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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Oct 17. 2022

가을의 전설 (1995)

- 내 안에서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음성

감독 : 에드워드 즈윅

출연 : 브래드 피트, 안소니 홉킨스, 에이단 퀸, 줄리아 오몬드, 헨리 토마스, 카리나 롬바드


어떤 이는 크고 분명하게 자신의 내부의 소릴 듣고 들리는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미치거나 전설적으로 되죠.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1995년 작품 <가을의 전설>을 보았다. 감독의 필모를 보니 꽤 유명한 작품들이 있는데 내가 본 것이라곤 이 영화와 <셰익스피어 인 러브> 밖에는 없다. 보려고 찜해둔 영화들은 몇 개 있는데 아직 안 봤으니까, 감독님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는 말이다. 이 영화 <가을의 전설>도 개봉 당시 본 것은 아니고 꽤 시간이 흘러서 EBS에서 방영할 때 보았는데 꽤 재밌게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다시 이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이유는 가을이 왔으니 '가을'을 떠올리는 영화를 봐볼까? 도 아니고 갑자기 생각나서도 아니고, 바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리뷰를 요청받은 것이 처음이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영화를 잘 보았고 성심껏 리뷰를 써 보려고 한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재미는 있었지만 왜 제목이 '가을의 전설'일까 했었다. (아마 EBS에서 볼 때 앞부분을 놓친 듯하다) 그래서 제목이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제목이 굉장히 분명하고 심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의 전설'이란 곧 브래드 피트가 분한 트리스탄 러드로를 지칭하는 것. 9월에 태어났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대로 살아간, 그래서 전설이 된 인물.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세계 제1차 대전 시기, 미국의 북서부 몬테나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평생 군인으로 살았다가 은퇴한 아버지 윌리엄 러드로(안소니 홉킨스)와 세 아들, 곧 알프레드, 트리스탄, 사무엘의 삶이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여기에 막내 사무엘의 약혼녀 수잔나(줄리아 오먼드)가 인사를 하러 오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고,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까. 

물론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상당한 매력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고, 외모라는 것이 첫 만남에는 큰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외모 외의 것을 생각할 때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가. 여러 가지 세부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분명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리는 확실히 매력을 느낀다. 휘둘리지 않고, 따라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기꺼이 개척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의 차남 트리스탄이 이런 인물이다. 거기에 외모가 출중하다 못해 우주를 뚫고 나가는 수준이니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초매력남으로 나온다. 


사무엘(헨리 토마스)이 수잔나를 데려왔을 때, 트리스탄과 알프레드(심지어 아버지 윌리엄까지)는 한눈에 수잔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다만 동생의 약혼녀이니 자기감정을 절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이 모두 수잔나에게 반하는 이유는 그녀의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이 삼 형제의 어머니는 이런 시골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오래전 그들의 곁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떠나고선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원주민(인디언)들이 있을 뿐, 사람, 특히 또래 여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이런 결핍과 그들의 젊음과 아름다운 여성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시너지를 발휘해 삼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비극이 초래되는 것이다. 



문제는 수잔나 역시 트리스탄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트리스탄과 수잔나도 서로 거리를 두며 잘 절제하다가 사무엘이 영국군을 돕겠다며 군 입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명목상 서로를 '위로한다'는 것이 수잔나가 트리스탄에게 안겨 우는 꼴이 되었고, 그 모습을 형 알프레드(에이단 퀸)가 보게 된다. 자신 역시 수잔나에게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알프레드는 더 화를 내고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 윌리엄은 사무엘 혼자 전쟁터에 보낼 수 없어 트리스탄과 함께 보낸다. 트리스탄이 입대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사무엘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 갇힌 사무엘은 아주 잠깐 트리스탄이 떨어져 있는 사이 자원해서 격전지에 나가고, 트리스탄이 급하게 뒤쫓아가지만 결국 사무엘을 구하지 못한다.

사무엘의 죽음이 자기 책임이라고 느낀 트리스탄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없는 사이 알프레드는 수잔나에게 구애한다. 하지만 트리스탄이 돌아오자 수잔나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무엘에 대한 일로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트리스탄은 수잔나와 연인 사이가 된다. 수잔나가 그에게 기대면 기댈수록 마음이 불편한 트리스탄은 결국 다시 집을 떠나고, 수잔나는 연락이 없는 트리스탄을 기다리다 지쳐 알프레드와 결혼을 한다. 


돌아온 트리스탄은 이제 어엿한 아가씨가 된 이사벨(카리나 롬바드)과 결혼을 하고, 알프레드는 하원에 당선되어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트리스탄을 사랑하는 수잔나는 마음이 괴롭다. 알프레드는 금주 법안에 찬성하고 트리스탄은 밀주를 팔면서 생업을 유지하는데, 의원이면서도 뒤로 밀주를 팔면서 돈을 버는 불량배들의 눈 밖에 난 트리스탄은 그들의 위협에도 아랑곳 않는다. 그런데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경고하러 온 그들이 쏜 총에 아내 이사벨이 맞아 사망하고, 트리스탄은 폭행죄로 얼마간 감옥살이를 한다.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트리스탄은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트리스탄은 가차 없이 그 불량배를 죽여 버리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알프레드가 등장해 그들에게 총을 쏘면서 그들의 복수는 일단락된다.



1900년대 초반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촘촘하게 작동되지는 않는다. 무법까지는 아니어도 제약이 헐거울 때 인간의 본성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기독교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감정을 절제하고 행동을 자제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자기 중심성은 언제나 모든 선택의 최후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남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무엘의 이상주의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대로 사는 멋짐'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알프레드가 끝내 수잔나를 쟁취한 것도, 수잔나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도, 트리스탄이 수잔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모두 '나'라는 존재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소위 '잘난 사람'들이 어떤 수난을 겪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너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보통 다른 사람보다 더 유혹에 열려있다. (물론 기회이기도 하다) 트리스탄은 겁이 없고 거침없는 상남자라서 사무엘을 지키러 전쟁터로 가게 된 것이고, 거기서 동생이 죽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또 사무엘의 약혼자였으면서 자신을 좋아하는 수잔나에게 결국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최후에는 그 거침없음 때문에 악한의 타깃이 되었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하지만 누가 협박한다고 물러서지 않고, 누가 좋아해 준다고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누군가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떠나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남들에게는 없는 아우라가 있다. 그의 인생이 험하고, 사건 사고가 많아서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부딪힐 걸 알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상처가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선택했기 때문에 전설이 된다. 




영화는 마지막에 내레이션을 통해, 트리스탄이 오래 살면서 손주가 태어나는 것까지 보고 죽었다고 말한다. 굵고 짧게 살다 간 인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 총성이 울린 후 트리스탄은 보다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지금까지는 남들과 다르게 살았다면, 이후에는 남들처럼 자녀에게 헌신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그렇게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 내부에서 들리는 음성대로 살아간 것임이 분명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라는 내면의 음성. 트리스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고 분명하게 들리는 자기 내부의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대로 살았다. 


전설은 그 소리를 듣는 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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