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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May 23. 2022

자객 섭은낭 (2015)

- 나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

감독 : 허우 샤오시엔

출연 :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주운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50위에 랭크된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예전에 이 영화를 연거푸 두 번 보고 (한 번 본 것으로 리뷰를 쓰기는 어려워서) 공들여 쓴 리뷰가 있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 다시 보았다. 정말 아주 아주 고요하고 느리고 말이 없는 영화이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이전에 봤던 것보다 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잘 만든 영화, 좋은 영화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영화를 보고 네이버로 평점을 확인하는데 이 영화의 짧은 감상평 중에 이동진 평론가가 '마음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표현을 보고 그 말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렇구나. 그냥 너무 조용하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감독님이 '절제'라는 표현 방식을 통해 숙고하고 숙고해서 담아낸 마음이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끔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촬영감독 마크 리 핑빙이 만들어낸 황홀한 영상미 때문이다. 눈으로 들어와 마음으로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들이 참 많지만 나는 '영상미' 하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절제미', 와 '영상미'란 어떤 것인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은 8세기 중엽 당나라 쇠퇴기이다. 황실이 있는 조정을 보호하기 위해 변방에 번진을 설치하여 지방을 다스렸는데 세월이 흐르자 번진들이 조정과 거리를 두며 자기 세력을 키웠는데 그중 가장 세력이 강한 번진 위박의 주군 전계안(장첸)을 암살하라고 섭은낭(서기)을 보낸다. 사실 섭은낭은 위박에서 나고 자랐고 전계안과 정혼한 사이였다. 전계안은 당 황제의 여동생 가성 공주가 위박으로 시집와 낳은 아들이다. 가성 공주는 섭은낭을 아꼈고, 그래서 아들인 계안의 짝으로 삼겠다고 증표까지 주었었는데 적자가 아닌 계안이 위박을 물려받길 바라는 마음에 이웃 지사(수백만의 백성을 의탁함)의 딸과 혼인을 시킨 것이다. 

그러나 계안과 은낭은 단순 정혼한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던 것이다. 계안이 10살에 풍열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 때,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은낭. 계안은 부모가 은낭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이웃 지사의 딸과 결혼하라고 했음에도 그녀를 보기 위해 원 씨 댁 정원에 갔다가 호위병에게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은낭을 계속 위박에 두었다가는 계안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할 것 같아 가성 공주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인 가신 공주에게 은낭을 데리고 위박을 떠나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은낭은 그렇게 자객이 되었다. 12-3살쯤이나 되었을까? 그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자객으로 키워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 했고, 자신을 친구처럼 아껴주고 믿어주던 사람이 자기 아들 때문에 갑자기 배신한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라고 한다. 어린 은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계안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그런 마음씨를 갖고 있는 아이가 어느새 자객이 되어 있었다. 자객은 명령을 따른다. 누군가의 분부가 있어 살인을 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실력 있는 자객이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은낭이 스스로 결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은낭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가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위협만 한다. 은낭의 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여도사(가신 공주)는 그래서 일부러 은낭을 위박으로 보내 계안을 죽이라고 명한 것이다. 그러나 은낭은 계안에게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널 죽이라는 명을 받고 왔음을 알릴 뿐, 그를 해치지 않는다. 도리어 그가 아끼는 여인(호희)을 구하고 보호한다. (계안의 정비가 호희를 죽이려고 한다) 또 계안에 의해 파면 당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은낭의 외삼촌과 그를 호위해 같이 다녀오라 명을 받은 은낭의 아버지의 호위 무사를 자처한다. 영화 안에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계안의 정비는 이전에도 지방으로 내려가는 계안의 신하들을 죽였었고, 이번에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은낭이 도착하기 전, 은낭의 외삼촌과 아버지가 습격을 당해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지역에 사는 마부(츠마부키 사토시)가 기지를 발휘해 그들을 구한다. 은낭은 이제 외삼촌이 발령받은 곳에 잘 도착하도록 호위할 뿐 아니라 마부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그러나 자객 은낭을 죽이기 위해 다른 자객이 찾아온다. (아마 계안의 정비의 짓일 것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수끼리의 대결이라 은낭이 이겼지만 부상을 당한다. 여인임에도 치료받기 위해 남자(마부)에게 등을 내보이는 은낭. 그 모습을 은낭의 아버지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집을 떠난 딸아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마음이 아린다. 

은낭은 정비가 호희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계안에게 알리고, 여도사를 찾아가 자신의 뜻을 전한다. 더 이상 자객으로 살지 않겠노라고. 은낭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이제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길을 막는 여도사와 겨루어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확고한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객이 되기까지의 은낭, 자객으로서의 은낭이 아닌 죽이고 살릴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능한 살리고 지키고 보호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은낭을 보여준다. 힘이 있으나 스스로 절제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자기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다스릴 줄 알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도망치듯 떠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멋과 카리스마가 있다. 품격이 있다.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내가 알지도 못하고 나와 맞지도 않는 일을 해야만 했다.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내가 원치 않는 것과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경험함으로 가능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발견한 이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 역시 원치 않았으나 해야만 했던 일에 성실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감독은 많은 것을 숨겨 놓고 일부만 내어 보인다. 꼭 알아야 하는 은낭의 과거는 엄마와 계안의 대사를 통해 처리했고, 지금 은낭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줄이며 무협마저도 지극히 정제해서 보여준다. 좀 더 보여줘도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은 있지만 은낭의 마음을 어떻게 담을까 고민하고 고민해서 귀하게 담아낸 이 영화가 나는 좋다. 또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 무엇보다 자신의 힘을 절제하며 그 힘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보다 품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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