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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ug 21. 2021

나의 결혼 원정기

설렁탕

  국민 보양식이라는 설렁탕.


  뽀얀 국물이 구수한 설렁탕에 잘게 썬 대파를 듬뿍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곰삭은 깍두기와 먹으면 든든함과 함께 잘 먹었다는 기분이 든다.


  설렁탕에 국수가 미리 말아져 나오는데 이는 3공화국 때 쌀 부족 대처법에서 비롯됐다. 

  그때와 달리 쌀이 넘쳐나는 여태껏 그런 까닭은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길들어버린 탓이다.


  사골국에서 느껴지는 고소함이 칼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칼슘은 아무 맛도 없다. 


  사골국 고소함은 지방에서 나는 맛이다.


  사골 국물이 사람에게 그다지 좋지 않다지만 날마다 먹지 않는다면야 그리 문젯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설렁탕에 커피 크림과 전지분유를 넣어 국물을 뽀얗게 보이게 하는 곳도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곰탕과 설렁탕은 보기에도 비슷해 보이는데 곰탕은 고기 부위를 우려낸 국물이고 설렁탕은 사골을 우려낸 국물이다.


  정재영(1970-)은 <킬러들의 수다>란 영화에서 처음 봤다.


  그때는 배우 신현준과 원빈에 가려 그리 기억에 남지는 않았는데 <웰컴 투 동막골>과 이 <나의 결혼 원정기>를 보고는 연기 잘한다는 배우를 안다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해줬다.

ⓒ 튜브픽처스

  장가 못 간 시골 노총각들이 결혼 원정으로 진정한 사랑과 결혼에 관해 되돌아보고자 했다는 이 영화는 한 방송사 인간극장에 나왔던 내용이 동기가 되었다.


  같이 일하는 후배 고향이 경북 예천이라 예천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가 더 살갑게 다가왔다.


  정재영은 농촌 노총각으로 나오는데 이리저리 뻗쳐오른 머리카락에 삐져나온 속옷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 튜브픽처스

  어쩌면 투박한 생김새도 그 역할이 잘 어울리도록 했는지 모른다.


  서른여덟 살 먹도록 장가를 못 간 만택(정재영)과 친구 희철(유준상)은 만택 할아버지 권유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맞선 여행길에 오른다.


  만택과 희철은 현지 고려사람이 하는 맞선업체에서 여자들을 만난다.


  통역을 맡은 커플 매니저 라라(수애)는 탈북자이다.


  맞선업체 사장에게 있는 여권을 찾으려면 이 맞선을 꼭 성사시켜야 한다.

ⓒ 튜브픽처스

  라라는 여자에게 숙맥인 만택에게 우즈베키스탄 인사말부터 맞선 예절까지 특별 개인 교습에 나선다.


  만택은 살갑게 대하는 라라가 맘에 들지만, 속으로만 삼킬 뿐이다.


  그러다 드디어 라라와 단둘이 만나게 되자 설렘에 어쩔 줄 모른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여자와 밥을 먹을 때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에 맞춰준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끌고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설렁탕을 시킨다.


  라라는 비빔밥이다.


  만택은 게걸스럽게도 먹어대며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티를 팍팍 낸다.

ⓒ 튜브픽처스

  좋아하는 여자와 밥을 먹으니 얼마나 떨릴까?


  아마 그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터이다.


  그러다 만택은 슬쩍 라라 마음을 떠보는데 이내 쑥스러워 둘러대기 바쁘다.


  라라 본래이름이 ‘순이’라고 하자 우리 집 개 이름이랑 똑같다는 말이나 해대는 대책 없는 이 남자.


  “라라 씨 얼굴이요. 안 보면 생각나고. 뭐 새, 생각나면 뭐 우, 웃음도 나고. 우, 웃다가 또 괜히 중얼거리고. 또 혼자 쑥스러워지고


  만택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큰 용기를 내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꺼낸다.

ⓒ 튜브픽처스

  라라도 만택이 맘에 들지만, 탈북자라는 현실이 앞을 막는데…….


  다행히 이 영화는 행복하게 끝난다.


  그러지 않았다면 만택에게 그 설렁탕은 두고두고 아련한 음식으로 남았지 않았겠는가.


  이 영화는 결혼하기 어려운 농촌 총각들 사정을 잘 나타내었다.


  어수룩한 농촌 총각들이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농촌 문제 탈북자 문제까지 자연스럽게 고민하게끔 한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자라온 환경이 다르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다른 나라 사람은 말해 뭐할까?


  2020년 다문화가정 가구원 수는 100만 명으로 2050년에는 21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보는 내내 만택이라는 순박한 청년에 끌렸고 첫사랑과 처음 먹었던 음식이 뭐였는지 생각하게 할 만큼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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