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600달러

by 쏘쿨쏘영


영국 요크셔 황야 어디쯤의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 위.


언덕 위 바위 부근에 유독 바람이 세차게 몰아 치고 있다. 수수하고 단정한, 하지만 고급 면직 소재로 만들어진 여행용 드레스 치마가 바람에 펄럭인다.

엘리자베스는 세찬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 끝 낭떠러지, 떨어질 것 같은 그 위험한 지점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눈을 감은 채로.


저녁노을이 지기 전 따뜻하고 붉은 색감의 햇살이 엘리자베스의 감은 두 눈에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바람과 맞서기라도 하는 듯,

혹은 마치 자신이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나는 새라도 되는 듯, 두 팔을 벌려 유영하듯이 한껏 바람을 느끼ㄴ





“손님. 손님, 안전벨트 매 주세요.”
“아, 네? 아함…… (하품). 네.”

승무원의 재촉 소리에 잠을 깬 소윤.
처음 타는 국제선 비행기,
먼 길 차를 타고 고향에서 국제공항까지 오느라 피곤하여 졸음이 쏟아졌나 보다.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어 버렸네, 이런.'


'엘리자베스가 두 팔 벌려 오랜만의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소설 속 장면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그리다가 그만 선잠이 들어 버렸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소윤은 좁은 이코노미석의 의자에 달린 안전벨트를 황급히 채웠다.

승무원의 재촉에 안전벨트를 맨 후 좌석에 앉아 비행기 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군데군데 비어 있는 이코노미 좌석들이 소윤의 눈에 보였다.

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인 6월 초순인지라 아직은 비행기 좌석에 여유가 많아 보였다.
처음 타본 국제선 비행기의 이코노미 좌석은 몸집이 작은 소윤에게도 조금 갑갑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옆자리 몸집이 큰 외국승객의 팔과 소윤의 팔꿈치가 자주 닿게 되니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륙하면 저기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네.’라고 생각하며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처음 가보는 외국.
그것도 아주 짧은 여행이 아니라 장기간의 영어 어학연수, 미국행이다.

그 첫 여정이 지금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소윤의 마음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떨렸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은 전혀 없이 막연한 기대감만이 소윤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을 기억하자. 1994년 여름.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날이다.’

비행기는 천천히 움직이며 어스름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곧게 뻗은 활주로에 올라섰다.
자, 이제 이륙이다.



600달러.
소윤은 가방 안에 깊숙이 넣어 둔 지갑 속의 달러 지폐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600달러.
아직 어린 나이의 소윤에게도, 그 돈을 마련해 주신 부모님께도, 그 당시에 그 돈은 적은 금액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시간 칼라마주 (Kalamazoo)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바뀌었다.

(다음 화는 매주 토요일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