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상
아버지는 밥상머리 교육을 착실히 하셨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면 들어라.
밥은 고르게 먹어야지 밥그릇 뒤쪽에서 퍼 먹거나 앞에서만 파먹는 것이 아니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한 손에 들고 밥을 먹지 말아라.
국물을 적당히 먹어가며 먹어라.
밥상 모서리 앉는 것 아니다.
지금 못 먹는 한 끼는 평생 못 챙겨 먹는다.
......
헤아릴 수도 없는 말씀을 하셨다.
밥상 차리는 것도 참견처럼, 잔소리처럼 말씀하셨다.
반찬을 먹을 만큼만 놓아야지 수북이 쌓아 남으면 버린다거나 다시 밥상에 올린다거나 하면 못쓴다.
찬거리를 싹싹 먹어 치우지 말고 조금씩 챙겨 둬야 갑자기 손님이 와도 내놓을 게 있다.
다 먹은 밥상을 두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밥상 치우고 들어오면 드라마는 끝나는데, 밥 숟가락 놓으면 바로 밥상을 물려야 했다.
반찬이 조금이라도 정신 사납게 놓여 있으면 살짝 정리하신 후에 식사를 시작하셨다.
짝이 안 맞는 젓가락은 꿈도 꿀 수 없다.
아버지만 사용하는 밥, 국그릇과 수저 세트가 항상 있었다.
아버지 밥상은 항상 정갈했다.
부잣집은 아니었으니 반찬을 많이 늘어놓고 먹지는 못했지만, 국은 꼭 있어야 했다.
신장이 안 좋아 자극적이지 않고 싱겁게 드시니 고추장, 간장은 기본이요, 고춧가루가 있었다. 마늘도 한 개를 얇게 저며 썰어 놓은 것을 매끼마다 두세 점 꼭 드셨다.
짭조름하게 입맛을 돋우는 양념한 젓갈-새우젓, 조개 젓갈, 황석어 젓갈-, 민물 참게장이 기본 반찬이었다.
첫째 언니는 김장 김치를 썰어 놓을 때도 꼭지에서 두 번째 마디를 예쁘게 놓았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생선 가시, 뼈 등 주변을 정리해서 밥그릇이나 뚜껑에 담아 놓으셨다.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던 우족탕은 주로 아버지만 드시긴 했지만 그다지 먹고 싶은 맛이 아니라서 불만이 없었다. 아버지 밥상은 뭔가 항상 조심스러웠지만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으니 자식과 차등을 두었다는 생각은 없었다.
식구가 많아서 상을 두 개로 차릴 때도 아버지 밥상과 우리 밥상은 차별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 밥상은 뭔가 조심스러웠다.
격식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소식(小食)을 하셨고 식사는 천천히 오래 하셨다. 그런데 뜨거운 국물을 좋아해서 밥을 먹다가도 식은 국을 집안 여자 중 누군가는 중간에 한 번 데워 오기를 자주 했다.
숭늉도 처음부터 준비하고 식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밥그릇이 거의 비워 갈 때쯤 누군가 나가서 따끈한 숭늉을 가져왔다.
밥을 먹다가 국이나 찌개를 데우러 나간다거나, 숭늉을 준비하러 나갈 때는 퍽 귀찮았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뜨거운 국물이 좋다.
내가 식사 도중 국이나 찌개를 다시 데우면서 ‘난 그래도 내가 하잖아. 아버지는 에구.’ 라며 지금도
자연스럽게 불평 한마디를 한다.
아버지의 식습관에 맞추느라 조금은 피곤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나에게 스민 것이 많았다.
불평 속에 좋은 것이 분명 있을 거라던 남편 말이 맞았다.
내 일상에서 먹는 즐거움이 크다.
맛있는 찌개 한 가지만 있어도 밥상이 푸짐해지는 마법이 생긴다.
기본 반찬이 항상 있던 아버지 밥상 탓이다.
반찬이 많이 없어도 뭔가 격식 있게 차리던 아버지 밥상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내가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대충 차려 먹는 일은 없다.
아이들이 대충 반찬통을 꺼내 먹으려고 하면 나는 제대로 접시에 담아 먹으라고 한다.
애들은
“에구! 뒤시럭은. 암튼 엄마는 먹는 데 진심이라니까.”
“어릴 때는 그렇게 그릇 여러 개 꺼내지 말라고 하더니만.” 투덜거리면서도 접시를 꺼내러 간다.
식사가 끝나고 과일이나 커피라도 마시려고 하면 아들이 먼저
"식탁 치우고 과일 먹어요.", "정리하고 커피 마셔요."라고 한다.
싫든 좋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
또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