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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May 09. 2022

물랑 루즈 (2001)

- 사랑이 지나간 자리

감독 : 바즈 루어만

출연 :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존 레귀자모, 짐 브로드벤트, 리차드 록스버그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53위에 랭크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 루즈>를 보았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았고, 이번에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보았다. 시각적 아름다움은 20년 전 영화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쭉 보지 못하고 몇 번 끊어서 보았다. 

무대장치나, 미술, 촬영기법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와' 소리가 나오지만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를 하면서 길게 쓸 말이 없다. 하지만 배우들이 정말 열연했고,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들을 편곡해서 삽입해 몰입도를 높인 것도 높이 평가할만한 점이다. 



샤틴(니콜 키드먼)과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은 모두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글을 쓰지만 아직 그의 글은 인정받지 못했고, 샤틴은 진짜 배우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물랑 루즈'만의 뮤지컬 가수이다. 게다가 춤과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탐하는 남자들에게 밤을 내주어야 하는 창부이기도 하다. 크리스티앙은 이상적인 '낭만주의'에 샤틴은 현실적인 '물질주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낭만주의자가 현실주의자에게 저돌적으로 대쉬하자 여자는 쉽게 허물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 역시 무척이나 외로웠기 때문이다. 샤틴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그녀를 가지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 있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순간의 소비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극장 <물랑 루즈>의 단장인 해롤드조차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를 마구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과 물질을 다 가지고 있는 '공작'이 그녀를 소유하고자 다가온다. 그는 그녀에게 나의 것이 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극장을 새 단장하고 싶었던 해롤드에게도 샤틴을 나에게 데려온다면 필요한 돈을 대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가난하지만 잘생긴 젊은 남자가 꿀 떨어지는 눈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니 샤틴도 사랑이라는 것에 빠져보고 싶다.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속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해롤드와 공작의 눈을 피해 아기자기하게 속임수를 써가며 사랑을 키워가는 샤틴과 크리스티앙이지만 사랑에 눈먼 두 사람은 그 둘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눈들이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돈 많은 속물로 그저 그런 인간으로 생각했던 공작이 얼마나 집요하며 소유욕이 강한 지도. 

자신과의 만남을 자꾸 핑계를 대며 피하고, 보아하니 샤틴이 젊은 작가 놈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그리고 새로 만든 뮤지컬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작은 여차하면 크리스티앙을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정말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샤틴이 폐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롤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공작을 붙들어두기 위해 샤틴에게 말하지 않는다. 샤틴이 '다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건 사랑이야!' 모드가 되자 그제야 해롤드는 '네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작은 크리스티앙을 죽이려고까지 한다.'라고 말한다. 그를 살리기 위해 그에게 이별을 고하는 샤틴. 그러나 크리스티앙은 쉽게 샤틴을 포기할 수 없다. 



샤틴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공작이 자신을 죽이려는 지도 모르고, 공들여 준비한 뮤지컬이야 망하거나 말거나 크리스티앙은 샤틴에게 돌진한다. 그녀를 비난하고 그녀를 괴롭히면서 '너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았다'라고 절규한다. '너의 선택은 잘못되었다'라고 호소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여자.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랑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러나 그렇게 그를 선택하고, 그를 살려놓고 샤틴은 곧 죽음을 맞는다. 크리스티앙은 사랑했던 그녀를 기억하며 글을 쓴다. 




내 기억으로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크리스티앙이 한심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보면서는 '아이고, 저런 철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면서도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샤틴'이 불쌍했다. 왜 저런 놈을 사랑하게 돼가지고...


그런데, 그만큼 '사랑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이라는 것을 괄시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도구로 여기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여자는 '한 사람 샤틴'으로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자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다. 도구가 아니라 존재로 받아들여주고 예뻐해 주고 사랑해줄 사람을 너무나 기다렸던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현실성'과 '논리'가 필요한 만큼 '낭만성'과 '감정' 그 자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뜨거운 마음과 이상이 있는 사람이 불을 지피면 현실과 사실만 따지던 사람도 거기에 부응하게 된다. 논리주의자는 결코 선택하지 않는 길에 뛰어든 낭만주의자를 살리고 돕기 위해서 그들도 결국엔 뛰어들게 된다. 



내용 위주의 리뷰를 쓸 수밖에 없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치를 다 말하지 못해 안타깝다. 스토리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영화라 보는 것이 절대 아깝지 않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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