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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MySummer Dec 06. 2022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춘기 환승 이별 (feat. 환승 연애)

하교 중인 딸아이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아이 이름을 불렀다. 친구들 틈에서 허리를 꺾으며 웃던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 ‘아, 엄마’ 하며 웃음을 멈춘다. 친구들도 쭈뼛쭈뼛 인사를 한다. 습관처럼 손을 잡는데 딸이 슬며시 손을 물리치고 친구들 옆으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 셋과 내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쉼 없이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대화가 뚝 끊겼다.

‘요것들 봐라’

불청객의 기습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민망해진 공기에 그냥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거리가 벌어지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둘만 남 득달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무슨 얘기 했어? 뭐가 그렇게 재밌어?”

“몰라. 있어”

시큰둥한 목소리. 아이는 설명하기 귀찮으면 ‘있어’하고 퉁 치는 습관이 있다.  

“오늘 어땠어? 재밌었어?” 무슨 일 없었어?”

“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은 엄마 마음도 모르고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기억 안 나. 별 거 없었어. 대화의 의지가 안 보이는 상대의 관심을 돌려보고자 필살기를 날려본다.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아이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한 번 힐끔 보고 만다. 아, 이게 아니었나. 유치원 땐 먹혔는데. 온몸으로 그리움을 표현을 하던 애교쟁이 딸은 아무래도 구 버전인 듯하다. 엄마만 적어도 두 버전 이상 업데이트가 늦고 있는 듯하다.  간단한 문자밖에 안 되는 키즈폰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친구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보고 또 본다. 변했어 너. 아직 아기 티가 남은 오동통한 볼살이 유독 불퉁하게 느껴진다. 아, 이런 게 바로 환승 이별일까.


환승 이별: 사귀던 연인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연인을 만나는 . 연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교통수단을 갈아타는 것에 빗대어 표현한 .


티빙 오리지널 / 환승 연애

티빙의 웹 예능 프로그램 ‘환승 연애’는  구 남자 친구와 구 여자 친구가 함께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각자 X(구 연인)의 데이트 상대를 골라주고, 다른 X들과 새로운 썸을 타기도 하는 과정에서 옛 연인과의 감정을 정리한다. 너무 사랑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기도 하고 돌고 돌아 결국은 너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본투 비 유교 걸에게 설정부터 충격인 프로그램이었지만 사랑에 울고 웃는 청춘들의 모습은 참 솔직하고 아름답다는 감상이 들었다. 나와 아이의 관계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친구가 점점 더 좋아지는 아이. 부쩍 혼자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 아이는 엄마의 손을 귀찮아한다. 사람들 앞에서 스킨십이라도 하면 질색하고 벗어나려 한다. 예전엔 혼나면 눈물만 뚝뚝 흘리더니 이제는 제법 논리적인 말대꾸도 늘었다. 딸아이의 휴대폰에 비밀번호가 걸린 것을 확인했을 땐 어찌나 배신감이 들던지.

명백한 유년기의 이별 징후 앞에서 아직도 아기 때의 아이를 놓지 못해 틈만 나면 옛 사진을 들여다보며 질척거린다. 그래도 아직 잠자리 독립을 못한 아이가 품을 파고드는 체온을 느낄 땐 우리가 환승역의 어느 구간에 겹쳐져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아직 배웅할 기회가 남아서.




정기 진료를 가는 병원에서 오랜만에 아이 키를 체크했다. 매일 보느라 자라는 줄도 몰랐던 성장은 6개월 사이에 5센티미터나 이뤄져 있었다. 네 마음도 그랬을까. 매일 들여다보면서도 네 안의 키가 자라는 건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그렇게 성장처럼 자연스럽게 너의 마음도 다른 곳을 향해 떠나겠지. 네가 다른 기차에 올랐을 때, 그때 플랫폼에 서서 웃으며 손 흔드는 엄마가 되어 줄게.

깊은 밤. 예민한 잠을 깨우는 아이의 뒤척임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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