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눈, 시카고, 불법유턴

by 쏘쿨쏘영


초겨울 그 어디쯤.

시카고에는 전날 밤 눈이 내렸나 보다.


눈이 오는 시기를 피해 얼른 다녀오자던 말들이 무색하게,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시카고의 도로 옆은 치워진 눈으로 가득했다.


흐릿한 구름이 낀 듯한 회색빛의 하늘, 소윤이 처음 본 시카고의 인상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궂어 사람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라고는 예단하지 마시라.

소윤은 이런 우중충한 날씨를 오히려 좋아하니까.

물기 가득 품은 공기는 소윤의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고 감성을 자극한다.


시카고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각양각색 컬러의 거대한 건축물들이 보였다.


유독 시카고에는 박스 형태의 밋밋한 빌딩들이 아니라 건축가의 역량을 과시하는 듯한 자유분방한 형태의 아름다운 빌딩들이 많았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 때 불타버린 빌딩들을 대체하고자 새로 짓게 된 건물들에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폐허 위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때, 아픔을 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우리네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스르륵.


갑자기 자동차가 당황한 듯 시카고 자연사 박물관 옆 2차선 도로 위에서 속도를 줄였다.


"어, 길 잘못 들어선 거예요? 선배?"

운전하는 남자 유학생 아저씨에게 조수석에 앉아 있던 룸메이트 언니가 물었다.


"응. 여기 앞은 막다른 길이네."


그 말을 듣고 차창밖을 바라보니, 그렇다.

바로 앞은 3거리, 더 이상 직진할 길이 없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지?" 언니가 묻자, 운전대를 잡은 그 아저씨는 바로 쿨하게


휘~익, 휘~익.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손이 크게 한 바퀴 두 바퀴 원을 그리더니 바로 불법 유턴을 해버렸다, 아주 유쾌하게.


너무 급회전이라 차에 탄 우리들의 몸이 옆으로 스윽 기울었지만, 왠지 그것마저도 경쾌한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주 유쾌하게 느껴졌다.


"길이 없으면 돌아가면 되는 거야. 어차피 길은 다 이어져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 시카고 여러 번 와봤어."


잘생긴 얼굴은 아니고 멋도 부리지 않았던, 다소 구닥다리 같은 느낌의 매력 없는 아저씨라고 생각했던 그 유학생이 오늘은 조금 달리 보였다.


운전대를 쥐고 있는 사람의 책임감,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작은 배려, 그리고 그 책임감에서 나온 여유가 보이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인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소윤은 자연사 박물관 그 거대한 측면 벽면을 차창밖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