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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MySummer Dec 06. 2022

불편한 수영장

10세 딸의 수영선수 도전기 (feat. 영화 '4등')


“ Take your mark” 


짧은 출발 신호음이 울렸다. ‘첨벙’ 여덟 개 레인에 선 선수들이 거의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든다. 

7번 레인. 다소 어정쩡한 폼으로 입수한 딸아이가 5초 후 물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은 스타트. 

동영상 촬영 중인 카메라를 고정한 채 숨을 죽이고 아이의 몸짓을 쫓았다. 

네 번의 스트로크 후 한 번의 호흡. 동작을 착실히 이어가던 아이가 50미터 레인 중반이 지나자 조금씩 옆 레인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심장이 바빠진다. 

‘와’ 길고도 짧은 30여 초가 지나고 1등으로로 도착한 레인의 기록이 전광판에 뜨자 관중석 한쪽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몇 초 후 딸아이를 비롯한 몇 명의 선수들이 터치패드를 찍었다. 

아이의 이름과 기록이 차례로 전광판에 올랐다. 간발의 차. 4등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학년 입학 무렵이었다. 

전국 체인 중 하나였던 동네 어린이 수영장은 단계별로 급수를 정해 아이들의 성취욕을 증진시켰는데 급수별로  수모 색이 다르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동기부여가 됐지 부모에겐 별 감흥이 없었다. 

간혹 휴가지에서 혼자 물놀이를 하는 아이를 보며 ‘역시 돈 주고 배운 값을 한다’며 속물 같은 농담을 했을 뿐이었다. 


주에 한두 번. 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열정으로 2년이 지나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린이 수영장의 끝판왕 격인 마스터즈반에 속해있었다. 같은 수영장 어린이들의 선망인 검은 모를 쓴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아이는 슬그머니 ‘체육중학교’라는 곳에 대해 물어왔다. 

전 체인 지점이 참가한 수영대회에서 두 개의 메달을 딴 후엔 그녀의 장래희망이 어느새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가 되어있었다. 


수영장에 따라가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엄마는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물에 뜨지도 못하는 맥주병 주제에 아이의 폼을 간섭하고 기록에 예민해졌다. 스타트 동작이 미흡한 아이를 위해 더 큰 수영장의 선생님에게 몰래 강습을 받게 했다. 하루 한 시간 주에 3회뿐인 어린이 수영장의 연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결국 여름방학이 끝나고는 주에 6회 하루 두 시간씩 연습을 하는 시의 제법  큰 체육센터 수영장의 선수반에 등록시켰다. 


그리고 곧 수영장이 불편해졌다. 아직 3학년. 어리기만 한 딸이지만 이 세계에 뛰어들기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세 7세에 수영을 시작한 아이들이 태반이었고 적어도 초등 1학년부터는 선수반 활동을 하면서 하루 두 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오고 있었다. 

어린이 수영장에서나 힘 좀 줬지 이곳에서는 가장 미천한 실력.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대기실에 앉아 1학년 동생보다 뒤처지는 아이의 속도를 바라보는 일은 힘겨웠다. 

괜히 시작했어. 3년 2학기. 공부에 관심이 좀 있다는 엄마들은 슬슬 수학을 달리고 예체능을 줄일 시기였다. 적어도 1년은 해보자. 처음 약속과 다르게 1년 후 이도 저도 아니게 될까 두려웠다. 새로운 수영장에 적응 중인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못하는 게 당연한 거야’ 토닥이다가 ‘우리 집에 운동 유전자 없어. 때려치워.’하고 모진 말을 뱉었다. 마음이 널을 뛰었다. 




영화 ‘4등’에도 이런 엄마가 나온다. 아이보다 아이의 메달에 더 집착하는 엄마. 재능은 있지만 만년  4등을 못 벗어 나는 아들. 엄마의 소원은 아들이 수영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고 그 때문에 수영 코치가 아들을 체벌하는 것도 묵인한다. 아들이 맞는 것보다 메달을  못 따는 게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아들이 결국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아이를 위로하기보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수영을 그만두냐’며 절규한다. 

영화 4등 포스터 / 정지우 감독 

아이의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고 할 때, 후배들이 꽤 잘 나가는 프로의 메인 작가가 되고 큰 엔터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의 수입이 감히 나로서는 꿈꿀 수도 없는 숫자가 되어있을 때. 아이에게 더 매달렸다. 그들이 지난 10년간 자기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 아이와 함께 걸어왔다. 아이를 내 인생 최고의 히트작으로 만들고 싶었다. 


영화 속 엄마도 나와 같았다. 절에서 기도하며 큰 아들의 메달, 작은 아들의 학업, 남편의 건강을 빌었다는 엄마. 엄마를 위해서 무엇을 빌었냐는 작은아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없어”



아이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의 꿈이 나의 꿈이었다. 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다면 그게 엄마의 꿈이었다. 아이가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면 나도 언제든 물속에 뛰어들어야 했다.


선수반 등록 후 첫 도내 수영대회에서 아이는 ‘4등’을 했다. 비등록 선수였고 1등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성적이었지만 시합을 마친 아이의 얼굴은 밝았다. 입수할 때 수경이 벗겨질까 걱정했다며 종알거리는 얼굴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여름휴가로 간 제주도 호텔의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4가지 영법을 연습하던 모습이 겹쳐졌다. 새카맣게 탄, 수경 자국만 하얗게 남은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도 활짝 웃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의 수영 연습을 지켜보지 않는다. 아이를 수영장에 내려주면 집으로 곧장 와 2시간 동안 나의 공부와 식사 준비를 한 후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간다. 


“엄마 나 오늘 자유형 50미터 몇 초 나왔는지 알아?”


덜 마른 머리를 털며 차에 오른 아이가 지친 기색으로 말을 꺼낸다. 아이의 말 끝에 한숨이 묻어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핸들을 돌리며 대답한다. 


“괜찮아, 열심히 했음 됐어. 더 좋아질 거야.”


물에 처음 뜰 때 기억하지. 몸에 힘을 빼야 한다며. 그러니 너무 힘주지 말자. 우리가, 아니 네가 건너야 할 곳은  50미터 레인이 아니라 저 넓은 세상이니까. 이것은 나에게 거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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