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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월 Jul 03. 2024

달과 6펜스 사이의 모순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1. 작품 요약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한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순’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이 겉으로 보이고 싶은 모습과 실제 속마음이 달랐으며, 저마다의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한 사람의 이상이 실현되면, 타인의 이상이 파괴되는 역설이 존재한다. 스트릭랜드와 그의 부인의 이혼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도 스트릭랜드는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신념으로 여러 사람들의 삶은 처절하게 파괴된다. 작가 몸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순에 대해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2. 작품의 줄거리

  사회에서 안정적인 명예와 부를 지녔던 스트릭랜드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파리의 가난한 골목 속 작은 방으로 떠나버린 모습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6펜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스트릭랜드 부인과 그의 숙부는 스트릭랜드가 다른 여자가 생겼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확신한다. 하지만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담은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떠난 스트릭랜드는 술집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여성을 만났음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냉정함을 보여주며, 다시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시작한 스트릭랜드는 사람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이 자신을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을 경멸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동정도, 인정도 바라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평판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솔직한 비웃음과 독설적인 말을 자주 하기도 하였다. 그가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걸었던 인물은 작품의 서술자이다. 서술자는 스트릭랜드에게 어떠한 동정심도 표현하지 않고, 그저 지금 자신을 기준으로 그를 대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천재적인 작품성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스트로브이다. 예술작품에 대해 탁월한 안목을 지닌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작품이 훗날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스트릭랜드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스트릭랜드가 며칠 동안 그가 매일 다니던 카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스트로브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의 방을 찾아가 그의 처참한 몸 상태를 확인한다. 그러곤 아내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데려와 몇 주 동안이나 지극히 간호한다. 서서히 몸이 나은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의 배려로 스트로브의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오히려 스트로브에게 작업실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한다. 화가 난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더 이상 집에 머물지 말라고 하고, 스트릭랜드는 수긍한다. 이때 스트로브의 아내는 스트릭랜드를 따라가겠다며 말하고, 스트로브는 이별을 맞이하며 자신의 집을 떠난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잠깐의 욕망이 해소된 뒤 더 이상 스트로브의 아내에게 관심이 없어졌고, 스트로브의 집을 떠난다. 그리고 스트로브의 아내는 자살한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무책임한 태도에 매우 분노하며 자신의 작업실에 남겨진 그가 그린 아내의 나체 그림을 찢어버리려 하지만 그 속에서 스트릭랜드의 긍지 높은 무언가를 느끼고, 그 그림과 자신의 책, 옷가지를 챙겨 고향으로 돌아간다.


  스트릭랜드는 마르세유를 거쳐 타히티로 향한다. 타히티에서도 그는 사람들이 사는 곳보다는 인적이 드문 깊은 자연 속에서 살았으며, 그는 그곳에서 아타라는 여인과 동거를 한다.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전 부인, 스트로브의 부인과 다르게 스트릭랜드가 하려는 모든 것에 순종하였으며, 스트릭랜드의 세계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아타의 집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고, 스트릭랜드는 그곳에서 자신의 예술에 몰두한다. 그러던 중 그는 나병에 걸려 시력을 잃게 되지만, 그 와중에도 집의 벽면에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데, 그 그림은 당대 최고의 성당에 그려진 벽화보다도 더 고양된, 스트릭랜드의 혼이 담긴 걸작이었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유언으로 자신의 집을 불태워달라 하고, 그 걸작은 불길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3. 달이라는 세계

  스트릭랜드가 추구하는 이상을 의미하는 ‘달’은 현실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가장 먼저 경제와 가족을 포기했다. 이는 ‘6펜스’라는 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다음으로 그는 삶에서의 안정과 인간관계를 포기하였으며, 본능적 욕구, 건강과 시력 그리고 목숨마저 잃었다. 그의 그림 속 세계가 깊어질수록 그의 육체는 점점 더 열약해져 갔다. 그럼에도 그는 예술의 긍지를 위해 자신이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 또한 이를 위해서 기존의 세계, 즉 자신의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아픔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고, 우리는 그가 지향한 세계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의 열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시대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꿈, 우리는 그 둘 중 무엇을 택하던지 하나의 파괴를 맞이하게 된다.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이지만, 작품에서 드러난 실상이 그러하다. 스트릭랜드가 지향했던 것은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그저 자신의 긍지를 위해 살아가는 태도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삶의 정수를 담아낸 걸작을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긴 이유는 그가 그간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았던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타인의 평가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자신의 혼이 담긴 그러한 예술 세계를 지향했던 것이다. 작품 속에 ‘달’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럼에도 ‘달’이 그의 예술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태양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진 시각이자, 세속의 모든 것과 육체를 내려놓고 마침내 순수한 영혼만으로만 닿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4. 달과 6펜스

  위에서 말한 해석은 내가 썼음에도 사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달’이 예술 세계라면, 걸작이 완성되었을 때 스트릭랜드는 왜 ‘6펜스’에서 벗어난 철저한 고독이 아니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스트릭랜드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6펜스’의 세계에서 보면 거부되기 좋은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 작은 곳에 머물고 있는 ‘달’에 대한 지향은 나도 한 번쯤은 스트릭랜드처럼 모든 것의 제약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지향을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혹은 포기할 수 없기에 ‘6펜스’라는 일상을 남겨놓은 채로 이상을 지향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며, 어쩌면 이것이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순의 경지인 아브락사스로 향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스트릭랜드 또한 그런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타히티에서 그는 아타와 가정을 꾸리며 살아갔으며 이는 ‘6펜스’의 세계에 속하는 성적 욕망과 인간관계가 ‘달’의 세계에서 일정 부분 실현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모순적이기에 하나의 세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모순적인 두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정말 인간다움이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제목이 ‘달’이 아닌 ‘달과 6펜스’인 이유이며 나의 의구심에 대한 해답은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 일일이 다루지 않은 이유는 하나이다. 독자가 속한 세계에 따라 각각의 모순은 지향 혹은 지양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인간에게 선인 것은 또 다른 인간에게는 악일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은 관계를 바탕으로 자신이 하나의 세계 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든 관계와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우리에겐 선과 악의 구별이 사라질 것이다. 그저 자신의 긍지가 스스로의 길이 될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6펜스‘의 시각도, ’달‘의 시각도 아닌 ’달과 6펜스‘의 시각에서 그의 삶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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