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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ug 20. 202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달걀말이(出汁巻き卵)

  달걀과 소금만 있으면 되는 달걀말이.


  요즘이야 달걀말이 프라이팬도 있지만 그게 없었을 때는 모양이 헝클어지기 일쑤였다.


  간 조절은 또 얼마나 힘든지 짜거나 어느 한 곳만 짜게 돼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참 쉬워 보이는 이 음식은 웬만큼 만들어보지 않고서는 힘들다.


  이누도 잇신(犬童 一心, 1960-) 감독 작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

ⓒ (주)엔케이컨텐츠

  2003년에 만들어져 국내에는 2004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장애인 조제와 비장애인 츠네오 이야기이다.


  마작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낡은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닌다는 어떤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이른 아침,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려 길가 가드레일에 부딪히는 유모차를 보게 되는데 손님들이 이야기하던 그 유모차였다.


  유모차를 놓친 할머니가 츠네오에게 괜찮은지 봐달라고 하자 유모차를 살펴보는데 큰돈이나 마약이 있을 거라는 손님들 말과 달리 잔뜩 겁먹은 얼굴로 식칼을 움켜쥔 여자(이케와키 치즈루)가 있었다.

ⓒ (주)엔케이컨텐츠

  할머니는 다리를 못 쓰는 손녀를 그렇게 유모차로 산책시키고 있었다.


  할머니를 대신해 집까지 유모차를 밀어주던 츠네오는 밥을 먹고 가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으레 그런 곳은 더럽고 냄새난다고 생각하기에 밥을 차려준다고 해도 썩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구나 유모차에 있던 장애인 여자가 음식을 만드는데 츠네오는 선입관 때문인지 꺼림칙해 한다.

ⓒ (주)엔케이컨텐츠

  이윽고 미역 된장국과 달걀말이와 당근과 오이로 만든 일본식 절임 오싱코(おしんこ) 으깬 두부로 보이는 반찬이 있는 수수한 밥상이 차려진다.


  뻘쭘하게 있던 츠네오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미역 된장국 냄새를 슬쩍 맡는다.


  우리나라에서 츠네오처럼 하면 큰 실례이다.


  이런 행동은 음식 냄새가 좋아서 한 것과는 다르니까.


  츠네오는 슬쩍 국물 맛을 본다.


  이내 어라, 맛있네,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한번 국물과  미역을 건져 먹고는 ‘으음~’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 (주)엔케이컨텐츠

  츠네오가 달걀말이 하나를 집는다.


  보기에는 그냥 흔한 달걀말이 같은데 맛을 본 츠네오가 빙긋이 웃음을 짓는다.

ⓒ (주)엔케이컨텐츠

  이 달걀말이는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다시마·멸치 우려낸 국물을 넣어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일본식 달걀말이인 ‘다시마키타마고(出汁巻き卵)’이다.


  음식을 만든 여자 이름은 쿠미코, 그렇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 주인공인 ‘조제’라 불리길 원한다.


  집에만 있는 조제에게 행복이란 주워온 책들을 읽는 것이지만 좋아하는 소설 후속편을 구할 수가 없어 그동안 읽지를 못했었다.


  츠네오는 헌책방에서 그 책을 구해주고 할머니를 대신해 유모차를 밀어준다.

ⓒ (주)엔케이컨텐츠

  츠네오에겐 예쁜 여자 친구도 있지만, 어쩐 일인지 조제에게 더 끌린다.


  장애라는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조제 음식 솜씨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조제는 츠네오와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보면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조제에게 호랑이란 두려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 눈길과 세상일지 모른다.


  혼자서는 마주하기가 두렵지만 믿는 누군가가 있다면 충분히 견뎌낼 수가 있다는 뜻일까?


  조제를 돌봐주던 할머니가 죽지만 그 곁에는 츠네오가 있다.


  안타깝게도 둘은 헤어진다.


  츠네오는 자신이 도망쳤다고 했다.

ⓒ (주)엔케이컨텐츠

  츠네오가 올 때면 한 마리 통째로 구웠던 생선도 반 토막으로 줄어들었다.


  투정도 받아줄 상대가 있어야 부린다는 말처럼 조제에게는 투정 받아줄 상대도,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도 없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꿋꿋하게 사는 장애인을 보고 장애를 잘 극복했다고 말한다.


  장애는 극복되지 않는다.


  애써 피하던 눈길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일 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조제가 반가워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이다. 

ⓒ (주)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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