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넘게 나와 함께한 팬티가 있었다.
첫 만남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스스로 잘 돌보지 못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코스트코 간 김에 사다준 가성비 좋은 팬티 묶음 중 하나였다.
그 팬티의 효험을 느낀 첫 계기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몹쓸 기억력),
운수 좋은 날과 그 팬티를 착용하는 일자가 누적 겹쳐지며 내 머릿속에 “럭키 팬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 팬티의 효능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찐 핑크에 단조로운 CK로고띠를 두른 럭키 팬티는 회사에서 주요 pt가 있는 날, 소개팅 날, 이직 면접의 날, 고과 및 연봉 책정의 날 등 여러 방면에서 행운의 매개체로서 그 힘을 발휘했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해가듯 탄력을 점차 잃어가며 이너웨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채 바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럭키 팬티를 보며, 어느덧 보내줘야 한다 vs. 죽어도 못 보내~ 난제에 봉착했다.
이리저리 대체제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헤맸지만, 다 죽어가는 내 럭키 팬티만큼의 효능을 발휘하는 팬티를 결국 찾지 못했다.
해서 난 지난주 주말, 전남편보다도 질긴 인연이었던 럭키 팬티를 고이 보내줬다.
기념용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을까,
혹은 라미네이트해서 평생 보관할까도 고민했지만,
서로의 비위를 위해 마지막 모습은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어려운 사업 현황 속 사장님/임원진과 수차례 회의를 통해 본사 보고서를 처리했는데,
팬티의 부재가 무색하게 큰 무리 없이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 결국 이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린 거구나.
흘러내리는 팬티를 열 걸음에 한 번씩 열심히 추켜올리며 매달릴 필요가 없었던 거구나…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면서까지 남겨준 교훈도 소용이 없다.
결국 나란 인간은 탄력 잃은 팬티와 직접 사투를 벌여야만 이치를 깨닫는 인간이었다.
무튼, 이젠 그 어떤 징크스도 매달림도 없이 내 의지에 의지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으니…
더욱 열심히 삶에 매진해야겠다.
그 누구도, 팬티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