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고,
운이 나쁠 때도 있고,
운이 좋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웃는 날도 있다.
우는 날이 많으면
그만큼 크게 웃는 날도 많겠지.
좋은 일이 있으면
물론 힘든 일도 있다.
지난 2여 년간 사람들로 인한 풍파들이 있었을 때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바라보았던 현실과는
다른 방식의 삶들을 듣거나 볼 때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선의는 종종 오해받기 십상이었고
때로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취급받을 뻔도 했다.
난 비판을 많이 받으며 오래 다닌 회사를 떠났다.
일부는 타당한 비판이었지만
일부는 지나치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았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칭찬받을 때도 있었고 비난받을 때도 있었다.
오래 머문 둥지를 떠날 때마다
나는 굉장히 힘들었고 혼란스러웠다.
아직도 실패는 내 주위에 만연해 있다.
준비 없이 나가게 된 이후, 무엇이라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해 봤다.
그 과정에서 나와는 맞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나와 맞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이쯤 되니 불안한 마음 가득 안은 채
확실한 최종의 것을 마냥 기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불확실함을 즐겨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이 어디 있는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하나뿐.
모든 것은 유동적이다.
Deal with it.
이러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호기로웠던 다짐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불확실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간 노력해 왔지만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자괴감,
나의 다하지 못한 책임.
그 자괴감으로 고통받을 때마다 기도와 명상을 했다.
온몸을, 내가 이렇게나 몸을 낮춰 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낮추어 절을 하면 감정의 기복도 그 높낮이가 낮아져 갔다.
그제야, 비로소 나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가능성 있는 나'에 오랫동안 중독된 채로 그냥저냥 살아갔던 건 아니었나?
오랜 시간 삶의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억눌러 놓은,
내가 얻은 것, 내가 잃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한 생각에만
집중했더니, 역설적으로 '나'는 사라지고 내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결국엔 반드시 배움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살릴 것이라는 이전의 경험에서
나온 의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불확실한 법이다.
그러니, deal with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