린 상태.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그를 꼭 안아주면서 남은 생을 그의 곁에서 함께 할 것이라고 무언의 약속을 한다.




말을 당돌하게 하는 것과 독립성을 가지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오만과 편견>의 리즈도 제인 에어도 모두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심한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데에 다아시와 로체스터가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내 맘대로만 하려고 하는 독불장군과도 다르다.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내 인생에 대한 주체성이 확립된 사람은 타인의 생각과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존중하게 되어있다. 제인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세상에 홀로 남은 듯 깊은 고독을 늘 느꼈지만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것, 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남들이 자신을 상처 주는 대로 자신의 삶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살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진리 중에 하나는 사랑에는 '사랑하는 감정' 뿐 아니라 그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나의 내면의 힘'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힘이 없으면 이 사랑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느껴지는 감정과는 다른 영역으로서 사랑하는 당사자가 각자 그 사랑을 어떤 장애에도 지켜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어야만 그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

제인에게서 우리는 그 힘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감정뿐 아니라, 이 사랑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결혼'이라는 형식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리즈는 결혼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고, 제인은 결혼해달라는 로체스터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되묻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결혼을 하겠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적령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보다 조건이 좋은 남자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했기 때문에, 원부모를 떠나고 싶기 때문에, 일을 하기 싫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결혼을 위한 본질적인 조건들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서로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면서 삶이 너를, 그리고 나를 위험에 빠트릴 때 서로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 네가 행복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느껴지는 마음. 그 마음이 상통할 때 우리는 결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잘 지켜낸다. 내가 생각했을 때 떠나는 것이 옳다 믿으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떠남'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사랑을 성취한다. 결국 사랑도 내 것이기 때문이다. 로체스터가 눈물로 매달려도 아내가 있는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제인은 그 생각을 '떠남'으로서 실행한다. 나를 사랑하는 너를 나도 사랑하지만 나는 나의 삶 그 자체가 훼손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를 떠난 제인은 떨어져 있으면서 그와 나눈 사랑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명분이나 도리를 뛰어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제인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 그가 재산을 모두 잃고, 장님이 되었어도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인은 로체스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랑을 지켜내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제인 에어를 보면서 내게 있는 결핍을 '스스로 채워갈 수 있다'는 것을 본다. 완전하게 채울 수는 없어도 나 홀로 서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채워갈 수 있다. 사랑받으면서 사랑하면서 자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나의 자존을 잃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다면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자존하는 인간은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평생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나서 하는 것이지만 각자 홀로 설 수 있을 때 더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고, 오랫동안 지켜갈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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