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衣)

아버지의 멋

by 일신우일신

면 소재지에서 오리(五里) 떨어진 시골에 살았는데도 아버지는 여름이면 이른바 ‘백바지’-흰색 바지-를 입고, ‘백 구두’-하얀색 구두-를 신었다.

모자를 즐겨 착용했는데 퍽 잘 어울렸다. 중절모, 베레모 어떤 모양의 모자를 써도 보기 좋았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면 내에서 ㅇㅇ이 만한 인물이 없지.”라는 평을 들었다.
읍내에서도 통한 멋쟁이였다는 말이 많았다.

사치스러운 비싼 옷을 사들인다거나 여러 벌을 갖춰 놓고 입는 것은 아니었다. 몇 벌 안 되는 옷을 깨끗하게 잘 입고 다니셨다. 제철에 맞게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챙겨 입었다.


세탁, 다림질 등 손질은 엄마 몫이었지만 크게 불만을 표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험하게 옷을 다루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벗은 겉옷은 옷걸이에 걸었고 세탁할 옷은 바로 세탁할 수 있도록 가져가게 했다. 방바닥에 옷이나 양말이 늘어져 있던 적은 없었다.


아침에 논에 물을 대러 나가실 때 작업복도 정갈하게 입고 나갔다.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갈 때도 수건으로 온몸에 묻은 먼지나 티끌을 이리저리 꼼꼼히 털고 들어갔다.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하면서는 선글라스도 필수품이 되었다.
손수건을 항상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다.
나이가 들고 힘에 부쳐서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남들이 '멋쟁이'라고 말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멋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멋쟁이는 무슨! 자식들은 고생만 시켜놓고!"라며 목소리가 높아지고 눈꼬리가 올라갔다. 아버지만 멋쟁이인 것은 자랑이 아니라 속상함이었다.


그런데 찬찬히 되돌아보니 정말 깔끔한 멋쟁이셨다.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 달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자꾸 되돌아본다고 내가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아버지 모습은 자꾸 달라진다.


나에게도 뭔가 변화가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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