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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Oct 07. 2022

퍼스널 쇼퍼 (2016)

- 나는 네가 너무 그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감독 : 올리비에 아사야스

출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 라르스 아이딩어, 노라 본 발드스타텐, 앤더슨 다니엘슨 리, 시그리드 부아지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2016년 작품 <퍼스널 쇼퍼>를 보았다. BBC 리스트 중 100위에 감독의 영화 <카를로스>가 랭크되어 있는데 국내에는 아예 개봉이 안되었고, 아무리 뒤져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감독의 다른 영화라도 봐야지 하고 찜해둔 영화가 이 영화다. 네이버 평점은 별로 높지 않지만 나는 재밌게 잘 보았다. 리뷰를 쓰려고 포스터를 찾아보니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이다. 보편적인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거나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거나, 심플한 주제를 가지고 진득하고 평이하게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보는 사람들의 호불호가 있을 것 같고, 평론가들도 '그래서 뭐?' 하고 반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님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주인공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겪는 일들을 쭉 이어서 생각해 보면 영화의 주제를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무엇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배우가 완전히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영화라서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눈 호강하게 된다. 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배우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 지금 찾아보니 그녀가 나온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스틸 앨리스> 하나뿐이다. 그 영화 자체가 내게 임팩트가 없었기 때문에 더 기억할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속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빛이 나다 못해 추앙하고 싶어 진다.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기력이 매우 매우 훌륭하다.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그녀를 열심히 좇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아쉽지가 않다. 

또 영화 자체가 아주 조용한데, (조용한 영화를 좋아한다) 조용함 속에서 영혼(귀신)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모린을 스토킹 하며 협박하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아사야스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라는 영화가 개봉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그때 나는 영화의 소개를 보고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 보지 않았다. 지금은 평점도 좋고 하니 얼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린은 심장병이 갑자기 발병해 죽은 쌍둥이 오빠 루이스를 만나기 위해 파리에서 퍼스널 쇼퍼로 일하며 머무르고 있다. '죽은 오빠를 만나기 위해'가 말이 되는 이유는 그녀가 '영매'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린은 오빠 루이스와 루이스의 여자 친구 라라(시그리드 부아지즈)가 함께 살던 집에서 밤을 보내며 오빠의 영혼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모린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집 한쪽 벽에 십자가 모양의 긁힌 자국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오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모린의 연인 게리는 일 때문에 오만에 가 있는데, 모린이 힘들어할 것을 알기 때문에 함께 있으려고 하지만 모린은 오빠를 만나고 싶은 바람을 포기할 수 없어 파리에 머문다. 키라(노라 본 발드스타텐)라는 유명인(배우인지 인플루언서인지 확실하지 않다)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면서 키라가 파리에 올 때 머무는 집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데 (키라가 허락한 것인지 몰래 그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좋은 점이 있지만 키라와 일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협찬받은 옷들을 돌려줘야 해서 옷을 가지러 키라의 집에 왔다가 모린은 키라의 내연남 잉고(라르스 아이딩어)를 만나게 된다. 키라가 방에서 통화하는 사이 모린은 그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키라'라는 쉽지 않은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순간 동질감을 느꼈는지 그녀는 잉고에게 자신은 지금 죽은 오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파리에 살고 있다며 자신이 영매라는 사실을 밝힌다. 잉고는 그런 모린에게 자신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로 모린을 위로한다.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런던에 다녀오려는 모린, 그녀에게 갑자기 정체불명의 문자가 오기 시작한다. 

"나는 널 알고 있어. 너도 날 알지."

모린은 자신이 영매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문자를 보내는 존재가 영혼인지 사람인 지부터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는 모린이 지금 기차를 타고 런던에 가고 있다는 사실(마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까지 얘기하면서 그녀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이 존재가 '잉고'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키라와 일을 하는 게 힘든 이유는 그녀가 제멋대로여서이지만, 또 한 가지는 가져오는 옷들을 모린이 입어보는 것을 싫어해 허락하지 않는 이유도 있는데 매장에 가면 다들 모린에게 입어보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것이다. 모린에게 문자를 보내는 익명의 존재는 모린이 터부를 깨뜨리도록 충동질한다. 처음엔 너무나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존재에게 모린은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그가 하라는 대로 키라의 옷을 입어보며 그가 오라는 곳으로 간다. 알지 못하는 존재에게 계속 관찰당하며 조종당하는 불안한 상황, 그의 말을 따라 금기를 깨 보지만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 루이스의 영혼과 교감할 수 없으며 연인 게리는 만날 수 없는 먼 곳에 있고, 상사 키라와 일하는 것은 고되고, 자신과 심장 모양이 완전히 똑같은 오빠가 갑자기 발병해 죽었기 때문에 자신도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우며  무엇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오빠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모린은 생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어떻게 해서든 루이스의 영혼과 교감하고 싶어 '힐마 아프 클린트'란 화가가 귀신과 교감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의 영상을 찾아서 보고, 후에 '빅토르 위고'도 그런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와 관련된 영상도 보면서 모린은 루이스를 기다린다. 그녀는 루이스가 살던 집을 다시 찾고 밤을 보내며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지만 수도꼭지가 틀어져 물만 나올 뿐, 루이스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귀신이 루이스는 맞는 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고 화가 나고 또 무섭다. 


키라의 일로 런던 까르띠에에서 고가의 주얼리를 받아서 돌아온 모린, 키라의 집에 들어갔지만 인기척이 없으나 키라가 돌아온 듯한 흔적들이 있어 조심스레 그녀의 방문을 여는데, 그녀는 없고 핏자국이 낭자해 어디론가 끌려간 흔적만 있는 것이다. 그 자국을 따라가 욕실 문을 여니 이미 죽은 키라의 시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 뛰쳐나온 후 신고를 한 모린은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경찰의 말대로 까르띠에 보석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키라의 집에 가는데 문자를 보내던 미지의 존재는 경찰에게 자기 얘기도 했냐며 지금 당장 호텔로 오라고 협박한다. 휴대폰을 꺼두었다가 켠 후 확인한 터라 그는 모린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 이미 키라의 집으로 오고 있음을 말한다. 누군가 문 앞에 당도한 것을 알고 무서워하며 문 쪽으로 가지만 문 밑에 장소가 적힌 쪽지가 있음을 발견하고 모린은 쪽지에 적힌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지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는 모린.


영화는 이후의 상황은 생략하고, 잉고가 잡히는 모습을 보여준 후 모린이 게리에게 가기 전 라라와 함께 머무를 것임을 알린다. 라라의 집에서 라라의 새 연인 어윈을 만난 모린. 그 역시 루이스를 알던 사람이라 루이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루이스는 모린도 그에 대한 죄책감, 그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길 바랄 것이라고 말한다.

혼자 앉아 있는 모린 뒤로 루이스로 보이는 영혼이 보이고, 컵이 혼자 움직여 문 앞까지 와 떨어진다. 모린은 어윈이 테이블 끝에 컵을 놓아두어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치운다. 그리고 연인 게리가 있는 오만으로 떠난다. 



오만에 도착한 모린은 게리의 숙소(게리는 여행 중이었고,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했다)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연다. 그런데 게리가 아니라 유리컵이(라라의 집에서 깨졌던 것과 비슷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루이스, 여기 있어?"

"날 기다렸어?"

"안식을 찾았어?"

"고마워."

달그락

"불안한 상태야?"

"나랑 장난해?"

"해치려는 거야?"

쿵쿵

"도대체 누구야?"

"당신 누구야, 누구냐고."

..

"루이스 너야? 너냐고."

...

"아니면 그저 내 상상인 거야?"




모린이 귀신을 보고, 죽은 오빠의 영혼과 교감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가며 파리에 머무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간에 미지의 존재(잉고였지만)에게 문자가 계속 오고 모린이 그에게 휘둘리는 모습(그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 금기를 깨뜨린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은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생뚱맞아 보일 수 있다. 갑자기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린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잉고는 모린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불안하고 약한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를 본 후 자신이 보그지에서 일한다며 일자리를 주겠다고 쓱 던지고 그게 먹히지 않자 대화를 통해 그녀를 탐색하고, 자신을 영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자신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로 위로를 하고 안심을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는 영혼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기에 '미지의 존재'로써,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존재로서 그녀를 가지고 논다. 너와 대화하고 싶다고. 


모린이 잉고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만큼 그녀가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약했기 때문이다. 혼자 어두컴컴한 곳에서 오빠의 영혼을 기다리는 모습이 강인해 보일 수 있지만 귀신이 나타났을 때 그녀는 무서워서 벌벌 떤다. 영화의 끝부분에 어윈과의 대화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모린이 루이스를 따라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루이스 자신이 영매라고 하니까 쌍둥이인 모린도 자신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따라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루이스와 모린의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쌍둥이 남매 루이스와 모린은 서로에게 깊이 의존하며 마음을 기댔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사라지니 남은 모린은 자신의 일부분이 사라진 것처럼 느꼈을 것이고, 루이스가 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가 살던 곳에 남아 그와의 교감을 기다리고 갈망했던 것이다. 


영화는 엔딩 장면에서 모린 자신이 '영혼과의 교감'을 할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그녀가 만들어 낸 상상'일 수 있다고 암시한다. 모린의 눈에만 귀신이 보였던 것이 아니고, 모린이 보지 못한 귀신을 관객들은 보게 만들어서 실제로 루이스의 영혼이 모린의 주변을 맴돌았을 가능성과,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시일 가능성 모두를 제시한다. 루이스의 영혼이 떠나지 못하고 모린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 해도 애달프고, 모린이 보고 느낀 것은 그녀가 만들어낸 환시라고 해도 마음 아프다. 다행인 것은 모린이 잉고와 키라의 일을 겪은 후, 더 이상 파리에 머물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음까지는 어쩔 수 없어도 몸은 루이스가 살던 곳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 어쩌면 그런 일련의 일들이 루이스가 모린을 위해, 모린을 지키기 위해 (어윈은 죽은 자가 산 사람을 지킨다는 말이 있어요. 하고 말했었다) 만들어낸 것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린이 퍼스널 쇼퍼가 된 것은 루이스의 영혼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키라를 견딘 것도, 잉고에게 휘둘린 것도 루이스에 대한 그리움에 잠식되었기 때문이다. 모린은 어윈과 대화할 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당신도 라라도 행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윈이 그 말을 모린에게 돌려주었듯,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죄책감을 놓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함께  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다운로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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