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왕서방 주방장님 Part 4

by 쏘쿨쏘영

(Part 3에 이어서)

손님들의 주방장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면

식당에 대한 신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니까....

캐셔가 비난받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은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베지테리언 여성 고객의 무시하는듯한 눈빛을 감내하면서 돌아서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소윤의 마음속에서 그 왕서방 주방장 아저씨에 대한 약간의 불만이나 화가 모락모락 생겨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미국땅까지 와서 영어를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해서 어떻게 미국에서 밥벌이를 하신다는 거지?'


사실,

쇼핑몰 안의 작은 식당에서 단 두 사람이 근무해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일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과 같은 문제가 매번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어린 매니저에게 분점을 맡겨 주시고 미국에서 학비를 벌 수 있게 일자리를 주신 한국 사장님의 신뢰 때문 에라도 더 이상 같은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었다.


소윤은, 분점의 매니저로서 이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주방장 아저씨에게 손짓 발짓으로 때로는 한자로 의사소통을 계속 시도해 보았지만,


정작 아저씨는 본인 얼굴에 나 있는 왕점의 뻣뻣하고 긴털을 손가락으로 꼬아가며 유유자적이셨다.

(TMI : 홍콩 영화의 우스꽝스러운 단골 조연 캐릭터처럼 그분의 얼굴에는 콩 두 알 만한 크기의 왕점이 있었고, 그 점 중앙부에는 굵고 뻣뻣한, 긴 수염 같은 털들이 솟아나 있었다, 마치 분장이나 한 것처럼.)


그 점과 털들을 소윤은 끔찍이도 싫어했다.

위생적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왜 중국인 주방장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저런 왕서방 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쯤 되면, 식당으로 출근하기 전 꼭 입어야 하는 출근복장 중 하나라고 봐야 하나?


그러나 저러나,

소윤의 잔소리를 못 들은 척하는 그 아저씨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열불이 나는 듯했었는데,

세월이 흘러 소윤이 지금 그 아저씨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그의 면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를 하지도 못하면서도, 미국으로 날아와 억척스럽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내는 생명력.

새로운 나라에서 더 나은 기회를 가족들에게 주기 위해 힘든 환경을 버텨내는 가장으로서의 그 책임감.

잔소리 심한 어린 여자 매니저의, 옳지만 듣기 싫은 타박소리는 가볍게 패스해 주는 저 넓은 마음 혹은 뻔뻔함.


그리고, 어찌 되었든, 본인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내는 식당의 핵심 인사라는 자신감.


그 자신도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이 힘들었을 텐데 타인들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 단 한번,

힘들어하는 듯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잠깐의 break time, 쇼핑몰 외부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 아저씨의 뒷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을 보았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점 이후, 아저씨를 향한 소윤의 잔소리는 조금 줄었고 조금 mild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