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나는 그림을 그렸다.
국민학교 어린 시절, 어느 어스름한 저녁.
어머니는 저녁밥 짓느라 바쁘신 시간,
안방에 혼자 퍼질러 앉아 동아 크레파스로,
선생님이 제출하라고 하신 그림을 그렸다.
주제는 자유 선정이니 내 생각대로 주제를 정해
뚝딱뚝딱 슥슥슥 그려내어 나가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이곳저곳 왔다 갔다 좋아하는,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성격의 나는,
유독 그림 그릴 때만큼은 엉덩이를 진중하게 붙이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수정 없이 거침없이 그려나간 그 그림은
조금 규모 있는 어느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부모님도 초청받은 그 시상식에서 나는
상을 받은 기쁨보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그때도 그림을 그렸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 길을 찾지 못해 내면적으로 혼란스러운 대학생 시절을 보낸 나는, 그럴 때마다,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로 콩테를 가지고 데생 초상화를 그렸다.
영화 제인 에어의 주인공 샬롯 갱스부르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의 제인 에어 포스터나 잡지 사진을 흑백의 이미지로 그려 나갔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골치 아픈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때도 그림을 그렸다.
20대 후반, 회사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느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온몸으로 그 스트레스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는 화실을 찾아 나섰다.
미대 입시를 치를 것도 아니면서 또 그렇게 4B 연필로
아그리파 석고상을 그려대고 있었다.
어느 시점 이후 그림을 오랜 시간 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릴 수가 없었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오롯이 캔버스에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
나를 편견 없이 마음껏 받아 줄 수 있는
하얀 여백으로 가득 찬 바다와 같은 캔버스 위에
떠오른 심상대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아무것도 없는 흰 여백 위에 무언가를 그려서 완성해 나간다는 게 어렵지 않아? 뭔가 시안을 보고 그리는 거야? 그림이나 그리고 놀고 있으니 팔자 좋다, 돈 벌어야 하잖아? 그게 돈이 되니?
라고 누군가들이 물었다.
난 대답했다.
쉬워.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 나가면 되지.
정답은 없어.
잘 그렸니 못 그렸니 하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정해진 걸 보고 똑같이 그리는 게 난 더 힘들어.
네 스타일대로 해.
그려 나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시작해.
그림 그리는 건 본능이야.
돈이 돼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생산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