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母)

아버지도

by 일신우일신

“니그 아버지가 얼굴이며, 풍채며 꼭 할아버지 탁했다. 어째 팔자까지 닮았는지. 원.”

아버지의 누나인 고모가 종종 하던 말이다.

또 다른 고모는 “오래전에 스님이 시주받으러 왔는데 어린 니그 아버지 보고는

“그 녀석 사모관대 네 번은 쓰겠구나!” 했었다. 그 말대로 돼버렸다.”

팔자니 관상이니 지나고 나서 결과를 놓고 보니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일 테니.


아버지도 어머니가 셋이다.

할머니를 본 적은 없다. 첫째 큰집에서 제사를 세 번 지내니 세 분인 줄 알았다.

첫 번째 할머니는 딸을 둘 낳고 세상을 떠났다. 고모 둘은 족보에 밀양 박 씨 아무개라고 적힌 고모부 이름을 보고 존재를 알았고, 밀양 박 씨 집안으로 시집간 것도 알았다. 집안 족보에 딸의 이름이 아닌 사위를 올리는 남자를 우선으로 여기던 조선시대 규칙을 따랐다.


두 번째 할머니는 딸 둘 있는 홀아비에게 처녀시집을 왔다. 새색시 시절에 수염이 가슴팍까지 길게 늘어진 할아버지가 어렵고 무서워서 얼굴을 들어 눈을 맞추지도 못했다. 금슬은 좋았는지 3남 5녀를 낳았다. 고모들의 얼굴, 성품을 모아서 생각해 보면 둥글둥글한 얼굴에 수더분한, 너그럽고 인자한 할머니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엄부자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랐겠구나.’라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작은 집을 뒀다. 작은 부인에게서 2남 2녀를 얻었다. 둘째, 넷째 큰아버지가 작은 할머니 소생이다. 두 큰아버지 얼굴에서 작은 할머니를 그려보면 고양이상이거나 족제비상이었을 것이다. 성격이 괴팍해서 할아버지가 집에 자주 들르지 않으면 본처 집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본부인은 “에구 독한 것!” 하면서 피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다른 형제는 일정 기간 왕래 없이 지냈다. 형제가 모른 척하고 지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나의 부모님의 주선으로 한 동네에 모여 살게 되었다. 고모 둘은 만난 기억이 없다. 친정이라고 찾아왔어도 둘째, 넷째 큰집에 가지 우리 집에 오질 않았을 것이다. 애경사에 만났다고 해도 어린 여자아이에게 친척을 한 명 한 명씩 인사시키고 설명해 줄 여력을 가진 어른이 없었다.


효자, 효녀인 자식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티끌만 한 불평, 불만스러운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해 뭐라 불평하면 “어라? 어찌 그런 말을 한다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데.”라며 말을 막았다.


여복 많은 할아버지를 둔 아버지는 어머니가 셋이었다. 아버지는 부인이 넷이고, 자연스럽게 칠 남매는 어머니가 넷이다. 어머니 많은 아버지 팔자를 닮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뭔 팔자타령이냐 싶지만 너무나 비슷하다. 뭐가 이리 얽히고설킨 내림인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인 푸념이다. 그렇지만 오빠 셋은 아버지의 아내 많은 팔자를 닮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아버지는 나와 다르게 어머니가 많은 것 때문에 마음에 맺힌 매듭이 없어 보였다.

생각, 감정, 상처도 각자의 선택, 각자의 몫이다.

마음의 깊이와 넓이가 다르니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크기의 상처를 입는다.

아버지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때까지 할머니가 살아계셨다.

나와 아버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거친 바람을 맨몸으로 오롯이 맞는 어린 새싹이 찢기며 할퀴어 상처 입듯이 바람 막아줄 엄마 없이 자라는 어린 자식이 입는 상처를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잔정 없던 아버지도 조금씩 이해가 된다.

나 아닌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참으로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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