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나뭇잎이 진흙 위에 떨어진 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화석처럼 굳어져 진흙 위에 각인되어 버린다.
사람의 마음, 순간의 감정도 세월이 지나면 그 생생함은 사라지고 푸른빛을 잃어 가지만, 마음속에 화석처럼 깊이 잔상을 남긴 채로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오감 중에서 가장 많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후각이라고 하는데, 소윤에게 후각보다 강렬하게 잔상을 남기는 감각은 청각이었다.
나직하고 편안한 음성.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절한 속도로
다정하게 건네는 따뜻한 음성......
가을은 또 이렇게 기억들을 소환시키고 있었다.
툭. 툭. 후드득.
서걱서걱.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숲길이나 캠퍼스 안에서 흔히 보이는, 얼굴보다 더 큰 나뭇잎들이 소윤의 발등을 스치며 굴러다녔다.
이 나무를 뭐라고 하더라?
여하튼 엄청나게 큰 나뭇잎인데...
'미국은 뭐든지 크구먼.'
심지어 캠퍼스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다람쥐조차도 아주 커서 처음엔 토끼인 줄 알았다는 한국 유학생들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휴우......"
무겁지만은 않은, 나직한 한숨소리가 소윤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어스름하게 해가 질듯 말듯한 그 애매한 해거름의 시간.
캠퍼스 카페테리아 일을 마치고 나온 소윤은 건물 현관의 잿빛 철제 난간에 기대어 붉은 단풍들과 붉어져 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이 다 끝난 시간대의 캠퍼스는 한적했고
하늘은 아름답게 노을 지고 있었고
단풍이 들어가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절로 노래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씬이다.
"난~
난 눈을 감아요 빛과 그대 모습 사라져~
이제 어둠이 밀려오네~
저 파란 어둠 속에서 그대 왜 잠 들어가나~
세상은 아직 그대 곁에 있는데~
사랑은 아니지만~
우리의 만남 어둠은 사라지네 오오~
시간은 빛으로 물들어 또다시 흐르네~
내 눈빛 속 그대~"
노래를 할 때 진성이 아니라 비음이 약간 섞인 가성으로 흥얼흥얼 부르는 소윤의 목소리에, 가수 이소라의 노래는 가장 잘 어울리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이다.
자연의 풍광에 감흥을 받거나 마음이 흥겨울 때 혹은 조금 우울하거나 힘들 때,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소윤. 오늘도 역시 하루의 고단함을 한 곡의 노래로 마무리하는데......
"A nice voice!"
혼자 나직이 부르던 소윤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어느샌가 근처에 와 있던 어느 미국 학생의 comment.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쿨하게 칭찬의 말을 해주고는, 자전거에 가볍게 올라타고 그 남학생은 유유히 제 갈길을 갔다.
마치, 톰 크루즈가 모터사이클에 올라타고 활주로를 질주하듯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오, 쏘 스윗하네.'
가끔은,
한마디의 따뜻한 말,
사소하고 따뜻한 제스처 만으로도 마음 가득
행복을 느끼는, 그런 모멘트가 있다.
오늘, 소윤은 자전거 청년에게서 그 모멘트를 선물 받은 셈이었다. Zillion thanks!
(매주 토요일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