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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쿨쏘영 Sep 02. 2024

제23화

달달함을 찾는 이들에게 씁쓸함의 미학에 대하여

아, 소주 이야기 아닙니다,

에스프레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주 가는 동네 카페들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게 되면

항상 듣게 되는 주인장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동네에서 에스프레소 주문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그.. 그.. 그렇기는 하죠.


안국동에나 가야 에스프레소 전문프랜차이즈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아'가 시장을 지배하는 한국인지라... 이해 완.


서둘러  에스프레소를 뽑으시면서 꼭 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에스프레소로는 잘 안 뽑아봐서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갓 볶은 원두 혹은 질 좋은 원두가 아닌 이상,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카페가 좋은 원두를 쓰는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다면,

그 집 에스프레소를 마셔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혀 끝으로 단지 쓴맛, 탄맛만 느껴진다면 좋지 않은 원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좋은 에스프레소는 맛의 층위, layer를 여러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갈색과 크림 컬러의 크레마가 풍성하게 커피잔 위를 가득 덮고 있다면, 네, 일단은 출발이 좋습니다.

큰 거품이 아니라 작고 보드라운 거품들이 에스프레소 위를 덮고 있어야 해요.


부드러운 크레마를 조심스럽게 혀끝에서부터

마셔 보도록 합니다.

고소함이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OK.

고소함을 미리 느껴보라고 말씀드린 건,

다음에 다가올 깊은 쓴맛을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좋은 에스프레소, 친절하죠?

어떤 경우, 그 사소한, 고소한 친절함도 없이 바로 뒤통수를 갈기는 쓴 맛을 보여 주는 현실 세상에 비하면 말입니다.

씁쓸하죠? 자, 그 씁쓸한 맛을 기억하세요.


에스프레소의 쓴맛이라고 제가 편의상 표기했지만,

그 진한 쓴 맛은 사실 초콜릿의 달콤 쌉싸름한 맛과 유사합니다.


조금 달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우 쓰기도 합니다.

고소하기도 합니다. 구수하기도 합니다.

양이 적으니 슬프기도 합니다.

양이 적으니 아쉽기도 합니다.

양이 적으니 낭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을 더 기약하게 만듭니다.


씁쓸함의 미학은, 다음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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