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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Oct 31. 2022

20세기 소녀 (2022)

- 나의 20세기를 함부로 쓰지 말아 주시오.

감독 : 방우리

출연 :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방우리 감독의 <20세기 소녀>를 보았다. 재밌는 레트로 로맨스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그래도 어지간하겠거니 하고 봤는데.. 

나는 20세기 사람이라, (10대와 20대 초반을 20세기에서 보냈다) 그 시절 얘기가 나오면 상당히 몰입이 잘 된다. <응답하라 1988>, <스물다섯, 스물하나> 모두 내 삶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이입도 많이 되고, 그래서 참 재미있게 봤다. 그런 면에서 제목에 '20세기'라는 말이 들어간 영화라서 평타는 치겠거니 했다.(내 입장에서),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21세기에 왜 아직도 이런 영화가 생산되고 소비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각본과 감독을 모두 맡은  방우리라는 이름으로 검색도 해보았는데, 단편 영화 연출 경험 이후 6-7년의 공백이 있던데 도대체 어떤 연이 닿아서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아 장편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연출가의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감독 중에서는 '김원석 감독', '유제원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등장하는 배우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 디렉션이 뛰어나다. 그런데 연기 디렉션이 탁월하면 다른 부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감독들은 각본의 매력을 200% 끌어올리는 감독들이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 이 영화 <20세기 소녀>라는 작품의 퀄리티를 배우들의 연기력이 증명하고 있다는 말이다. '김유정이 연기를 저렇게밖에 못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리뷰를 쓸 때, 전반적으로 맘에 안 들어도 영화가 갖는 장점과 매력도 부각해서 쓰려고 노력한다. 아티스트에 대한 나름의 존중이고, 또 이 작품들을 잘 본 관객들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도대체 좋은 말을 쓸 수가 없다. 세상에 있는 모든 클리셰는 다 가져다 썼다. 



영화에서 현재의 나보라로 출연하는 한효주 배우 분이 아빠의 전화를 한 통 받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보라(김유정)의 가장 친한 친구 김연두(노윤서)는 심장병 때문에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우연히 알게 된 백현진(박정우)이라는 학생에게 첫눈에 반해 미국행도 포기하겠다고 하는 연두. 연두가 수술을 받고 건강해지길 누구보다 바라는 보라는 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너에게 보고하겠다고 약속하고 연두를 달래 미국으로 보낸다. 그리고 현진을 졸졸 따라다니며 관찰하고, 그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자기 주변에서 얼쩡대면서도 눈빛에 사심이 없는 보라를 현진은 의식하기 시작한다. 현진이 방송반에 지원한다는 것을 알고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보라도 지원하지만 현진은 보라에게 양보하겠다며 방송반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방송반이 된 보라는 같이 방송반이 된 현진의 친구 풍운호(변우석)와 자주 만나면서 가까워진다. 태권소녀 보라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현진은 보라에게 반하게 되고, 보라는 자꾸만 운호가 좋아져서 심장이 콩닥거린다. 벌써부터 보라를 좋아하고 있던 운호는 보라가 현진을 좋아하는 줄만 알고 무척이나 속상했는데, 수학여행 중에 취중진담을 해버린 보라 덕에 운호는 보라의 마음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내어 보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첫사랑이 시작되려는 찰나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건강해진 연두가 귀국한다.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늘을 날 것 같은 보라, 거기에 그리웠던 친구가 건강해져서 돌아오니 보라의 일상엔 행복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연두가 좋아한다던 현진이 실은 운호였는데.. (운호가 현진의 교복을 입고 연두네 가게에 갔을 때 연두가 그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것)

보라는 속이 썩어 들어가지만 자신의 마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운호와 영화를 보기로 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두와 운호를 이어 주기 위해 현진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고, 운호와 연두가 둘만 있을 수 있도록 현진을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데...


뭔가 이상한 낌새는 있었지만 보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는 연두, 하지만 현진의 입을 통해 이미 보라와 운호가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며,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연두. 운호는 다시 엄마와 동생이 있는 뉴질랜드로 돌아가야 하고(부모님이 이혼했는데 운호는 아빠 따라서 한국에 잠깐 들어옴) 가기 전에 보라와 솔직하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보라를 찾아가 '좋아한다'라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아직 연두와 화해하지 못한 보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연두는 보라에게 '나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도 너야' 라며 보라가 운호를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보라지만, 운호가 곧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미친 듯이 뛰어서 떠나기 전 그를 잠깐 만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보라도 말한다. "너를 좋아한다."라고.



고2, 고3이 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메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보라와 운호.

하지만 어느 날부터 운호로부터 일절의 답장이 오지 않고.. 꽤 오랜 시간 운호를 기다리지만 운호의 소식은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가 없다. 연두는 그만 운호를 잊고 다른 남자를 만나라며 소개팅을 주선하고, 보라는 알았다고 자리에 나가는데 상대방의 말에서 운호를 떠올린 보라는 그 앞에서 목놓아 운다.


시간이 흘러, 다시 현재. 

그녀 앞으로 온 소포는, 고등학교 때 운호에게 빌려주었던 비디오테이프. (이재용 감독의 '정사') 

테이프를 비디오 테크에 넣어 재생하니, 운호가 찍은 자신의 모습이 가득하다. (한효주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아닌데, 이런 연기는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들어있던 전시회 티켓을 가지고 전시회장을 가서 관람을 하다가 한 작품의 제목에 '풍운호'의 이름이 붙은 것을 발견하는데, 그 앞에 다시 故 자가 붙은 것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데..


결국 제목이 <20세기 소녀>인 이유는 남주 운호가 21세기 보라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두 명의 소녀와 두 명의 소년이 등장하는 스토리에서 사랑은 항상 엇갈리기 마련이다. 두 소년이 한 소녀를 좋아하게 되고, 한 소년을 좋아하게 된 소녀는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우정과 사랑이 이루어지느냐 끝장나느냐의 갈림길은 있지만 대체로 이러한 노선을 걷는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여주인공의 친구는 심장병을 앓고 남주인공은 죽는다니.. (심장병도 어떤 심장병인지, 운호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다) 이것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20세기라는 소재만 살짝 가져다 썼을 뿐 극본을 쓴 사람 자신의 아이디어가 그 어디에도 없다. 근데 넷플릭스라는 거대 ott의 자본으로 이런 극본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니.. (내가 써도 이렇게는 안 쓰겠어요) 뭔가 좀 억울하기까지 하다. 나중에 운호가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고 성인이 된 운호와 만나는 것으로 엔딩을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을 듯. 똑같은 클리셰라도 허무하지는 않잖아. 최소한. 


남의 돈 함부로 쓰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투자는 가치 있는 곳에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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