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바다, 부산
해운대의 아침
어떤 곳은 잠자고 있던 이야기를 불러낸다. 태종대가 그랬다. 남편은 바다로 내려가는 길을 자꾸 기웃거리며 바라봤다.
“바위틈에서 노숙한 적 있어.”
남편은 대학교 1학년 때 부산에 온 적이 있다. 수련회에 참가한 고등학생 후배들을 격려하려고 친구와 기차를 타고 왔다. 집에는 1박을 한다고 했는데 친구가 당일로 올라가는 바람에 혼자 남았다. 후배들이 묵는 사찰에 함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선배노릇 하느라 자두를 잔뜩 사가서 서울로 갈 교통비 외에는 숙박비가 없었다. 태종대를 둘러보고 근처에서 밤을 맞이했다. 밤새 모기에게 뜯기느라 잠을 못 잤단다. 남편과 나는 대학교 1학년 봄에 연합동아리에서 만났다. 남편이 부산에 갔던 여름은 우리가 친구처럼 지내던 시기여서 그 당시의 남편 모습이 연상되어 웃음이 났다. 달빛을 받으며 파도소리를 들었다는 서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긋지긋하게 모기에 시달렸다니. 결혼해서 오래 살았어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부산 여행을 와서 태종대 도보 길을 함께 걸었으니 가능했다. 마음은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대화에 생기가 돌았다.
이번 여행은 남편과 2박3일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 여행이었다. 숙소가 해운대 역 근처여서 부산 어디든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영도의 태종대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바다공기를 느끼며 한산한 둘레 길을 걸었다.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옅은 주황색과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바다위에 커다란 배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떠있었다. 어떤 배에서 나는 건지 뱃고동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남편의 옛이야기를 듣다가 부산과 연관된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에서 감원대상으로 압박을 받았다. 동료들과는 시선이 어긋났고 가족에게서도 해결책을 구할 수 없었다. 부당한 기준으로 내몰리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한없이 위축되고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솟구치고 싶었다. 그때 부산에 있는 현주가 떠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솟구쳐 날라 갔다. 직장과 세 명의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당일로 부산에 다녀오는 건 쉽지 않았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도 사치일 수 있었다. 무리였지만 하루쯤 그러고 싶었다. 현주는 고3때 우리 반의 활달한 반장이었다. 그 친구가 이끌고 갔던 그해의 광안리 바다가 기억났다. 둘이 걸으며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짝이며 햇살이 부숴지던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버티어 낼 힘을 얻었다.
“현주에게 전화해볼까?”
남편은 갑자기 연락하면 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려의 말을 들었지만 현주를 안 만나고 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친구에게 전화하자 당장 자기 집 근처로 오라 했다. ‘오륙도 스카이워크’가 근처에 있고 산책하기 좋다 했다. 남편은 숙소로 돌아가 야구중계를 보기로 했고 혼자 현주를 만나러 갔다. 현주는 기다리고 있다가 한사코 택시 값을 지불하며 반겨주었다. 매일 저녁에 산책하는 코스라며 길을 안내했다. 이기대길 일부를 걸으며 오륙도를 바라보았다. 밤이지만 산책하기 좋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경계를 하게 됐다. 현주와는 어떻게 보일 까 신경 쓰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편안했다. 친구를 만나러 왔던 예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직장에서 밀려났다 복직했고 5년 전에 명퇴를 했다. 어려웠던 시기는 과거의 한 부분이 되었다.
부산에서 요트를 타는 방법을 알아보다 부산역에서 구했던 팜플렛을 보고 '요트탈래'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예약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현주부부와 타도 좋은 추억이 되겠다 싶었다. '더베이 101’ 주차장에서 현주 부부를 만났다. 우리는 호텔에서 짐을 갖고 나온 상태였다. 현주 남편이 우리 짐을 자신의 차에 실으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부담 없이 요트에 올랐다. 하얀 돛을 단 큰 규모의 요트에서는 명랑한 분위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두 구명조끼를 갖추어 입고 기분 좋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깥 경치를 바라보았다. 바닷가의 고층 건물들이 보이다 광안대교가 나타났다. 현주는 부산에 30여년을 살면서도 요트를 타본 것 처음이라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현주는 요트가 움직일 때 마다 몸을 들썩이며 콧노래를 불렀다. 유쾌한 에너지가 전해져와 분위기가 환해졌다.
현주부부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집근처인 이기대길을 가보자고 했다. 전날 밤,나는 그 곳의 일부를 걷기는 했지만 밤이어서 자세히 못 본 상태였고 남편은 안 가본 곳이었다.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해안절벽 위에 철제빔을 설치하고 그 위로 유리판을 이어놓은 설치물이다. 바닥으로 바다가 보여 아찔했다. 앞으로는 오륙도 풍경이 펼쳐졌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자연스럽게 애틋한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노래를 들으며 상상했던 오륙도를 눈앞에서 자세하게 보고 있으니 부산에 와있다는 실감이 저절로 들었다. 섬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5개, 또는 6개의 섬으로 보이기도 해서 오륙도라고 한단다. 조수의 차이에 따라 섬의 개수가 달라 보인다는 것도 신기했다.
현주부부와 함께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동생말’까지를 걸었다.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였다 해파랑 길1코스는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해운대까지다. 우리가 걸은 건 해파랑길 1코스의 일부 구간이다. 산으로 오르던 길은 경사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데크 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걷다보니 팻말에 ‘부산 갈맷길 2-2구간, 이기대 산책로’라고 적혀있었다. 걷는 길 오른 쪽으로 ‘울트라 마린’ 또는 ‘터키 블루’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남편과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를 자유 여행했을 때가 생각났다. 다섯 개의 절벽마을을 찾아서 바닷가로 난 길을 걸을 때 짙푸른 바다를 보았다. 그 곳은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엄청 많았다. 부산의 갈맷길을 걸으며 이탈리아의 관광지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국인 들 뿐 아니라 많은 외국의 관광객들도 아름다운 부산의 바닷길을 걸으면 좋겠다.
현주부부는 부산역까지 승용차로 바래다주었다. 돌아오는 KTX 열차에서 지난 여행을 되돌아봤다. 오랜 친구를 닮은 도시, 햇살 가득한 부산 바다가 떠올랐다.
해질무렵, 태종대에서 본 바다