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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ul 18. 2022

헤어질 결심 (2021)

- 어찌 됐든 사랑은 시작되고 달려간 후 어딘가에 종착한다.

감독 : 박찬욱

출연 :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고경표, 김신영, 박용우


-스포 많아요!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그래도 꽤 보았지만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는 너무 힘든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는 너무 잔인하고, 또 너무 괴기스럽고 내가 받아들이기엔 내용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그의 미적 스타일만큼은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보기 편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왜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영화만 만들까 했었는데 이 영화가 내가 기다려왔던 보기 편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보게 되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솔직히 예상했던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나는 박찬욱 감독의 대중으로 한 걸음 성큼 걸어 나온 이 행보가 꽤나 반갑다. 10점 만점에 7.5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탕웨이가 정말 이를 갈고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편이 한국 사람이긴 하지만 외국어를 이 정도 구사하면서 연기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짜 노력했구나 싶었고, 박해일은 정말... 연기력은 논외로 하고 마스크 자체가 배우 하기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나라 배우 중에서는 박해일이 탑이다(물론 내 생각)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 선역을 맡아도, 악역을 맡아도 다 잘 어울리는 얼굴. 영화 초반에 박해일 얼굴을 클로즈업하는데 정말 보면서 '아.. 저 배우 눈깔..' 하며 저절로 탄이 나왔다.

또 하나 이번 영화에서 눈 여겨 볼만한 것은 촬영 기법에 있어서도 굉장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인데 영화 초중반까지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의 모습을 빠르게 교차하며 편집해서 극을 끌고 가는데 진짜 공들인 편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영상미는 아니지만 현란한 편집 기술과 배우들의 호연이 잘 어우러져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 - 해준, 서래


해준(박해일)은 강력계 팀장으로 자기의 일에 진지하게 임하고 그만큼 성과도 만들어내는 유능한 형사다. 아내 정안(이정현)은 이포에, 해준은 부산에 살고 주말에 해준이 아내가 사는 이포로 간다. 어느 날 부산에 등산하다가 추락사한 것으로 보이는 변사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을 수사하다가 유력 용의자인 피해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게 된다. 다른 어떤 것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죽은 기도수보다 훨씬 어리고 또 무척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 그 객관적인 사실이 해준에게는 꽤 주관적인 영향을 끼친다.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은 서래가 기도수를 죽였다고 의심하고, 서래가 중국에서 자기 엄마를 죽인 혐의로 수배 중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한다. 그러나 서래가 그렇게 예쁜 얼굴로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자 해준은 그녀의 말을 믿고 싶어 진다. 그런데 서래 또한 해준에게 특별한 마음이 생겼다. 늘 거지 같은 남자들만 보다가 (죽은 남편 기도수는 아내를 상습 폭행했고,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여겨 그녀의 몸에 자기 이름까지 문신으로 새겨 놓았다) 해준처럼 반듯하고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을 보니 그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직 서래를 용의 선상에 두었을 때 해준은 서래가 일하는 모습을, 또 집에서의 모습을 관찰하며 살핀다. 서래는 해준이 다른 사건이 생겨 자신의 곁을 떠나자 그를 좇아가 그의 모습을 훔쳐본다. 서로를 관음 하며 서로에게 더욱더 관심이 생기는 두 사람.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흥분을 느낀다.


서로를 관음 하는 서래와 해준


위에서는 빨리 사건을 종결하라는 지시가 있고, 해준은 그것을 계기로 서래 남편의 죽음을 '자살 사건'으로 종결짓는다.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도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깐. 서래가 돌보는 할머니에게 일이 생겨 모시고 병원을 가는 바람에 해준이 서래의 일을 돕기 위해 월요일 할머니 댁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제공했던 월요일 할머니의 휴대폰이 서래 것과 동일한 기종인 것과, 사건 발생 당일 할머니 핸드폰에 138층을 올라갔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해준은 서래가 진범이며 그동안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해준의 결정은 이 일을 덮는 것이다. 서래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알게 됐다며 그녀를 향한 원망을 쏟아붓는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붕괴되었어요!"


해준은 아내가 있는 이포로 전근을 가지만 서래를 향한 애증과 자신이 속아 넘어갔다는 자책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낸다. 이포로 온 지 13개월, 부산과 달리 너무나 평온한 이포는 강력계에 몸담았던 해준에겐 심심하기 그지없다. 서래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남자의 명함에는 주식 애널리스트라고 적혀 있지만 돈을 불려주겠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다가 흥청망청 쓰는 전형적인 사기꾼이다. 남편이 사기를 친 대가로 고생하는 건 서래다. 두 사람은 거처를 옮겨 이포로 오게 되고 해준-정안 부부와 서래-호신 부부가 이포 시장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해준과 서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뭔가를 감지한 호신(박용우). 그리고 서래의 미모에 아내 특유의 촉이 발동하는 정안. 그리고 이포에 드디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바로 서래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이다.


여기저기서 사기를 치고 다녔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받는 것도 일상 다반사. 해준은 호신이 그런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이번에도 속을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서래를 의심하고 압박한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이것이다.


"왜 그런 남자랑 또 결혼을 했어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요."



결론은 이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붕괴' (: 무너지고 깨어짐 - 중국인인 서래는 이 말의 뜻을 몰라 사전을 찾아본다) 되었다는 해준의 말이 '사랑한다'라는 말로 들린 서래는 그때부터 진심으로 해준을 사랑하게 된다. 다른 어떤 현장보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가장 참기 힘들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호신이 살해된 수영장의 물을 다 빼고 바닥을 청소한다. 그리고 자신이 용의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증거물인 호신의 휴대폰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그녀 스스로 해준 앞에 용의자로 선다. 계속 그의 관심 안에 있고 싶어서.

그리고 최후의 결정은 그에게 '미결 사건'으로 남는 것이다. (서래가 해준의 집에 갔을 때 해준은 미결 사건을 놓지 않고 한쪽 벽에 쭉 늘어놓은 후 계속 생각하고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포 해안 어느 곳에 차를 세워두고 휴대폰은 차에 두고 내린 후 한 곳을 정해 땅을 판다. 자신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닷물이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 들어오며 그 구멍을 매운다. 뒤늦게 그녀의 뒤를 쫓아 그녀가 세워둔 차는 발견하지만 결국 해준은 서래를 발견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왜 영화의 제목이 '헤어질 결심'일까?라는 고민이 시작될 무렵, 감독은 서래의 입을 통해 정확한 이유를 말해준다. 리뷰를 쓰기 전 박찬욱 감독의 코멘터리 영상도 보았는데 '결심'이라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을 해야만 할 때 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원치 않는다'라는 말이 적확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당위' 사이의 간극은 인간에게 항상 갈등과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해준이 유부남이라서가 아니다. 해준의 감정이 끝난 지점에서 자신의 감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같은 감정이 아니기에,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사기꾼과 재혼했지만 결심을 하기 위한 시도가 바로 결심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보게 된 그와 헤어지기는커녕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고 싶다는 갈망만 커져 간다. 그 사이에도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안녕과 행복을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싫어하는 것, 힘들어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내 손으로 치워주고 싶다. 그로 인해 내가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지는 그를 위한 행위들을 해버리고 난 후에야 떠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해결하고 혹은 제거하고 난 후에 최후로 남는 것은 결국은 나의 욕망이다.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고자 하는 나의 욕망. 최후에 남은 것은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란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서래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다. '미결 사건'으로서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기 위해서.


사람이 '사랑을 느끼는 지점'은 저마다 다르다. 서래는 해준의 '붕괴'되었다는 말을 사랑으로 인식한다. 나로 인해 무너지고 깨어졌다니, 이 남자가 정말 나를 사랑했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설렘도 느꼈지만 서래 입장에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은 이 지점이다. 해준의 마음을 확인한 지점.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된 이 지점부터 서래의 마음도 호감과 설렘을 넘어 사랑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서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사랑이었던 해준에게 서래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은 '사랑의 종말'을 의미한다. 시작부터 거짓이었다면 그녀의 감정도 거짓이라고 받아들이고 해준은 '헤어질 결심'을 하고 그녀 곁을 떠나 아내가 있는 이포로 간다.


결심을 한 후 그녀의 곁을 떠났어도, 결심을 하기 위해 아무 남자와 재혼을 했어도 완전한 '헤어짐'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 헤어짐을 두 사람 모두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서래는 자신이 미결 사건이 되면 그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 내던졌다. 그리고 영화는 서래의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그녀를 찾는 해준의 모습을 엔딩 장면에 담음으로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서래가 생각했던 '영원히'가 아마도 해준이 '죽는 날까지'를 의미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인 해준과 서래, 그리고 관객인 우리들조차도.



바람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어떤 행동을 야기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은 또 다른 결과(감정, 그리고 그 감정으로 인한 행동)를 가져올 것이다. 최후의 결과가 시작의 바람과 얼마나 닿아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 모두에게 사랑은 시작되고, 또 그 사랑 어떠한 형태의 결과를 반드시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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