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校)

그냥 푸념...

by 일신우일신

아버지는 중·고등학교 수업료는 내주었다. 하지만 기타 비용을 타서 쓰는 일이 아주 어려웠다.

돈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 "없다."라고 하고는 방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아침에 논에 가서 등교시간이 다 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질 않는 날이 많았다.

학교에서 필요한 책, 준비물, 등하교 차표 등을 사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매번 말 꺼내기가 어려웠다.

충족되지 않는 결핍은 불만과 의기소침으로 단층처럼 마음에 쌓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난 인문계를 아버지는 실업계를 원했다.

"오빠 둘은 ㅇㅇ시까지 고등학교 보내주셨잖아요."

"여자가 배워서 뭐 한다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아버지였다.

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아버지를 설득했고 인문계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담임선생님이 아슬아슬한 점수를 확인하고자 고등학교 교무실까지 찾아갔지만 장학금 받기는 실패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정해졌으니 자연스럽게 입학을 했다.


아버지에게 막내딸의 대학입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 간다고 했을 때 "오빠도 안가 대학을 네가?"라며 반대했다.

입시철이 되면 텔레비전을 보면서

"공부할 놈만 대학을 보내야지 왜 개나 소나 다 보내려고 저런다니. 빚까지 내서 대학을 왜 보내는지 원!

개인은 물론 국가적 낭비다, 낭비."라는 말을 자주 했다. 아버지가 갖고 있는 학교에 관한 확실한 생각 중 하나였다.

난 대학에 가서 공부할 놈이 아니라 개나 소 정도 실력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내내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받은 가외 지원과 허락된 추가 시간은 없었다.


진학 상담 때 대학을 갈 수 없다고 사정을 말했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공부하라던 담임 선생님이 대학 입학 전형료를 대신 내줬다. 대학교에 직접 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멀어서 같은 대학교를 지원한 학생은 주변 여관에서 단체 숙박을 했었다. 숙박비도 선생님이 대납했다.

후에 셋째 오빠가 사정을 듣고 갚아줬다.


대학에 합격하고 입학금만 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매달리다시피 부탁했지만 "난 모른다."라며 아버지는 휑 가버렸다.

멀어지는 아버지 등을 쳐다보고는 벽에 기대 서서 한참을 발끝으로 땅만 찼다. 눈물이 절로 떨어졌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맵다.

나는 학교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마련했고 언니, 오빠 도움으로 입학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풍족하든 부족하든 고등학교까지 가르쳤으니 아버지한테 감사해야 했다.

아버지는 반대를 했지만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더욱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지원받지 못한 어려움과 서운함이 더 커서 오랜 시간 감사하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쌓인 서운함이 녹아내리는 데는 쌓인 시간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몸만 자랐지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내가 늦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아버지는 본인이 가진 가치관에 맞게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언니, 오빠도 못 간 대학을 졸업했으니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젠 불평이라기 보단 푸념으로 바뀌었다.

나는 막내로 태어나서 형제 중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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