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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Oct 31. 2018

죽음을 이야기하다

《개를 기르다(犬を飼う)》

  중학교 때였나, 그때 처음으로 죽음을 걱정하며 꽤 깊은 시름에 빠졌었다. 


  한 달쯤을 그렇게 보냈는데 학교 둘레가 공동묘지 터여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죽음에 대해 또 생각했다. 


  이상하게 그때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지만 남겨질 식구들을 생각하니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렇게 될까 봐 그게 더 두려웠다.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ー, 1947-2017) 작품 《개를 기르다》는 제목만 보면 귀여운 강아지를 기르는 내용 같지만, 이 만화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생명을 이야기한다.      

ⓒ 청년사

  한 젊은 부부가 도심에서 떨어진 마당 딸린 단독주택을 빌린 뒤 남편이 친구에게 부탁해 받은 태어난 지 두 달 된 강아지를 기른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4배, 큰 개는 7배 빠르게 늙는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개는 열네 살이 되는데 걷기조차 어려워한다.


  잘 움직이지 못하니 누운 채로 똥을 싸고 욕창도 생긴다. 


  가늘어진 목숨을 겨우겨우 이어가는 개에게 동네 할머니가 얼른 떠나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는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낸다.


  “나도 얼른 가고 싶단다. 하지만 죽을 수가 있어야지.” 


  누군들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지루하게 살고 싶을까. 


  동네 할머니 말처럼 그 모두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다. 


  죽음 앞에서는 개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9월 26일 마지막 발작이 일어나고 동물병원 수의사가 위험하다고 하자 부부는 걱정 속에 밤을 새운다. 


  링거까지 맞아가며 한 달을 버티던 개는 새벽 1시 30분 눈을 감는다. 

ⓒ 谷口 ジロー

  부부는 정든 식구 하나를 잃은 듯 슬피 운다.      


  이 만화는 기르던 개로 우리가 경험하기 쉽지 않은 죽음을 잘 보여준다. 


  다니구치 지로는 마치 일기를 쓰듯 늙은 개 행동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나타냈다. 


  “1990년 11월 29일. 개가 죽은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어요. 비가 내리는 추운 날 한 찻집에서 알고 지내던 편집자와 만났습니다. 갓 볶은 따스한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 집 개 이야기를 했더니 그 편집자는 좋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이 만들어졌지요.”


  작가도 열다섯 해를 기르던 개가 죽은 뒤 그 일을 꼭 만화로 그려보고 싶었다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라 그런지 더 와 닿는다. 


  다시 《개를 기르다》 내용.


  남편은 개가 죽은 뒤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동물보호협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옆집 아줌마 설득에 마음 약한 아내가 넘어간다. 


  그렇게 부부에게 떠맡겨지듯 주인에게 버려진 고양이가 다가온다. 

ⓒ 谷口 ジロー

  이 책 두 번째 이야기인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이다. 


  그저 뚱뚱한 줄 알았던 고양이는 알고 보니 새끼를 배었고 세 마리가 태어난다. 


  그렇게 생명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7년 09월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겨진 유기견은 2016년 6만 3602마리로 해마다 그 숫자가 는다고 한다. 


  발견되지 않거나 개인이 맡아 기르는 유기견까지 하면 한 해 10만 마리 넘게 버려진다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동물을 기른다고 한다. 


  밥을 주고 돌보니 그 말도 맞다. 


  다니구치 지로는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썼다.    

  

  “개 기르기는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동물을 길러보니 얼마나 힘든지를 알았어요. 동물을 기른다기보다 동물과 함께 산다고나 할까요.”    

  

  동물을 기른다기보다 함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면 더 와 닿을 작품 《개를 기르다》. 


  우리는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이 어떤 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어쩌면 그것은 더 잘살려고 하는 걱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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