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교육관
첫째 오빠와 사촌오빠들은 한학에 능통해서 한문을 읽고 쓰는 일에 능숙했다.
다들 '머리 좋다. 똑똑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왜 가르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아버지의 오 형제는 유난히 자식에게 정규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딸은 가르치지 않는 시대라 그러려니 해도 아들까지는 왜 그랬을까?
가난한 시절이라서 그랬으려니 막연히 생각했다.
둘째 오빠와 전화통화를 했다.
"아버지가 오빠한테는 기대가 좀 있었지?"
"그랬지. 기대는 있었지만 지원은 없었지."
그리고 들려준 이야기로 의구심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아버지는 물론 큰아버지 모두 신교육에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단다.
한학을 배운 어르신들은 양학-일본 놈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가르칠 생각이 없었던 거였다.
특히 첫째, 셋째 큰아버지가 아주 강하게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었단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터울이 많은 두 형 밑에서 배우고 자란 아버지도 똑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첫째 큰아버지는 훈장님이었다.
서당을 운영해서 나도 국민학교 저학년 방학에 두 번 큰댁에 가서 천자문을 배웠다.
다른 곳은 흔쾌히 보내주지 않던 아버지가 서당에 보내줘서 의아했었다.
아버지는 자의가 아닌 징용 때문에 일본에도 다녀오고 사업을 한다고 외지를 다니면서 신문물을 받아들여 형들보다는 개화했던 거였다.
그나마 신문물을 접한 막내라서 그랬는지 아버지는 기꺼이는 아니지만 자식을 학교에 보냈다.
지원이 없다시피 했지만 둘째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경제적 지원은 한 푼도 없었지만 대학에 간다는 막내딸의 고집을 꺽지 않았다.
나이터울 많은 형들과 세대차이가 있었다.
주변 다른 부모만큼 열성적인 교육열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아버지 형제 중에서는 가장 많은 교육열을 보여 줬다.
아버지의 최선이었다.
아버지는 한학을 배웠지만 형제 중 유일하게 신학문으로 진일보했다.
요즘 시대를 사는 남편이나 아버지가 본인의 아버지를 기준으로 보면 훨씬 자상한 아빠, 가정적인 남편이다. 그런데도 아내, 자식이 불만을 갖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아버지도 자식이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언제나 자식 앞에서 당당하던 아버지였다.
자신이 젖어 살던 환경에서 얻은 가치관, 인식을 바꾸는 일이 낙숫물로 바위 뚫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안다. 스스로 생각해서 바꾸든 경험으로 얻은 지혜로 바꾸든 스스로 깬다는 것은 숲 안에서 숲의 모습을 그리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학교에 관해서 나에게 구두쇠처럼 굴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