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생각
내가 먼저 다가가 아버지 손을 잡지 못했다.
막내딸이 재잘재잘 이야기했다면 충분히 들어주었을 텐데.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에게 먼저 마음을 열지 못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더 어린 시절에 시도했지만 아버지가 무심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 물러났을 수도.
나는 평생, 다정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은 아버지가 서운하고 아쉬웠다.
아버지가 어렵기만 해서 여린 마음에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어린 딸처럼
아버지도 자식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몰랐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어른이니까 어린아이에게, 부모니까 자식에게 먼저 줘야 한다는 틀을 깨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른도, 부모도 내면은 자라지 못한 어린 자식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틀이 있는지 조차 몰랐으니 어찌 깰 수가 있겠는가.
이제야 내 안에 있는 생각의 틀을 알아챘다.
꽁꽁 뭉쳐서 풀어지지 않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는데
결혼생활 27년이 필요했다.
남편은 “나는 당신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오빠요, 동생이요, 남편이니.”라며 내 투정을 받아줬고, 내 안에 채워지지 않았던 사랑을 주었다.
남편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보려 애를 많이 썼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가 서운함, 속상한 마음을 말해보라고 권했지만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직접 이것저것을 에둘러 물어보니 아버지는 불편했는지
"이러려고 왔니?" 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때도 있었다.
넉살 좋은 남편은 웃으며 아버지가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여러 번 만들었다.
덕분에 가장 아프게 깊이 박힌 가시 정도는 뽑을 수 있었지만 내 마음속 응어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제는 혼자서 울퉁불퉁한 마음의 골을 메우고, 솟아난 부분을 깎아서 평평하게 펴야 한다.
시간이 약일 수도 있고, 글을 쓰면서 해 낼 수도 있으리라 믿어본다.
감정을 다듬고 마음을 가꿀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의 큰 효용 중에 하나일 테니.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