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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창규 Nov 18. 2020

병마와 자살의 충동에서 인생의 스승을 만나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니 죽음의 공포가 삶의 원동력이 되

대학 생활을 하던 80년대 초반

남들이 보기에는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로 얼굴도 그런대로 생겨서 고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스스로는 항상 힘들고 괴로웠다. 인생의 성공이나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거창한 생각보다는

건강과 고등학교 하고는 차원이 다른 대학 공부, 장래 진로 등 갈등과 생각의 혼란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몸도 마음도 허약해서 밥 먹을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사람을 만나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병원에도 가곤 했지만 특별히 병명이나 이유도 없었고 나 스스로는 너무 살아가기가 힘들어서 병마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면서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성당이나 교회도 찾아보았지만 가정의 분위기상 불교에 더 빠져 들었고, 당시 종정으로 취임하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로다”라는 설법과 8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앉아서만 수행하셔서 더욱 유명해진 해인사 백련암 성철 스님을 친견하러 다니곤 했다, 첫 번째 인생 스승이셨다 


도인을 뵙는다는 설레 임과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정으로 해인사행 버스에 몸을 싣곤 하였는데 

성철 스님은 3000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 주시지 않아서 가기 전부터 3000배의 압박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밤새 5~6시간 쉬지 않고 해야 3000배를 할 수 있었는데 하고 나면 성취감과 기쁨이 있었지만 쉽지는 않은 결정이다. 스님을 친견할 때면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빛나는 스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래도 도인은 나의 모든 인생의 고뇌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결국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성철 스님한테 받은 법명은 바르게 깨달으라는 정각 공안, 화두는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말하시길 삼 서근이라 하였으니, 어째서 부처를 물었는데 삼 서근이라 하였는가?”였다, 나 자신을 움직이는 주인공을 참구하고 스스로 깨달으라는 숙제를 받고 온 것이다 


이렇게 가야산 합천 해인사에 정을 붙이고 다니다 보니 성철 스님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가끔은 성철 스님이 외출하고 안 계실 때도 있었다. 이때는 모든 일가족이 출가해서 유명하신 지족암에 일타 스님도 친견을 하고 싶어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스님은 인상이 자상하시고 3000배를 안 해도 쉽게 만나 주시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2번째 인생 스승이시다 

그런 스님을 몇 번 뵙고 공부도 하였지만 스님을 깊게 알 수는 없었는데 정찬주 선생님께서 인연이라는 책으로 스님 일대기를 편찬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고 열심히 읽어 보았다 


스님의 가족분들은 할머니가 열심히 불심으로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셨을 때 1주일 이상 빛을 발하시는 방광을 하시는 기적을 보이셔서 41명의 일가친척과 스님도 감동을 받아 출가하신 인연이나 일타 누님 스님이 열반하셨을 때는 직접 49재를 지내셨는데 재 마지막 날 누님은 미국에 있는 신도 집에 다시 태어나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미국 신도 한태 전화가 와서 누님 스님이 배로 들어오시는 태몽을 하시고 아기를 잉태하였다는 일화 등이 신기하게 남아 있다. 스님 스스로도 미국 사람을 좋아하셔서 미국에 다시 태어나셔서 성인이 된 다음 해인사로 다시 오셔서 출가하신다는 예언도 하셨는데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스님의 가장 큰 공부 이야기는 오대산에서 손을 불태우시는 연지 공양인데 

금강신 문의 배희정 기자님이 기사로 책을 소개하신 내용이 있으셔서 올려본다 


"새벽 1시쯤이었다. 일타는 칠흑 같은 세상에 불을 켜는 심정으로 성냥을 그어 자신의 손에 붙였다. 

곧 붕대를 감은 손가락이 어둠을 밝히는 등처럼 활활 타올랐다. 일타는 신심의 불꽃이 욕망과 집착과 삼 독을 붙잡아온 손가락을 태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네 손가락을 불사를 정도로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걸은 일타(日陀·1929~1999) 스님.  또 연비 한 오른손에서 생사리가 나오는 이적, 7일 기도 중 빛을 발하는 방광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타 스님의 면모를 다루고 있다. 이후 태백산 도솔암에서 6년 동안 한순간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선방을 떠나지 않는 동구불출(洞口不出)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의 모습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깨달음에 대한 간절한 소망, 여유와 이해, 용서의 미덕과 마주칠 수 있다. 파계한 제자를 용서해 승적을 유지케 하고 자신에게 보시한 산삼을 아픈 제자에게 돌려보내는 모습은 그의 ‘자비’ 행각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타 스님은 한없이 자비로웠던 관음보살이셨다”며 

스님을 소개하고 있는데 매일매일 남 탓만 하고 시기 질투가 사로잡고 있는 현대인에게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도 남도 같이 공부하고 탁마 하면서 큰 스님의 지혜도 배우고 우리의 구도심도 같이 전하면서

서로서로 차별 없는 지혜의 길로 들어서기를 기대해 본다. 혼자 살 수 없듯이 공부도 서로 탁마 하며 같이 해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남이 알려 주기도 하고 내공 부도 같이 회양해야 한다 

마음이 부처라는 부처님의 정도를 걸으면서...

하루에도 수백 번 변하는 이 마음의 본체는 무엇인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 이러한 물음으로 관조하면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3번째 인생 스승은 지금도 가르침을 주고 있는 수덕사 방장 이셨던 혜암 스님이다               

혜암 큰 스님을 친견한 것은 1983년 경이다. 시골길에 몇 시간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수덕사에 도착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몸도 약하고 사는 게 힘들어서 방황하고 나름대로 참선을 한다고 제방의 큰스님을 찾아뵙고 공부를 하던 시절이다. 해인사 성철 스님과 일타 스님에게도 도움을 받았지만 가르침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계속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러던 중에 조계사에서 절도하고 참선도 하면서 다닐 때 게시판에 붙어 있는 불교 신문에 광화문 사거리에 염화 선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에 찾아간 곳이 신농 백초 한의원의 금오 김 홍경 선생님이시다. 금오 선생님의 소개로 혜암 스님을 친견하면서 받은 공안이 수미산 화두인데 

운문 선사가 이르기를 “한 생각이 일어나면 죄가 일어난다”하니 수좌 스님이 묻기를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하니 “수미산” 하셨는데 “왜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죄가 수미산 같이 크다고 하셨는가?”가 수미산 공안이다. 지금도 공들이면서 이 한 생각을 살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혜암 큰 스님의 은혜를 잊으랴? 큰 스님의 저서인 선관 법요 중에 우리 대중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 글이 있어서 옮겨 놓는다

" 우리가 공부할 때 "내가 무엇을 했거니"하는 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상이 일어날 때 그것을 없애야 하는데 그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의심으로 반성하면 되는 것이다. 따로 방법을 내면 분별이 되지만 의심을 일으키면 그대로 소멸되는 것이다. 또 세상에서 가장 깊은 애정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애정은 생전에는 좋은 것 같지마는 죽은 뒤에는 원수와 같이 되는 것이니,

지옥에서 만나더라도 서로 죽이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락 국에서 만나 살 수 있는가?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애정이 일어날 때에는 우리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혹은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마음으로 반조하면 그 보살이나 부처님 은덕이 그에게 자연히 내리는 것이니 이것이 가장 사랑하는 마음이요 그를 위하는 길이다. 우리에게 맺어진 인연이란 영사막에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과 같이 허무한 것임을 깨달어야 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할 때 생사의 고통과 번뇌 망상이 영겁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할 때 그 몸뚱어리를 위하고 사랑하면 그것은 허망한 것이다. 이 몸뚱어리는 죽은 송장과 다름없는 것이다. 참으로 위하고 사랑해야 할 것은 "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 한 물건

또 어머님하고 부르면 오냐 하고 대답하는 그 한 물건이다. 그 한 물건을 위해야 참으로 잘 위하고 잘 효도를 하는 것이다. 돈과 명에 권력 여자 모든 것을 다 가져봐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 잠깐 달콤할 수 있지만 주위를 돌아봐라 독약과 같은 것이다

간절히 이 뭐고? 하고 참구 할 때 이 독약도 감로수가 되는 것이다


이 시대를 방황하는 모든 이에게 같이 공부하고 참구 하면서 진정한 나를 찾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혜암 선사의 선관 법요를 보면 생사윤회 이야기도 나온다

너무 생생하고 실감이 나서 소개하고 싶어서 이것도 옮겨 본다


전라도 고창군 화암사 의상암 조 실이셨던 강동구 스님은 2번이나 죽었다 다시 살아오신 분이다

한 번은 젊었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더니

목탁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다시 돌아와서 보니 죽었다고 손 발을 묶어 나서

"나는 이미 회생은 하였으나 앞으로 살아날 희망이 없는 사람이니 제발 목탁을 치지 말라"라고 하고 얼마 후 다시 숨을 거두었다


두 번째 사망해서도 다시 그 창문으로 나갔더니 그때는 목탁 소리는 없었으나 시끄러운 소리는 여전하였다

그래서 그 문과 뜰을 지나 한참 지나갔는데 한 사람이 와서 인도를 하였다

그 사람을 따라 얼마를 가니 멀리 광채가 빛나고 웅장한 궁전이 보이는데 순전히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적멸 보궁이라 하니,

기쁜 마음으로 친견하고 싶다고 하였으나 아직 친견할 인연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래도 내가 일생에 대승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니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가자고 해서 서역에서 왔다는 그 사람의 안내를 받고 가고 있었다. 그때 벽력같이 "이놈"하고 소리를 지르는 소리에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웬 노장이 주장자를 치켜들고 쫓아오며 이놈 어디를 가느냐? 

"당장 이리 오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다시 노장 스님을 모셔드리고 와야겠다고 

다시 돌아오니 같은 길로 오게 되었고 죽었던 방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3일이 경과된 것이었다 그런데 시체가 움직이고 눈을 뜨니 모두 경악할 노릇이었다. 이로부터 몸에 심한 통증이 있었고 3일이 지난 다음부터는 기력도 회복하고 말을 할 수 있어서

어떤 일인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라 해서 이야기를 하니 한 노장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까치 새끼를 면하지 못할 뻔하였구나 하시면서 그 순금으로 된 적멸보궁이 바로 까치집이 느라 하시면서 앞 고목나무에 가서 까치집을 한번 확인해 보고 오라 하셨다. 가서 보았더니 까치 새끼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생사윤회 이야기는 너무 실감 나고 생생해서 30년 전에 들을 이야기이지만 다시 한번 소개한다


이와 같이 색깔과 소리에 현혹되면 생사윤회를 벗어 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색깔과 소리를 깨달어 얻어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에 혜암 조실 스님은 저승문처 친답착 하라, 

즉 네가 묻는 곳을 몸소 밟아 이르러 보아라 하시고

황학루 앞에서 옥피리를 부나니

강성 땅 오월에 매화가 떨어진다고 하셨으니 

옥피리와 매화를 가릴 줄 아는 자이면 참으로 귀한 존재가 된다고 하셨다


이 친절하신 말씀을 잘 참구 해 볼일이다


지금도 수많은 축생과 업보를 가지고 생사윤회를 하는 중생들에게 감로수 같은 친절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스님도 인생의 스승을 만나고 공부하면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게 된 것이다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혜암 스님의 가르침과 실천이 없으셨다면 그 많은 풍파와 생활과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번뇌 망상을 어떻게 헤쳐 나왔을까 하면 그 은혜가 막대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스승은 주위의 모든 사람이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뿐만 아니라 자식, 부모, 친구, 회사 동료, 우연히 만나는 모든 사람과 애견 동물까지 나의 스승이 아닌 것이 없다. 항상 배울 점이 있었고 갈등과 사랑 속에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 자신도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 사회와 국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직업에 고소득을 원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런 곳은 한정된 직업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무엇을 하든 하는 주인공을 참구 하면 누구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그것이 나와 남을 동시에 위하는 것이다


밖으로 돈과 권력 성을 추구하다 보면 그 길이 비참하고 독약보다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은 절대 만족이 없고 오히려 취하면 취할수록 더 강해지고 갈망하게 된다


내면을 살피지 못하고 비교와 밖으로만 치달으면 잡을 수 없는 허망한 신기루로 쫓는 꼴이 된다


자기를 찾는 자만이 영원한 승자다 그곳에 남과 인류를 위하는 길이 있다

지금 매일 나오는 뉴스를 봐라 결과가 자명하지 않은가?

자기만을 위할 때 모든 것이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안목을 바르게 가지면 일어나는 생각을 살피고 마음을 참구해야 하는데 그 생각에 휘둘리다 보니 쉽지 않다. 

그래서 공안 화두를 참구 한다, 산 송장을 움직이는 이 놈이 무엇인고?

이 뭐고? 의정을 가지고 간절히


사소한 한 생각이 마구니이고 지옥이니 그 도리를 참구 하면 그 한 생각이 바로 천당이기도

하다. 자 이제, 안과 밖이 다르지 않으니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서로 경쟁하지 않고 누구나 갈 수 있는 열려 있는 길인데 당연히 최우선으로 가야 할 길이다 


백척간두에서 진 일보 하니 두 팔을 벌려 허공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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