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지팡이를 짚고 등이 구부정한 초로의 남자가 걸어간다. 뒤에서 다정하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그윽하다.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뛰어 쫓아간다. 손을 뒤로 살짝 뻗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얼굴을 한 번 마주 보고는 같이 걸어간다. 아이 얼굴에 드러나는 안도감이 진하게 전해진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장면이다. 평소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은 내용을 다 알면서도 거의 무한 반복하듯이 보고 또 보는 버릇이 있다. 여러 번 보는데도 같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뻐근해지고 눈시울이 시리다.
아버지를 이해했고, 감사하고, 서운했던 감정을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도 만화 한 장면에서 눈물이 날까?
다정하게 “아버지!”하고 부르면서 편하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아버지는 나에게 없었다. 아버지는 무섭고 엄격했고, 자식에게 애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같은 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버지가 아랫목에서 덮고 있는 이불 속에 감히 발을 넣지 못했다. 결혼했던 첫째 언니가 친정에 와서 춥다고 아버지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갈 때 윗목에 앉아 있던 나는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들은 ‘잔정’이 없는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 시절 아버지가 다 그렇지 뭐,” 라고 하기엔 동네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호랑이였다.
“여자는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다.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
힘들다고 위로받고자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친정이 아니었다. 내가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자식한테 독했지?’라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내 안에 상처가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전이 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밉거나 서운한 감정을 없애려 애썼다. 됐지 싶다가도 다시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지루하고 더딘 일이었지만, 다행히 어느 정도 노력의 결실을 보았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해방, 전쟁, 가난, 경제개발, 독재 등 생존 자체가 업적인 어려운 시절을 살아냈다.
아버지는 조선시대에 태어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보고 배운 대로 아버지 역할을 하셨을 뿐이다.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키우지 못했지만, 자식을 올곧게 키우셨다.
가난,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 아픔을 견디기도 힘들었을 텐데 일곱 남매 중 한 명도 어딘가로 보내지 않고 키웠으니 감사하다.
감사하지만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단단했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뭔가가 남았다.
일곱 남매는 제사나, 정기 모임 때 만나면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흉을 보면서 가슴에 얹혀 있는 설움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풀어낸다. 잔뜩 짜 놓았던 물감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딱딱하게 말라 붙은 팔레트를 씻으려 물에 담가 놓으면 덩어리진 물감이 물에 조금씩 아주 가늘게 풀어져 나오듯이.
옛말에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라고 했으니, 무서웠던 아버지 흉을 참 잘도 본다.
말로 뱉어내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감정이 많다. 나는 “아버지는 좀 다정하게 대해 주시지!”라고 투덜거리며 남편에게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다.
글로 써서 드러내면 내 안의 감성과 감정이 옅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말로 안 된다면 아버지에 관해서 글로 쓴다면, 내 안에 가라앉아 있는 내가 모르는 단단한 응어리가 옅어질까 하는 생각에 일단 시작해 본다.
아직 모르겠다.
휘리릭 한 번에 정리되면 좋으련만 더디다.
언제쯤 아무렇지 않게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차근히 생각하고 천천히 풀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