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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May 16. 2022

인셉션 (2010)

- 생각, 마음, 꿈. 그리고 리얼리티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켄, 조셉 고든 레빗, 톰 하디, 엘렌 페이지, 딜립 라오, 킬리언 머피, 마리옹 꼬띠아르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51위에 랭크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을 보았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았고, 나중에 또 한 번 보고 이번에 리뷰를 쓰기 위해 세 번째로 다시 보았다. 놀란 감독은 대중예술의 즐거움과 재미, 철학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 모두 녹아 있는 작품을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21세기의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단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얼 하겠냐는 질문을 봤을 때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 정도로 흠모하는 감독님이신데 물론 이 영화도 참 재밌게 잘 만들었으면서 생각해 볼 거리들이 많다. 전에 봤을 때는 엔딩 장면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면서 그 부분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의 생각을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추출해내는 일을 하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사업가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다른 기업의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에게 '생각 추출'이 아닌 '생각 주입' 곧 인셉션을 해달라고 제안한다.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코브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도망자 신세이기 때문이다. 사이토는 코브가 가장 바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은 그걸 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코브는 이 인셉션을 단 번에 성공시키기 위해 최정예의 멤버를 소집한다. 아버지의 제자인 꿈의 설계자 애리어든(엘렌 페이지), 아서(조셉 고든 레빗), 연기자 임스(톰 하디), 약쟁이 유숩(딜립 라오). 그리고 이 제안을 한 사이토가 피셔와 함께 꿈을 공유하며 인셉션 작전에 들어간다. 

피셔가 심긴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 꿈을 3단계까지 설계한다.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무의식까지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기에 위험부담이 그만큼 크다. 거기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코브의 개인사까지 겹쳐져 위태한 구석이 많다. 



시간과 공간은 사이토가 준비한다. 사이토는 피셔가 주로 이용하는 항공사를 아예 사버려서 그가 이동하는 시간(약 12시간)을 활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심을 생각은 거대 에너지 기업의 계열사를 쪼개게 하려는 것. 믿게 하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꿈의 설계가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의 꿈에서 코브 일행은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나는데, 생각의 추출자들에게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피셔가 이미 훈련을 받았던 것. 자신의 꿈에 침입한 자들을 용케 알아보고 공격하는 무리들이 나타난다. 어쩔 수 없이 1단계는 접고 2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1단계의 킥(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동작)은 유숩이 맡고 나머지는 2단계 꿈으로 진입한다. 2단계에서 코브는 피셔에게 누군가 당신의 생각을 훔치려 한다며, 나는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늘 사랑받기를 갈구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피셔에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와 그를 모두 잘 알고 있는 기업 임원이자 대부인 피터 브라우닝을 이용한다. 아버지와 화해시키기 위해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피터에게 돌리게 하는 것이다. 물론 피셔가 꿈속에서 만나는 브라우닝은 임스가 연기하는 브라우닝이다. 금고의 비밀번호를 기억하게 해서 3단계까지 끌고 내려가 피셔의 손으로 그 금고를 열어보게 하려는 것이다. 1단계 꿈에서 부상을 입은 사이토가 걱정이긴 하지만 2단계 꿈에 아서를 남겨두고 나머지 대원들은 피셔의 꿈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맬(마리옹 꼬띠아르) 때문에 코브는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세 번째 단계에서 목표에 거의 근접했을 때 다시 멜이 나타나 피셔를 죽여버린다. 지금까지 한 수고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애리어든은 여기에서 한 번 더 들어가 보자고 한다. 코브의 꿈속으로. 거기엔 피셔를 쫓아서 코브가 자신을 찾아오길 바라는 맬이 있을 것이니까. 


팀은 피셔에게 인셉션을 성공시키는 것이 목표이지만, 코브에게는 하나의 다른 목표가 있다. 이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서 도망자의 신세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미국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것이다. 코브가 지명수배자가 된 이유는 아내 맬을 죽였다는 혐의 때문인데 그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서 맬은 죽기 전 이미 정신과에서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놨고, 변호사에게 남편 코브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흘려놓았던 것이다. 

맬이 살아있을 때 함께 꿈을 공유하던 두 사람. 그런데 맬은 깊은 꿈속 둘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함몰되어 버렸다.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고, 늘 당신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말했던 코브의 말대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둘만의 세상에서 늙어가길 바란 것이다. 현실의 두 아이는 돌보지 않고 꿈속에서만 머무르려는 아내에게 코브는 인셉션을 시행한다. '지금 보이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심어 놓은 것. 그런데 맬은 진짜 현실을 '현실이 아니다'라고 받아들이고 상태가 더 악화된다. 지금 이 상황(현실)이 꿈이라고 믿고, 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믿으면서 현실로 돌아가자며 자꾸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 꿈속에서 죽으면 된다) 그리고 결국 코브는 맬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꿈을 공유했을 때 맬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코브가 그녀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의 무의식과 의식이 그 죄책감에 짓눌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꿈인 걸 알면서도 여기에서 맬을 죽여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3단계 꿈속에서 맬이 피셔를 죽이자 뒤늦게 코브는 맬에게 총을 쏜다. 꿈속에 나타난 그녀를 한 번도 죽여본 적이 없는데 드디어 그녀에게 총을 쏜 것이다.

네 번째 단계, 코브의 무의식 속에서 코브는 맬을 만나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신이 자신의 무의식에게 말하는 것이다. 죽은 맬이 아닌 아빠를 필요로 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더 이상 죄책감에 매여있을 수만은 없다고. 그리고 피셔를 찾아 킥을 이용 3단계 꿈에서 그를 다시 살리고 그로 하여금 금고를 열어보게 한다. 그의 무의식 속 아버지와 대면하게 하고, 그의 상처를 만짐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회사를 쪼개는 것' 즉 아버지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심는 데 성공한다. 

사이토는 무사히 집에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코브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꿈속에 늘 등장했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두 아이를 품에 안는다. 그리고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하게 해주는 토템을 돌려본다. 토템은 빙글빙글 돌면서 넘어질 듯 하지만 여전히 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이번에 다시 보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리뷰를 쓰기 위해 영화의 중간중간을 다시 돌려가며 보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보통 인간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영상으로 구현해내면서도 인간사 본질적인 부분의 문제 제기를 하는데 다 보고 나면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피셔 입장에서는 이용당하는 것이지만 코브를 결국 도망의 굴레에서 꺼내 주려는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토템이 여전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현실인가 비현실인가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내놓지는 않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다는 것이다. 코브가 다시 마음속 죄책감에서 벗어나 짓지도 않은 죄의 누명을 쓰고 자기 집으로 가지도 못하는 신세에서 건져주려는 것.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는 우리의 행동 패턴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그렇다고 믿는 것을 선택한다. 또 너무 익숙해서 벗어나기 힘든 것,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려운 것을 피해서 선택하게 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진 하나의 생각이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쨌거나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아주 분명한 명제를 확인시킨다.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상상하고 그게 심해지면 망상이 되고 그렇게 허구로 만들어낸 세상이 너무 안락하고 달콤해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병이다. 리얼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그럴싸한 이미지, 이상적인 신념,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 그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을 바라보아야 하고, 이상과 낭만을 불신하지 않되 삶의 비참함과 잔혹함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고, 나의 사랑이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코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달콤한 망상의 세계에 아내를 데려갔다가 그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기술이고 무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훔치게 되고 그것을 내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심지어 가짜 생각을 심어서 조종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럽다. 상대방의 마음과 감정을 헤아릴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이용하고 조종해서 내 뜻에 맞추기 위함이 아니어야 한다. 


사이토가 코브 일행을 통해 피셔에게 자신이 원하는 생각을 심는 데는 성공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코브가 맬을 구하기 위해 인셉션을 수행했다가 파멸에 이른 것처럼, 피셔의 바뀐 생각이 사이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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