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험천만한 방어 기재
최근 동생네 집에서 며칠간 머물렀다.
제부와 동생은 해외 출장이 잦아
홀로 육아를 담당하는 기간이 많다.
조카도 조카지만
일하랴 육아하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동생이 너무 안쓰러워
도와주러 간 거였는데.
취지는 좋았으나
아침부터 짜증 내는 첫째 조카의 삐대기에
나와 동생이 둘 다 터져버렸다.
(동생은 엄마니까 그렇다 치고
이모인 나는 왜 때문에?)
10살 된 첫째 조카의 열폭에
그게 무슨 10살이냐,
학급 임원이 왜 그 모양이냐
빈정거린 나.
이제 와서 그날의 사단을 돌이켜보니
제대로 된 훈계도 아니고
투사로 인해
10살 아이와 말다툼하는
모지리 이모의 수준이었다.
내 기억 속
10살의 나는
어른스럽고 의젓했다.
하지만 세상에 다 좋고 다 나쁜 건 없듯이.
너무 빨리 성숙했던 탓에
양심의 가책에, 남의 이목에 짓눌려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뒤늦게
총량의 법칙을 맞추려 노력이라도 한 마냥
마흔에 다다른 이제야
내 꼴리는 대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살고 있다.
10살 조카에게서
어른스러웠던 내 어릴 적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하고 싶은 말과 표현을 맘껏 하는
조카의 당당한 모습에
과거의 내가
부러움에, 나아가 질투심에
불쑥 화부터 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10살의 내가 풀지 못한
그 시절 숙제를
지금이라도 끄집어내어.
해결해주진 못해도
다독여만 주더라도
40살의 내가
투사를 줄여나갈 수 있을터.
오늘도 난
조카들을 통해
간접 육아를 경험하며
다시금 부모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내 동생 파이팅.
우리 제부 파이팅.
이 세상 모든 부모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