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세운다는 것, 그리고 팽창해 터질 것 같은 20대에 대해
이번 연도 6월 초, 응급실을 찾았던 밤이 있었다.
자취방 화장실에서, 변기 앞에 주저앉아, 깨질 것 같은 머리와 뒤집어질 것 같은 속을 쥐어 잡고 있었다.
정말 죽을 것 같던 상태에, 태어나 처음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인가?
이 질문에 생각난 것은, 브라질과 멕시코, 그리고 유럽이었다.
최근에 브라질에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내가 2학기에 돈을 모아 꼭 브라질에 가겠다는 , 같이 가서 별도 보고 또 이야기 많이 하자는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럽을 가보지 못했던 것도 아른거리며 눈앞에 세계지도가 넘실거렸다.
25년도 3월, 그리고 4월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6년 동안 하며, 그리고 대학교, 수험생활, 대학원, 5번 이상의 이사들을 거치며
좁은 방, 좁은 화장실, 그리고 바닥을 보이는 잔고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응급실을 찾아가면서도 답답했고 처절했던 마음 중 하나는, 내가 돌아올 집이었다.
내가 선택했고, 물론 다른 이점 (다른 나라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보고 입주한 것이었지만, 응급실을 거쳐 다시 돌아가게 될 집이 그날따라 유난히 초라하고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3-5월간 책을 읽고, 강연을 다니고,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돈에 대해 조금은, 아니면 많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 화장실 바닥에서 느꼈던 가장 큰 떠오름은 '해외경험'이었다.
돈이 아닌, 안정된 생활이 아닌, 더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이 섞어 다 하고 싶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우선순위가 정해진 것 같았다.
대학교 입학 후 100권 이상의 책, 그리고 20개 이상의 대외활동, 봉사 등 여러 경험을 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잘했다고 느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졸업 후 한 달간 갔던 호주 어학연수, 홈스테이였던 것 같다.
작년 1월에 일본에 홈스테이를 갔다 온 후로 홈스테이는 하루라도 가장 어렸을 때 하는 게 좋겠다, 좋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대학교 졸업 후에는 영어를 쓰는 나라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한가득 가지고 미국, 호주 중 고민하다가 호주로 떠났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동안, 홈스테이 생활과 어학연수(어학원)를 병행하면서 정말 행복감,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때는 둘 다 영어실력이 많이 늘어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자'라고 약속을 하고
멕시코 친구와 한국의 자살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멕시코 친구의 남다른 영어 작문 실력을 보며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멕시코라는 나라가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스페인어 이북을 보며 스페인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스페인어 실력을 늘려 그 친구와 스페인어로 능통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기도 했다.
남미 친구들의 친근함, 좋은 성격들을 보며 더 만나고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고 -
" 경험은 이어지고 이어진다 "
멜버른에서 만났던 남미 친구들, 그리고 호주에서 돌아와 셰어하우스에서 만났던 브라질 친구,
왠지 모를 끌림, 그리고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유통과 물류,
전자공학과에서 경영학과로,
노무사 수험에서 언론 대학원으로,
호주에서 멕시코로, 한국에서 브라질로,
이동한 장소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했던 경험들이, 생각이 되고 또 경험으로 이어진다.
->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 무역, 유통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 -> 그래서 지금은 서울이 아닌 곳에서 4주간의 해외조달, 영업, 수출에 관한 교육과정을 듣는 중이고
-> 멕시코 실무 (스페인어, 엑셀 등) 과정을 8월까지 신청할 예정이고, 이 과정에 합격하게 된다면 9월부터 공부를 한 후 1월에 멕시코에 가게 될 것이다.
(신청할 수 있는 총 3개의 과정이 있는데, 나머지 두 개는 내년 2월 중 모집 예정이다. 하지만 한 과정의 협회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프로그램이 진행하는 방식을 이번에 파악했기에 내년에 희망한다면 무조건 합격할 것 같다. 스페인어 공부 열심히 해둬야지, )
-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는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나라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북미에다가, 남미에 접근이 비교적 쉬운 미국 인턴십을 알아보고 있었으나 미국인턴십을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취업비자 발급 기준이 높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에 조금 우선순위를 내렸다.
-> 그래서 남미와 미국에 가려면.. 우선 호주에 가서 돈을 모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호주는 이전에 한 군데 가본 적이 있고, 무조건 20대가 끝나기 전에 호주는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워홀이던, 취업이던, 인턴십이던.)
우선 뉴질랜드 인턴십 세 개에 지원했다. 세 과정 모두 유통 또는 무역과 관련되어 있기에 모두 흥미로운 과정이었고, 만약 합격한다면 뉴질랜드에서 돈도 모으며, 영어 실력을 더욱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멕시코와 뉴질랜드를 생각하고 있고 준비를 차근히 해둔 중에, 어제 교육과정을 같이 듣는 한 언니가 한 기관을 통해 아프리카 한 나라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프리카의 우간다, 르완다,라는 나라는 어떤 세계일까.
그 속에서 언니는 어떨까, 언니의 1년 뒤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기대됐다.
퇴사 후 아프리카로 개발협력 봉사를 가는 A.
20대 인도 경험 후, 여러 철강 기업의 해외영업을 거쳐, 무역회사를 차리고 독립해 일하시는 B.
미국 교환학생 후, 국내에서도 여러 영어 스터디, 모임장, 공부를 즐겨하는 C.
브라질어 학과를 나와 브라질에서 1년 교환학생, 그리고 멕시코 여행을 갔었던 D. + 신나게 남미 이야기를 하니 다가왔던 멕시코에 2달 동안 갔었던 E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나도 개성을 가지고, 독특한. 그리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니가 말해주던 말들
정말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나처럼 퇴사하고 하게 된다-
00 이도 이 활동 잘 어울릴 것 같다, 여러 나라가 있더라 도와줄 수 있는 거 다 도와줄게 한번 공고 봐봐-
그렇게 한 나라가 또 추가됐다.
브라질 옆에 있는 한 나라, 파라과이
20대의 모든 건, '확실'한 것이 없다.
교육과정을 듣기 위해 열심히 지원하고, 선발되어서 왔던 멋진 친구들도
교육과정을 들으면서도, 여러 공고에 지원하고, 지원하고, 지원한다.
나도 다른 과정의 자기소개서, 지원서를 또 작성하며 잠깐 환기 겸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면, 또 지원서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이 보인다.
'20대의 혼란함, 불확실함은 당연하다'
최근에 봤던 마음에 다가온 글이 있었다.
"중요한 건 그렇게 끊임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거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금보다 수만 번 더 고민하고 공부해 봐.
너만의 기준들이 생겨서 그것이 너를 지지하는 기둥이 되고,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나뭇가지와 잎이 되고,
지혜라는 열매가 열리고, 나중에 바라보면 독특한 너라는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되어있는 걸 보게 될 거야.
.
.
그리고 가벼운 위로 같은 말이 아니라, 너라는 나무는 단 하나야, 독특한 개체야. 모든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이야. 네가 가진 유전자의 독특한 조합 자라온 환경, 느낀 경험들, 배우고 공부한 것들. 이 모든 게 똑같은 개체는 존재하지 않아.
스스로가 주체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해. 발버둥 치는 게 힘들다고? 그렇지. 매우 힘이 들겠지. 그러나 발버둥 치지 않아서 삶이 힘들어지는 게 훨씬 더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해. “
3년 전, 전과를 고민하며, 수험을 준비하며, 새겼던 생각이 있다.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아도 3년 뒤, 5년 뒤 이 선택을 할 것 같다는 확신. 그 생각.
그 생각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선택들에 대한 용기를 줬었던 것 같다.
아픈 후에 알게 됐다. 내가 지금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그리고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홈스테이를 갔다 온 후에 더 느꼈다. 외국에 나가서도 나 자체로 존재하며, 실제 실력을 쌓고 싶다는 것
29살까지 3년간, 영어와 스페인어 실력을 상급으로 올리고 싶다.
그리고 무조건 첫인상을 결정하는 외면 관리 또한!
멕시코, 그리고 뉴질랜드, 파라과이, 브라질.
어떤 나라가 우선될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건, 그리고 실력을 늘리는 건 내 행동에 달렸고 가능한 일이다.
최근의 한 토스 대표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깊게 공감을 했던 구절이 있었다.
"
아내는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그들이 원하지 않는 어떤 것, 그들이 반강제적으로 노출돼서
그것을 추구하는 되는 걸 원치 않아요.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들에, 주변 환경에 의해서
그걸 원하기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는 거죠.
가능하면 20살 전에 또는 사회 초년생이 되기 전에
그들이 지속가능하게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길 바라거든요.
그러려면 지금 어떤 공부나 학습이라는, 어떤 정보가 많이 주어지는 것보다
그들이 좀 더 탐험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
이것저것, 이곳저곳, 내가 있는 환경을,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며 깊게 느꼈던 것이 있다.
'내가 이상하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게 맞는 거구나'
전자공학과에서는 홀로 '사회공헌', '용기'의 가치를 외치는 내가 외딴섬 같았다.
하지만 경영학과로 가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언론으로 가니 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가서 '해외', '수출', '판매'를 외치던 나는 또 미묘한 다름을 인지했고, 대학원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아픈 날 이후 사실이지만 다시 뼈저리게 느꼈던 것.
내 몸뚱이, 내 인생은 내 것이고 인생은 1인칭이라는 것. 후회도, 선택도, 경험도. 모든 것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 무조건 내 책임이라는 것.
이런 생각을 하면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해지고, 내 책임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한 문장 더 공부하게 되고, 단어하나를 더 보게 된다. 그리고 재태크와 영상 공부도 하게 된다.
물론 이 생각이 철없는 생각일 수도,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20대에 받는 벌(?, 당연함이 '불확실함'이라면 이걸 역으로, 도구로 이용해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