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일(시그니처)에 대하여
감독 : 테렌스 맬릭
출연 : 코리언카 킬처, 콜린 파렐, 크리스찬 베일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39위에 랭크된 테렌스 맬릭 감독의 <뉴 월드>를 보았다. 같은 리스트 7위에 랭크된 <트리 오브 라이프>로 테렌스 맬릭을 알게 되었고, 그때 난해한 영화를 만드는 분이구나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분의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가 매우 시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계의 음유시인 아니야? 혼자 생각하고 혹시나 해서 ' 테렌스 맬릭 -음유 시인' 이런 검색어로 검색을 했더니 정말로 영상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장면을 일부러 겅중겅정 이어 붙여서 균열을 만드는데,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서 유려하게 흐른다. 이 영화는 다행히 내용이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고, 복잡하게 머리를 써야 하는 내용이 아니라 영화를 보며 느껴지는 그 느낌을 따라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감상할 수 있다.
내용이 잘 알려져 있다고는 했지만 사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카혼타스' 이야기라고 하는데 예전에 만화영화로 '포카혼타스'를 보았었고, 원주민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검색해보니, '포카혼타스'는 영국인 남자 존 롤프와 결혼해 왕비의 초대를 받는 등, 꽤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풍토병에 걸려 22세의 나이에 죽고 만다. 하지만 남편 존 롤프가 아닌 스미스 대위와의 사랑이 먼저였고, 둘의 로맨스가 영화의 주를 이룬다. 스미스 역할을 콜린 파렐이, 후에 포카혼타스의 남편이 되는 존 롤프를 크리스찬 베일이 맡았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검색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영화는 100% 후시 녹음이라고 한다. 테렌스 맬랙 감독의 디렉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는데 동시녹음을 시도했으나 감독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번 편집을 손보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 같은 영화의 러닝타임이 다른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는.. 나는 가장 긴 172분짜리 버전으로 보았다;;;
영화에서는 여주 포카혼타스의 이름을 한 번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버지니아 원주민 추장이 가장 아끼는 딸,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올 뿐이다. 미국으로 건너오던 중 뭔가 잘못을 저지른 스미스가 함께 온 부대원들을 위해 그러니까 동태를 살펴 그들이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 포카혼타스의 부족으로 파견(?)된다. 그를 죽이려는 찰나 포카혼타스가 죽이지 말라고 아버지를 말려서 그는 살아남게 되고, 스미스는 비교적 편견 없이 원주민들과 어울리며 친구가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살려준 추장의 막내딸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그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여자를 그는 허용하며 받아준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도록.
이곳으로 올 때 원래 선장이었던 캡틴 뉴포트는 식량도 필요한 물품도 없어 곤경에 빠진 대원들을 위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스미스를 리더로 세웠던 것인데, 피폐해진 상태에서 죄인이었던 자가 갑자가 리더가 된들 그런 상황을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캡틴 뉴포트가 돌아오고, 신대륙에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한 계획이 아직 서지 않은(이들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이들과 화합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상태에서 부족들과의 싸움에 휘말린다. 그리고 스미스는 여왕의 명으로 영국에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돌아와서 팀을 꾸려 인도를 찾으러 가라는 것이다. 그와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포카혼타스에게 어떤 약속도 해줄 수 없는 스미스는 두 달 후 그가 죽었다고 전하라며 영국으로 돌아간다. 포카혼타스는 아버지에게 쫓겨나(일부러 딸을 살리기 위해) 인질이 되어 스미스 부대의 거처에 함께 사는데, 스미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을 잃은 듯 슬픔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함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후에 남편이 될 존 롤프가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다.
이 긴 영화가 2시간을 넘어가 영화의 1/3쯤 남았을 때, 갑자기 이렇게 크리스찬 베일이 등장하는데, 너무 잘생겨서 정신이 확 든다.(크리스찬 베일은 배트맨인 것만으로 나에게 영구까방권을 부여받은 배우이다) 저렇게 포카혼타스를 지켜보면서 천천히 그녀의 곁을 맴돌며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고백까지 들었지만 자신 역시 아내와 아이를 잃은 아픔이 있기에 누군가를 상실한 아픔이 있는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껴 그녀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나'와 함께 하길 원하는 그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몇 년을 같이 산다. 그리고 영국인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 그녀에 대한 소문이 영국 본토에 까지 나서 그녀는 여왕의 초청을 받아 영국행 배에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해 크게 환영을 받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미스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남편 롤프는 그녀에게 그를 만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대신 그를 만나도 좋다고 허락하고 그녀의 마음이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억지로 그녀를 매어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미스의 얼굴을 본 포카혼타스는 크게 요동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함께 할 사람은 남편 롤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신대륙으로 돌아가던 배에서 병에 걸려 갑자기 죽고 만다.
사실 이 영화는 이렇게 줄거리를 쓰는 게 거의 무의미하다. 이런 심플한 내용을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했는가가 중요한 것인데 이것은 글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영화란 그야말로 영상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컷 하나하나에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주제를 정하고 캐릭터를 구상하고 뼈대를 만든 후에는 단어 하나하나에 혼을 실어 선택하고 글을 쓰듯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 역시 한 프레임 안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결정한다. 테렌스 맬릭 감독이 영상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자. 한 사람(아티스트)의 스타일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먼저는 이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관점 이전에 '보이는 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무언가를 볼 때 감각적으로 디테일하게 보는 사람이 있고, 거시적으로 또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는 사람이 있다. 그다음에는 살아온 환경, 배움의 방식 등 여러 가지 후천적 요소로 인해 형성된 자신의 '관점'이 존재할 것이다. 보이는 것을 '관점'을 가지고 한 번 더 걸러 해석하고 말하고 싶은 것,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골라낸다. 그다음에 골라낸 것을 하나로 연결하여 표현하는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어떤 아티스트든 먼저 존재했던 다른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작품, 또는 예술관, 라이프 스타일에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예술가가 되는 사람일수록 다른 예술가의, 예술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느리게 보여주는 방식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 것이다. 도전적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매 작품마다 새로운 방식을 접목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실험할 것이다.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사람은 주제를 붙잡고 씨름하면서 스타일을 결정할 것이다.
나는 예술 작품도 좋아하지만, 실은 그 예술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 더 관심이 있다. 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성격일까? 어떻게 작업할까? 이런 것에 더 궁금증이 생긴다. 만드는 것과,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 번 세상에 내놓은 것과 그다음에도 내놓을 기회가 생기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산이 존재할 것이다. 적어도 두 번 이상, 자신이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놓고 자신의 이름을 거는 사람들. 거기에 그 사람만의 시그니처가 분명히 드러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흠모하고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