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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10. 2022

스펜서 (2022)

-삶이란 이면이다.

감독 : 파블로 라라인

출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숀 해리스, 잭 파딩, 잭 닐렌, 프레디 스프라이, 스텔라 고넷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2022년도 작품 <스펜서>를 보았다. <퍼스널 쇼퍼>를 보고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필모를 찾아보다가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넷플릭스에 있길래 보았다. 영화 자체는 나한테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라는 인물의 삶 속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1961년에 출생해 1997년에 사망하기까지, 그녀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물론 나는 큰 관심은 없었다) 영화를 본 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분한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사람의 실제 말투가 영화 속 배우의 연기와 비슷했는지를 보고 싶어 다이애나에 대해 좀 알아보았다. 유튜브에서 다이애나의 육성 인터뷰를 보니, 몰아붙이듯 말하는 투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영화 속 말투와 꽤 비슷하게 매치가 됐다. 영화 속 다이애나의 말투가 맘에 들었다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신경쇠약에 걸린 데다 몰아붙이는 말투가 꽤나 거슬렸기 때문에 실제로 다이애나가 그렇게 말했는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다이애나가 왕세자비로 있었던 시간들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혼하기 전 해에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 며칠 간을 그리기 때문에 이미 다이애나가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있을 대로 쇠약해진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두 시간 가까이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꽤 피곤하다. 그녀를 온전히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비되어 다이애나가 더 불쌍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이해하기가 힘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모든 사람이 다이애나의 생애를 아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다이애나의 스토리를 어느 정도라도 알고 봐야지, 정보 없이 본다면 별로 재미도 없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은 영화이다. 


왕가 식구들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떤 성에서 모여서 보내는데, 거기에는 이상한 전통 하나가 있다. 바로 난방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윌리엄, 해리 왕자)이 춥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다른 왕실 사람들은 전통이니까, 지키라고 하니까 군말 않고 지키지만 다이애나는 그런 전통을 왜 지켜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그렇게 그린다) 그러니까 본질은 이렇다. 왕실의 법도를 다이애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버겁다. 거기에다가 갓 스무 살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결혼 전부터 만난 유부녀와의 관계를 끝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다이애나는 해결할 힘이 없다. 하지만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다이애나는 시집간 왕실에 더 매이게 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차치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서 살아야 하는데, 거기에 대중에게 보여야 하는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 정신적인 고문이 따로 없는 것이다. 



남편은 불륜의 상대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매 식사 시간마다 갖춰 입어야 할 의상이 정해져 있고, 편안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법도에 따라먹는다. 파파라치 사진을 피하기 위해 커튼을 열 수 없게 붙여버리고, 이곳을 떠날 때 반드시 몸무게가 불어야 한다며 강제로 몸무게를 잰다. 어른들이 자리하기 전에 미리 가서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추위에 떠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남편은 자기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며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이곳에서 자기편은 아무도 없는데 자신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편하게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물론 이미 다이애나는 이 모든 것을 견뎌낼 내적 힘을 소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나에게 그 여자에게 사준 것과 똑같은 것을 사줬다며 화를 내고, 목걸이를 착용은 하지만 식사 자리에서 거칠게 풀러 버리며 진주알을 입에 넣는다. 어른들이 기다린다고 해도 시간에 맞춰 등장하지 않고, 봉쇄된 창문도 열어젖힌다.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고, 입으라는 옷도 입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탈해 버린다. 



영화의 제목이 우리가 그녀를 부르는 이름 '다이애나'가 아니라 '스펜서'인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녀를 영국 왕실의 며느리, 현대판 신데렐라, 왕세자비 다이애나로 알고 있지만, 결혼하기 전 그녀의 성인 '스펜서'를 사용해 왕세자비가 아닌 인간 스펜서로서 보아주길 요구한다. 타이틀이 붙지 않은 그녀 자체로 보라고 말한다. 사실, 타이틀이라는 것 소위 뺏지라는 것이 그 사람을 대변할 때가 많음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학벌, 직업, 직위, 가족관계 등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때가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데는 시간이 소요된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도 부지기수다. 나 조차도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삶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숨어있던 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경험한다. 타이틀 떼고 그 사람 자체로 보아 달라는 말은 어찌 보면 쉽고 안일하기까지 하다. 


나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어떻게 혹은 왜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는지부터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통해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다. 스펜서 가문 자체가 귀족 가문인 데다, 친가와 외가 모두 왕실과 가깝게 지냈다고 하며, 결혼 전 이미 찰스가 카밀라라는 유부녀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약혼이 발표된 이후이고 친정에서도 결혼을 강요해서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공주는 아니지만 공주처럼 자란 어린 소녀가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결혼식을 하고 나면 찰스가 가정에 충실하리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왕실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인형에 불과했다. 불행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이었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기에, 다이애나에게도 역시 원초적인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정보를 찾아봤는데, 귀족의 딸로 태어난 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었고, 그래서 공주처럼 자란 것도 왕실과 가까이 지내며 찰스를 알게 된 것도 그녀의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갓 스무 살이 된 여자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친정과 연을 끊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성인이 된 후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뭔가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의 불행이란 어떤 것인가, 나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이혼 후에는 자기 의지로 많은 곳을 다니며 선행을 베풀었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왕세자비 자리를 떠났음에도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고 폭로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의 삶에서 불행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를, 더 유명해지기를, 사랑받기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유명인들에게 열광하며 또는 그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화려하기만 한 삶은 없다. 유명 연예인이 되면 편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는 포기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도 쉬쉬해야 하고, 헤어졌어도 만나는 척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미지를 위해 쇼윈도 부부 생활을 유지한다. 수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자기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휘둘릴 수도 있다. 


삶에는 항상 이면이 존재한다. 화려함 뒤에는 고독이 있고,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한 뒤에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지배당한다.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해야만 한다. 원치 않아도 삶의 순간들이 외부에 노출되고, 그것으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욕심이란 게 있어야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마련이기에 꿈을 가지고 욕망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것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쪽에 가깝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도달했을 때 행복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다.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않았던 고통과 위험을 감내할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행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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