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住)

아버지의 화초

by 일신우일신

어릴 적 살던 집은 방 3칸과 부엌이 있는 기와지붕 본채와 부엌, 방 한 칸, 창고로 연결된 슬레이트 지붕 사랑채가 'ㄱ '자 형태로 있었다. 한참 뒤에 사랑채는 창고를 없애고 방을 더 들여 식구가 주로 기거했다. 기와집은 부수고 창고와 커다란 방을 한 칸 들였다. 잠깐 셋째 오빠 신혼방이었다가 후에는 손님방이 되었다.


'ㄱ'가운데에는 마당, 어른 걸음으로 한 폭쯤 될만한 화단이 있다. 화단이 집 구조를 'ㅋ' 비슷한 모양을 만들었다. 화단 너머에는 남새밭이 있었다. 밭에 배추, 무, 부추, 가지, 마늘, 파 등 계절마다 다른 채소를 심었다. 반찬거리 채소를 직접 키워 먹었다.
김장배추, 무를 심으면 아침마다 물을 주는 일은 아버지가 했다.

화단을 없애고 밭을 만들면 더 많은 채소를 심을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화단을 그냥 두었다. 붓꽃, 봉숭아, 채송화가 피고 회양목이 심겨 있었다. 처음 보는 바나나 나무를 심던 날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바나나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를 했지만 고드름 열리는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어느 해에는 어린 동백나무가 심어졌다. 작은 내 키만하던 동백이 슬레이트 지붕보다 더 높이 자랐다.

가을이면 내 얼굴보다 큰 꽃이 핀 국화 화분이 들어왔다.
내 키보다 더 자란 백년초 닮은 선인장, 풍선을 커다랗게 부풀린 것 같은 선인장도 있었다.
큰 선인장이다 보니 가시도 뾰족하고 단단했다. 괜스레 건드려서 손에 찔리고 무심코 지나가다 가시에 몸이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화분은 초겨울에 실내로 들어왔다가 봄이 되면 마당으로 나갔다.
커다란 화분에 파를 심어 겨울 동안 윗부분을 잘라 요리에 사용하기도 했다.
가끔 물을 주라고 하면 줬던 기억은 있지만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관리했던 모양이다.


한 번도 화초를 돌보는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밭을 돌보고, 물을 줬지만, 그냥 ‘일’이었다.
화단을 밭으로 바꾸지 않았고, 종종 정원수를 사다 심고,

날씨가 추워지면 화분을 실내로 들이는 아버지였다는 것을 처음 되돌아봤다.
화단에 항상 꽃이 있었고 가끔은 특이한 정원수를 심고, 국화 화분이 가을마다 있었는데 아버지 취향이라고 연결하지 않았다.
화초를 조금이라도 마당과 집안에 두었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살면서도 갖고 있던 마음에 여유라고 해야 하나, 낭만이라고 해야 하나.
아버지가 그런 남자였구나!

어느 시절부터 화단이 황폐해지고 실내에 화분 개수가 줄었고 결국 한 개도 남지 않았다.

조금이라고 관리를 시킬 자식이 집에 없고 늙으신 아버지가 본인 몸을 움직이는, 그것조차 힘에 부치면서였을 것이다. 가끔씩 집에 가면 보이던 변화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화초뿐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돌보는 일, 아버지 신변에 세밀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정하지 않아서 서운하다고 말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도 아버지를 세심하게 살뜰히 챙기는 딸은 아니었다.

딸로서 도리는 한다고 했지만 정스럽게 다가가지 못했다.

서로 도리는 하지만 정이 없는 아버지와 딸, 그런 부녀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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