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맞선 알베르 카뮈 <이방인>, <시지프 신화> 를 읽고
알베르 카뮈 의 대표작 이방인을 읽었다.
민음사의 디 에센셜 시리즈를 통해 만난 이 작품은 묘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나 『시지프 신화』를 두 번 필사하면서,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부조리’라는 개념이 『이방인』 속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엄마가 죽었다. 오늘인가, 어제인가.
이 단 한 줄로 시작하는 『이방인』은 이미 독자의 정서를 뒤흔든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마치 타인의 삶처럼 그저 덥다고 말할 뿐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 좌절, 우울감은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보여지지 않는다.
다음 날, 그는 마리를 만나 웃고, 사랑은 없지만 데이트를 하고 관계를 맺는다.
마리의 '결혼할거야?' 라는 물음에,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문제 없다. 하지만 사랑하냐 묻는다면 나는 정확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 대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를 드러낸다.
읽을 수록
뫼르소, 그는 누구인가?
그는 무기력한 사람인가?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일까?
그는 사회적 기대에도 반응하지 않고, 삶은 결국 그게 그거라며 덤덤히 받아들인다. 또한 '설명하려 했지만, 귀찮아져서 포기해버렸다.'는 글들이 <이방인>에 종종 등장한다.
... 사장은 내게 삶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이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디 에센셜_알베르 카뮈>_이방인 중
...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그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게 결국은 별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나는 귀찮아서 그러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디 에센셜_알베르 카뮈>_이방인 중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 묘사로 나는 그가 무기력한가, 귀찮은가, 혹은 너무나 담담하다 등 뫼르소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살인"이라는 행위가 벌어지며 나는 빠르게 그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서 즐거워하는
어떤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남아도는 존재라는,
좀 불청객 같다는 기묘한 느낌 또한 납득이 되었다.
<디 에센셜_알베르 카뮈>_이방인 중
제목 <이방인> 처럼, 그는 그가 속한 사회, 더 넓게는 이 세계에서 뫼르소는 철저한 "이방인" 이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그는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않았다. 덤덤했다.
'왜 이방인인가, 이 글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도대체 무얼 알려주고 싶은걸까.'란 의문이 점점 해소되면서 마지막에 이르서는, 알베르 카뮈의 다른 글 <시지프 신화>와 연결된 주제,
바로 "부조리" 에 대한 "저항"과 "죽음", "삶"에 대한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 집행 전 날. 사제가 뫼르소를 찾아 온다.
사제는 뫼르소에게 왜 신에게 회개하지 않느냐고, 신의 자식으로 남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뫼르소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라며 덤덤하게 모든 의미를 부정하며 말한다.
사제의 끈질긴 "믿고 회개하라" 의 말에 뫼르소는 결국.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 분노를 폭발시킨다.
사제의 멱살을 잡으면서,
나는 그것이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라는 말을 하면서 뫼르소는 스스로 깨닫게 된다.
신이 있어도 없고 삶이 의미 있어도, 무의미해도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죽음의 끝,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다.
이 사실을 받자 뫼르소는 평온해진다.
자유와 저항을 받아들인 뫼르소는 행복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시지프 신화>와의 연결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말한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갈망하지만, 세계는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이 충돌에서 오는 감정이 바로 부조리 이다.
소설 <이방인> 에서 사제와 뫼르소의 대화는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의 키르케고르가 "부조리"를 받아들인 태도를 설명한다.
키르케고르는 삶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 봤다.
하지만 부조리와 불합리를 견디기 위해 뫼르소와 달리 그는 신앙을 선택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신을 믿는다.
바로 <이방인>에 나오는 사제의 모습이다.
신에게 회개함으로써 불합리와 부조리를 신에게 맡긴다.
하지만 뫼르소는 끝까지 이를 거부하면서 세계, 신, 그 어느 것에도,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이 세계에 대한 부조리를 받아들인다.
카뮈의 대변인 뫼르소는, 삶에 본질적인 의미는 없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자유이자 저항이란 것을 보여줬다.
눈 앞의 죽음을 앞둔 그 순간 뫼르소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통해 알베르 카뮈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은 의미를 주지 않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가 인간의 자유이자 저항. 이다.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결론은,
뫼르소는 '이방인' 이었지만 부조리에 무너지는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껴안은 인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