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한 소개팅’의 준말
마흔을 접어들며
소개팅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자만추를 노릴 모임이나 장소를 가기에도
외모로 들이대기에도
쉽지 않은 나이이기에.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임해야 한다.
그래서 나가게 된 전 회사 동료가 주선한 소개팅.
동료는 운동을 통해 깐부가 된 형이니
나더러 잘하라 한다.
(그 형에게도 나에게 한 것처럼 비슷하게 으름장 놨겠지?)
장소는 한남동 이자까야.
어둠이 깎아주는 실루엣이 좋아
내게 선택권이 있을 땐 주로 이자까야를 택한다.
문을 들어섰을 때 홀로 앉아있던
백바지에 블루 스트라이프 티를 입고 있던 그.
증권맨이라 들었는데 선원이었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간단히 눈인사만 하고
메뉴에 눈을 담그는 그.
오늘 소개팅은 쉽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래도 생각보다는 주저리주저리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때.
그는 이런 실수를 한다.
[그] 저는 친구끼리도 둘은 잘 안 만나요. 뻘쭘해서.
[나] 어머 그럼 지금 이 자리도 엄청 불편하시겠네요.
[그] 아녜요~ 소개팅은 서로 모르는 사이니 할 얘기가 많아서 괜찮죠.
[나] 아 그럼 다시 혼자 사신지 좀 되어서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게 불편하신가 보네요.
[그] 아니죠~ 제 전 여친이... 이런 얘기해도 되나? 승무원이었는데, 본가가 평택이라 인천에서는 좀 멀어서요. 비행 사이사이에 시간이 애매하면 저희 집에서 같이 살곤 했었어요.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타입이라. ㅎㅎ
[나] ... 그... 그렇군요...
TMI의 연속에 취해
이제 그만 일어날까 싶을 때 그가 말한다.
본인이 다음날 라운딩이 잡혀있으니 한병 정도만 더 하자고.
(라운딩 안 잡혔으면 얼마나 마시려핸? 첫 만남에?)
화이트 추가 한 병에
그의 또 다른 망언이 시작되었다.
[그] 금융권 여자분들은 콧대가 장난 아니에요. 제 동기들은 반반한 외모에 스펙도 갖췄으니 의사 아니면 거들떠도 안 보고. 사무직 분들도 팀 잘 만나면 연말 인센 포함 억을 찍으니 그보다 잘 버는 남자를 찾기 쉽지 않죠.
[나] ... 그럼 그런 분들 중 좀 괜찮은 분을 소개받으시면 되겠네요.ㅋㅋ (나도 이제 아무 말 대잔치 시동 건다 부릉부릉)
[그] 아휴 안되죠. 사무직 분들은 네트워크가 워낙 세서, 잘못 건들면 큰일 나요. ㅎㅎ
[나] ... 아... 잘못 건들(?)면요...
와인 두 병을 클리어한 후
나는 그 자리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근데 끝까지 골 때리는 그.
[그] 집은 어떻게 가요?
[나] 건너서 버스 타면 한방에 갑니다.
[그] 그럼 건너서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나] 괜찮습니다. 서대문 쪽이시면 여기서 타고 가셔야죠.
[그] 아니 저도 운동 좀 합시다! ㅎㅎ
[나] (건너편까지 300m도 안되는데 운동 부심 무엇) 아녜요. 내일 라운딩 갈 체력을 아끼셔야죠... (아무 말 대잔치 투비컨티뉴)
[그] ... 음 그럼 아무튼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도 요즘 간혹 노망 난 것처럼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못하는 똥개의 모습이 발현되는데.
이건 뭐... 똥의 양이 대형견 수준이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런 망언을 서슴없이 읊은 건가 싶기도 한데.
마음에 들었으면?
저런 민낯을 보지 못하고
관계가 형성되었을 걸 생각하니 더 소름 돋는다.
그래.
외모 덕(?)에 저런 놈들 걸러낸 걸 다행으로 생각해.
우선 주선해 준 전 회사 동료와는 연을 끊고.
다음 소개팅이나 잘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