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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Sep 29. 2022

비커밍 제인 (2007)

- 사랑만을 선택하는 것과 단 하나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의 공존

감독 : 줄리언 재롤드

출연 : 앤 해서웨이, 제임스 맥어보이, 로렌스 폭스, 안나 맥스웰 마틴


줄리언 재롤드 감독의 2007년 작품 <비커밍 제인>을 보았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삶을 다뤘다고 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좋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꺼려지기도 하기에 보는 것을 미뤘었다. 계속 좋아하고 싶은 마음(팬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완성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나는 꽤 감정 이입이 되어 재밌게 잘 보았다. 내게도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은 소원이 있기도 하고,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평생 믿어왔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맘껏 할 수 있을 만큼 살아온 환경이 풍족하지 못했어서 많은 부분 제인 오스틴에게 이입되는 부분이 있다. 

부끄럽게도 <오만과 편견>의 영화를 열 번 가까이 보았으면서도 (좋아하는 장면은 수십, 수백 번 보았지만) 아직 소설로는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 <오만과 편견>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과 연결 지어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은 어찌 됐든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일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 사람만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는 판타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이 참 고결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쉽게 볼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한 사람에게 매여서 자신을 파괴하는 수준까지 가는 신파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고,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과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 모두 이해가 되며 그것이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애잔하다. 그리고 그녀가 소설 속에서는 사랑의 결실을 맺고 행복을 찾는 것으로 결말을 낸 것을 알기에 마음이 더 아리아리해진다.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이 살던 시대는 아직 신분 사회였고, 여자는 유산을 물려받을 수 없는 그런 사회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서재(500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했다고 함)를 드나들며 책을 읽은 제인 오스틴은 글을 썼고, 자신이 쓴 글로써 인정받기를 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가 되어 돈을 벌고 싶었다.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제인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해 보일뿐이다. 부자 청년의 청혼을 받고도 거절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속 제인의 부모 조지 오스틴과 커샌드라 오스틴은 사랑해서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제인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길 원했다. 하지만 제인을 처음 사랑에 눈 뜨게 한 장본인인 토마스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 역시 가난한 데다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외삼촌에게 속박되어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사랑을 험난하게 만든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는 리즈와 다아시가 서로에게 끌리긴 하지만 아닌 척하는 시간이 꽤 길다. 하지만 <비커밍 제인> 속 제인과 톰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톰과 다아시가 상당히 다른 캐릭터여서 좀 의외였다. 톰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 남자들과는 꽤 달랐지만 제인이 어떤 점에 그렇게 끌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가 잘 표현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잘난 남자들이 쉽지 않은 여자에게 끌리는 심리와 비슷한 것인지,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할 때 졸고, 자신의 글을 폄하하고, 섣부르게 조언하는 톰에게 제인은 이상하게 끌린다. 나는 보면서 위즐리(로렌스 폭스)-돈은 많지만 매력은 없는-와 결혼하기 싫은 마음이 커서 더 톰에게 끌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제인이 먼저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던 톰이 제인의 적극성에 무너지는 것이고. '다아시'라는 인물은 정말 클래식하게 멋진 남자의 표본(제인 오스틴이 멋짐이란 멋짐은 다 때려부었다)이라서 제인 오스틴이 실제로 얼마나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 걸까 궁금했는데 다아시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다아시 같은 남자는 찾을 수가 없나 보다) 그래도 어쨌거나 제인이 사랑하는 남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가난한 줄은 알았지만 외삼촌에게 완전히 속박되어 있었다는 것은 모른 채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두 사람은 런던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제인을 짝사랑해왔던 다른 남자가 이상한 편지를 톰의 외삼촌에게 보내는 바람에 그는 극대노하면서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제인은 그럼에도 이 난관을 둘이 함께 뚫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너무 쉽게 물러서는 톰을 보며 상처를 입은 채 햄프셔로 돌아온다. 겉으로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빠 헨리도, 백작부인도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 

햄프셔에 돌아오니 제인은 위즐리와의 결혼에 더 압박을 느낀다. 정말 원치 않는데 자신만 바라보는 식구들이며, 현실을 마냥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오빠 헨리는 톰이 이곳에 와 있으며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했다는 소식을 제인에게 전하고, 제인은 자신도 위즐리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톰이 햄프셔에 온 이유는 제인의 오해를 풀고 그녀와 함께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도망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인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함께 도망치는 것은 성공했지만 도중에 제인은 우연히 톰의 어머니가 그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톰의 현실이 어떠한지 직면한다. 그는 외삼촌에게 받은 용돈을 흥청망청 쓰는 한량이 아니었고, 그 돈을 쪼개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톰이 없으면 그의 가족이 살아갈 길은 막막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인은 결심한다. 그와 헤어지기로. 

가족들을 상처 입히면서 얻은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그에게 말한다. 함께 도망치기로 한 것이 이미 가족을 버린 것임에도(그녀 역시 그런 선택을 했으면서도) 자신의 상황과는 또 다른 톰의 상황을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다. 그가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그의 가족들을 나 몰라라 하며 톰과 함께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손을 놓으면 그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제인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복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쪽을 선택한다. 



제인은 소설 속에 자신의 분신인 '리즈 베넷'이 원하는 행복에 도달하도록 만든다. 그녀의 글은 그녀가 살고 있는 시대상을 심도 있게 담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어려움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리즈가 사랑하고, 리즈를 사랑하는 남자 다아시는 차원이 다른 부와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랑의 난관이 있어도 기꺼이 극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묵묵히 그녀를 지키고 도와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적극적으로 먼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리즈 역시 다아시의 외숙모가 사랑을 방해하며 모욕을 주어도 자존심이 아닌 사랑을 선택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리즈의 언니 제인도 부자 청년 빙리와 바라던 결혼을 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제인의 언니 커샌드라는 약혼자를 병으로 먼저 보낸다. 그리고 제인과 커샌드라는 평생 독신으로 산다. 




이 영화를 보면 제인 오스틴이 어떤 마음으로 소설 <오만과 편견>을 썼을지 헤아릴 수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다. 사랑하는 사람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 자신의 유일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공존할 수 있다. 사랑하기에 기꺼이 그와 함께 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로 결심할 수 있고, 사랑하는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의 손을 놓을 수도 있다. 다른 마음이 아니다. 같은 마음, 하나의 마음이다.


제인은 톰과 헤어진 후, 진지하게 '글로 먹고사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오빠 헨리가 백작부인(미망인-돈도 많고 나이도 많음)과 결혼하면서 제인과 커샌드라가 살아갈 집을 마련해 주어 거기서 글을 쓰며 사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좋은 글이 아니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글을 쓰면서도 현실에서 못 다 이룬 사랑을 글 속에서라도 이루고 싶은 그 마음, 사랑에 방해가 되었던 악조건들은 다 없애버리고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 힘 있는 남자를 그려낸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40년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인생 안에 '진정한 사랑'과 '꿈의 성취'가 있어 제인 오스틴의 삶은 아름답고 또 성공적이다. 


이제는 정말로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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