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삶을 가볍게

오래된 옛 물건들, 기억하기

by 쏘쿨쏘영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오래되고 전통적인 물건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에 특별한 애착을 느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평소 쓰시던 물건들 중 어머니가 아직도 보관하고 계신 참빗과 삼베를 짤 때 날실 틈으로 왔다 갔다 씨실을 풀어주는 베북.

아마도 족히 60년은 넘었으리라.

손때 묻은 오래된 그 물건들을 바라볼 때면 옛 분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고단한 세월 모든 것이 부족했고 가난했던 그 시절,

많은 자식들 배곯지 않게 밤늦게까지 삼베나 비단을 예쁘게 짜내셨다는 외할머니.

솜씨가 아주 좋으셨고 머리가 아주 총명하셨고,

특히 예지몽을 잘 꾸시고 길흉을 잘 알아내는 분이셨다. 시대를 잘못 태어나셔서 그 능력을 펼치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같은 여성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외할머니의 딸들 중 내 어머니가 그분의 능력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고, 나도 그 능력을 조금은 물려받은 것 같다.


언젠가 외할머니의 저 물건들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 나에게로 대물림될 것이다. 나만큼 잘 보관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 오래도록 내 곁에서 머물 수 있도록 아껴줄 것이다.


고향집 인근에는 오래된 한옥 마을과 서원, 절이 많다.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 내가 모두 사랑하는 곳이다.

특히 병산서원과 봉정사는 방문할 때마다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래된 목조 건물들을 방문할 때면, 항상 건물을 이루고 있는 목재 기둥들을 찬찬히 손으로 쓰다듬으며, 무수한 세월에 갈라진 그 틈들을 눈에 차분히 담아 보곤 한다.

아름답다.

영겁의 세월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에는 어떤 값비싼 명품 브랜드들도 흉내 낼 수 없는 품격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 배흘림기둥을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 멍해지는 듯한 어지러운 기분이 든다.

아마도 그 무수한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 아름다움과 세월의 무상함에 압도당한 것이리라.

병산서원 만대루에 올라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면,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니고 여긴 여기가 아닌 듯한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잠시 그 풍경을 떠올리며 눈을 감아 본다.


오랜만에 인사동에 가 보았다.

서울에 갓 올라온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인사동은 나의 최애 플레이스이다. 전통적인 한옥들과 6~70년대 스타일의 오래된 건물들이 들어찬 그 길의 풍경을, 난 사랑했다.

도심 속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지금은 예전의 오래된 맛집과 가게들이 많이 사라지고 카페와 기념품 파는 가게들로 많이 채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식당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2000년부터 자주 갔던 작은 한정식 집이 있었는데, 문득 그 집의 언양 불고기 요리가 너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 서울로 마실 나온 김에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가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옆 골목 익숙한 그 길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작은 한옥은 그대로 있는데, 대문은 잠겨 있고 오래된 한문 간판이 없는 채로 비어 있었다.

장사하는 인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아. 이렇게 추억 하나가 사라져 가는구나….’ 정말 맛있는 언양 불고기를 내놓던 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그 집 대문 앞에서 서성거려 본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또 다른 추억의 맛집이 떠올랐다.

일본식 솥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1970년대부터 장사를 해 오고 있다 한다. 오래된 건물 1층 조그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추억 속에서 계속 생각나던 맛있는 솥밥을 하나 시키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손님들의 연령대가 다소 높다.

가게도 나도 나이를 먹었다.

다이어트하는 동안 쌀밥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는데, 모처럼 한 그릇의 밥을 싹싹 긁어먹었다.

오늘은 그렇게, 맛있는 한 그릇의 밥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여전히 예전의 맛 그대로였다.

든든하게 감사히 잘 먹고 오래된 추억에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집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